<'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란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한 국가가 오히려 경제적·정치적으로 불안정해지는 역설적 현상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베네수엘라는 이 이론이 현실에서 구현된 대표적인 사례로 종종 거론된다. 한때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은 1인당 GDP를 기록하며 중산층 기반의 복지국가를 이룩했던 이 나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확인 석유 매장량이라는 천연자원을 기반으로 20세기 중반까지 급속한 산업화를 경험하였다. 그러나 21세기 초반 이후 이 국가는 통화가치의 붕괴, 초인플레이션, 정치 불안, 사법 시스템의 붕괴, 그리고 대규모 이민 발생 등으로 이어지는 총체적 위기를 맞이하였다. 석유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만으로는 이러한 몰락의 원인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베네수엘라의 붕괴는 단일 요인의 결과가 아니라, 일련의 잘못된 정책 선택과 제도적 무능, 그리고 사회적 신뢰와 가치체계의 구조적 해체가 복합적으로 작동한 결과이다.
베네수엘라 경제정책의 결정적 전환점은 1999년 우고 차베스 정권의 등장으로 촉발되었다. 그는 사회주의적 대중영합주의를 기조로 내세우며, 빈곤 계층의 지지를 바탕으로 기존 시장경제 구조를 급격히 재편하고자 하였다. 국가주도의 자원 재분배, 가격 통제, 대규모 복지 확대, 그리고 핵심 산업의 국유화를 골자로 한 이른바 '볼리바르 혁명'은, 초기에는 국민 다수의 삶의 질을 단기적으로 향상시켰다. 그러나 이는 시장 기능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를 전제로 한 정책들이었다. 예컨대 생필품에 대한 가격 상한제를 시행하면서도 정부의 공급 보조는 미비했던 탓에 가격이 인위적으로 낮아진 상품은 초과수요를 유발하였다. 생산 유인의 감소로 공급이 급격히 부족해지자 공식 유통망에서는 생필품을 구하기 어려워지고, 암시장에서는 동일한 물건이 시장의 수 배 가격에 형성되는 시장 왜곡이 발생했다. 경제학자 하이에크에 따르면 시장가격은 가격 이상의 역할을 하며, 분산된 여러 정보를 함축해 전달함으로써 경제 주체들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런데 베네수엘라는 국가가 가격과 생산을 통제하며 이러한 분산된 정보의 흐름을 차단하였다. 이로 인해 시장가격의 신호 기능이 왜곡되어 경제 주체들이 합리적 판단을 하지 못했고, 암시장과 부패가 구조화되어 경제 효율성이 크게 저해되었다. 임금 통제 정책 또한 노동시장의 왜곡을 불러와 생산성과 고용 창출에 악영향을 주었으며, 정부의 지속적인 개입은 노동 시장의 자율적인 조정 기능을 무력화시켰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시장을 정치권력이 철저히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며, 그 개입의 강도를 한층 강화하였다. 정부는 고정환율제도와 엄격한 외환통제를 병행하며, 원유 수출 수익에 의존한 외화를 시장에 공급하였다. 그러나 국제유가가 급락하자 외화 수입이 크게 줄어 국가의 외환보유고는 빠르게 고갈되었고, 이로 인해 공식 환율과 암시장의 환율 간 격차가 심화되는 이중환율 현상이 발생하였다. 이는 외환 거래를 왜곡하고, 외화를 확보하려는 경제 주체들의 불법 거래와 부패를 조장하여 경제 전반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또한 주요 산업의 국유화는 민간 부문의 생산 유인을 제거하고 비효율을 초래했으며, 정부는 재분배를 명분으로 한 과도한 복지 지출에 집중하면서 기술 혁신과 인프라 개선에 필요한 투자 여력을 스스로 축소시켰다. 자유롭지 못한 시장 환경 속에서 외국계 기업의 철수와 민간 자본의 해외 유출이 가속화되며 생산 기반은 점차 약화되었고, 원유 수출에 편중된 단일 산업 구조는 국가 전체의 외화 확보 능력을 현저히 제한하였다. 그런데 국가 재원의 핵심인 유가가 하락했음에도 정부는 복지 지출과 보조금 정책을 축소하지 못했고, 그 재정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무분별한 통화 발행에 의존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통화량(M)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으나, 생산량(Y)은 오히려 감소했고, 화폐유통속도(V) 역시 경제 불확실성과 금융신뢰의 붕괴로 급락하였다. 이는 통화량 방정식(M×V = P×Y)을 기준으로 볼 때, V와 Y의 동반 하락에도 불구하고 M이 비정상적으로 팽창함으로써, 물가 수준(P)은 통제불능 상태로 폭등하는 전형적 초인플레이션의 경로였다.
이러한 경제 위기 속에서도 주요 경제 지표들은 한때 긍정적인 신호를 내보였다. 국제 유가의 반등 덕분에 2000년대 중반까지 베네수엘라의 주식시장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이는 실체를 감춘 허상에 불과하였다. 실제로는 생산 기반이 심각하게 붕괴되었고, 국가 재정은 여전히 유가 의존적인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불안정했다. 통화 역시 신뢰를 잃어가고 있었다. 주식시장의 호황은 기업 가치의 실질적 상승이 아니라, 급락하는 화폐 가치를 피해 대체 자산으로 몰린 투자자금에 기인한 현상에 가까웠다. 이처럼 표면적 지표들은 정책 결정자와 국민 모두에게 위기의 본질적 심각성을 인지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정부는 이를 빌미로 인기 영합적인 포퓰리즘 정책에 더욱 매진하는 경향을 보였다. 구조적 개혁보다는 대중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 재정 여력을 초과하는 복지 정책과 각종 보조금을 지속하였으며, 그로 인해 발생한 재정 적자는 결국 무제한적인 화폐 발행으로 보전하는 악순환을 반복하였다.
베네수엘라의 위기는 경제·사회 전반을 넘어 사법 및 외교 체계에서도 심각한 양상으로 드러났다. 정치권력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체계적으로 훼손하였다. 예를 들어, 정부는 정권에 우호적인 판사들을 임명하거나, 반대 의견을 제기하는 법관들을 강제로 사임시키고, 사법부 예산을 축소하는 등으로 법원의 자율적 기능을 제한하였다. 이러한 조치들은 사법부가 권력 남용과 부패를 감시하는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은 물론 경제 정책의 왜곡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국민들의 공공 제도에 대한 신뢰는 급속히 무너졌고, 부정부패는 제도 전반에 만연하여 국가 시스템의 붕괴를 더욱 가속화하였다. 외교적 차원에서도 베네수엘라는 고립되었다. 차베스와 그의 후계자 니콜라스 마두로는 반미(反美)적 외교 노선을 강화하며, 중국, 러시아, 이란 등 비서구권 국가들과의 전략적 협력에 집중하였다. 이는 일시적으로는 외교적 선택지의 다양화를 꾀하는 듯 보였으나, 서방 국가들과의 외교적 단절은 곧바로 대외 신인도의 급격한 저하로 이어졌다. 특히 정부가 국제 규범을 무시하고 자의적인 국유화, 채무 불이행, 외환 통제 조치를 단행함에 따라, 베네수엘라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법적 예측 가능성'과 '계약 존중'이라는 기본 신뢰를 상실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국제 신용평가사들의 연이은 신용등급 강등을 불러왔고, 결과적으로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의 경제 제재로 이어졌다.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신뢰 붕괴는 자본 유입의 차단, 국채 금리의 폭등, 외화 유동성의 고갈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국내 경제의 심화된 위기로 되돌아왔다.
베네수엘라의 진정한 붕괴는 사회의 기본 가치 체계 자체가 무너졌다는 데에 있다. 장기간 유지된 포퓰리즘적 정책은 개인의 자율성과 책임, 사유재산에 대한 인식을 약화시켰고, 시민들이 국가로부터의 배급과 혜택에 점점 더 의존하게 만들었다. 정부는 더 이상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는 대리자가 아니라 생존의 수단을 통제하는 권력의 주체로 기능했고, 국민은 국가의 정책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로써 정부와 시민 간 상호신뢰를 전제로 한 사회계약은 실질적으로 해체되었으며, 정치권은 권력 유지를 위해 체제 유지를 선동하고 반대 의견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였다. 정치가 국민의 미래를 위한 제도가 아닌 권력 장악의 기술로 전락한 결과, 시민의 판단력은 약화되고 체제의 부작용은 반복되며 고착화되었다. 특히 체제의 논리와 가치가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강요된 끝에 국민 다수는 이를 내면화하게 되었고, 그 결과 현실에 대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체제를 재생산하는 방식으로 투표하게 되는 순환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사회 전체의 자정 능력이 마비될 뿐 아니라, 자유로운 개인들이 중심이 되어 작동하는 시장 역시 그 기능을 회복하기 어렵게 되었다. 시장은 단순한 거래의 공간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 법적 안정성, 신뢰라는 전제가 있을 때에만 제대로 운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의 사례는 잘못된 방향을 지닌 정책이 어떻게 제도와 경제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가치와 시민들의 사유 구조까지 붕괴시킬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국가 이데올로기가 내면화된 국민들이 다시금 그 체제를 정당화하고 선거를 통해 정권을 지속시킨다는 점이다. 학자들이 베네수엘라의 사례에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붕괴의 위험이 어느 국가에나 잠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뜻이라는 명분 아래에서 시장의 기능을 무너뜨리고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적 포퓰리즘은, 모든 다수 민주주의적 체제 속에 잠재된 보편적 위험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