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쿼이아의 대화재

by 서운인혜

캘리포니아 북쪽 5번 도로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세쿼이아 국립공원'이 있습니다. 이곳은 거대한 '거인 나무'들의 공간이며, 자연이 숨겨놓은 비밀의 숲입니다. 이 공원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이자, 현존하는 가장 큰 유기체인 제너럴 셔먼 나무가 자리합니다. 한편 2021년에 이곳에서 있었던 대화재는 공원의 상당 부분을 태웠고, 여러 나무들에 그을린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공원의 생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화재에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말합니다. 화재는 숲을 정돈하며, 숲의 미래 세대가 자라날 길을 열어준다는 것입니다.


<2021년 캘리포니아의 세쿼이아 국립공원에 번개로 인해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을 때, 그것은 되돌릴 수 없는 재난으로 여겨졌다. 수천 년의 세월을 살아온 거대한 나무들이 불길에 휩싸여 쓰러지고, 숲 전체가 검게 그을려 남은 풍경은 한눈에 보기에도 참혹하였다. 치솟는 화염은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자욱한 연기는 산맥을 뒤덮었다. 숲의 오랜 역사와 장엄한 생명력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듯 보였기에, 그 광경을 두고 상실과 비극 외의 다른 의미를 찾기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생태학적 관찰은 이러한 직관과는 다른 생각을 제시한다. 이는 겉으로는 숲을 해치는 것처럼 보이는 불이, 실은 세쿼이아 숲을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가게 하는 필수적인 순환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세쿼이아 국립공원은 불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으며, 불 없이는 결코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세쿼이아 숲의 생존을 추동하는 불의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 나무의 독특한 생식 방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쿼이아의 솔방울은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 수목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 내부 구조는 전혀 다르다. 수백 개의 씨앗을 품고 있는 솔방울은 단단한 수지로 봉인되어 있어, 일상적인 기온 변화나 습도의 차이로는 결코 열리지 않는다. 씨앗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섭씨 45도에서 60도에 이르는 강렬한 열 자극이 필요하며, 자연 상태에서 이러한 조건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산불뿐이다. 불길이 숲을 스쳐 지나갈 때 비로소 솔방울은 단단한 껍질을 풀어내고, 씨앗은 흩날리며 새로운 생명의 주기를 연다. 실제 조사 결과, 불이 지나간 지역에서의 발아율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는 세쿼이아 숲이 처음부터 불을 외부적 위협이 아니라, 자신의 생태 질서 속에 내장된 순환으로 받아들여 왔음을 시사한다.

불의 역할은 씨앗을 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세쿼이아의 어린싹이 자라려면 햇빛과 수분, 그리고 뿌리내릴 충분한 공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숲 바닥에 오랫동안 쌓인 낙엽과 덤불, 그리고 빽빽하게 들어찬 작은 나무들은 이러한 조건을 가로막는다. 그 결과 새싹은 빛을 받지 못하고, 수분과 영양분을 빼앗기며, 마침내 성장의 가능성을 잃는다. 이때 불은 일종의 청소 장치처럼 작동한다. 잡목과 덤불은 불길에 손쉽게 사라지고, 그 자리에 햇빛이 스며들며 공간이 열리기 시작한다. 반면 세쿼이아는 두께 수십 센티미터에 이르는 두꺼운 수피 덕분에 불길을 견뎌내며 꿋꿋이 살아남는다. 그렇게 숲은 불을 지나며 오히려 호흡을 회복하고, 새로운 세대가 자라날 조건을 얻는다. 실제로 국립공원의 장기 조사에 따르면, 10년에서 30년 사이의 주기로 저강도의 불이 반복된 지역에서 어린 나무의 생존율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현저히 높았다. 불은 숲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필요한 것을 걷어내며 생명의 순환을 이어가게 하는 자연의 방식인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한동안 국립공원의 불을 오직 위험으로만 인식하며 끊임없이 차단해왔다. 이러한 개입은 숲이 스스로 유지해 온 고유한 순환을 가로막았다. 본래 세쿼이아 숲에서는 작은 불길이 주기적으로 지나가며 낙엽과 가지를 태워내고, 그 과정에서 씨앗이 흩뿌려져 새싹이 자라날 공간과 빛, 토양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불이 억제되자 어린 싹은 더 이상 자라날 틈을 얻지 못했고, 숲 바닥에는 오랜 세월 정리되지 못한 잔해가 겹겹이 쌓였다. 이 잔해는 화재를 위한 연료가 되어 어느 한 순간 작은 불씨 하나가 붙으면, 이는 더 이상 조용한 정화의 불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화염으로 치닫게 되었다. 그렇게 증폭된 불길은 세쿼이아의 두꺼운 수피마저 뚫어낼 만큼 강렬한 열을 내며, 숲을 떠받치던 성숙한 거목들까지 무너뜨렸다. 불을 막으려던 인간의 시도가 역설적으로 숲을 더 깊은 위험 속에 몰아넣은 셈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가진 통념을 근본적으로 바꾸도록 한다. 세쿼이아 숲에서 불은 외부에서 불시에 침입한 변수가 아니라, 생태계 내부에 내장된 순환의 일부였다. 불은 단지 숲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씨앗을 열어 흩뿌리고, 땅을 정돈하며, 새로운 세대를 길러냈다. 소멸과 성장은 서로 분리된 사건이 아니라, 동일한 과정의 두 얼굴이었다. 겉으로는 황폐와 상실만을 남기는 듯 보였던 불길이, 실은 이 숲을 지탱하는 가장 본질적인 원리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연은 이처럼 우리의 시각을 뛰어넘는 깊은 질서와 진실을 품고 있다. 그렇기에 자연을 다스릴 책임을 지닌 우리가 자연을 탐구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지식을 쌓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의 내적 법칙을 깨닫고, 그 속에서 자연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함이며, 더 나아가 그 사랑을 바탕으로 자연을 돌보아 함께 살아가기 위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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