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브라운의 변론

불의한 제도에 맞서며

by 서운인혜

예전에 미국의 역사 골학을 할 때 노예 폐지론자 '존 브라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그는 연방 정부에 반역하여 집단적 봉기를 일으킨 죄로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그의 최후 변론은 이러합니다.

“이 법정은 하나님의 법을 존중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 적어도 신약으로 보이는 - 성경에 입을 맞추는 모습을 나는 보았다. 바로 그 성경이야말로 내게 가르치길, 내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해야 하며, "너희도 함께 갇힌 듯 지금 갇혀있는 사람들을 생각할 것이며, 너희도 몸을 가진즉 학대받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라"(히브리서 13:3)고 하였다.

나는 그 명령을 따르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내가 아직 어리석어서 그런건지, 하나님이 어찌 사람의 외모를 따지신다는 소리인지 나는 모르겠다. 내가 순순히 인정한 바와 같은 내 일련의 행위는 하나님의 소외받는 빈한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으며, 그것은 결코 잘못이 아니라 올바른 행위였다고 생각한다.

만약 정의를 위하여 내 목숨을 포기해야 한다면, 그리고 이 노예제의 나라에서 내 자손은 물론이요, 사악하고, 잔인하고, 불의한 제도로 인하여 인간된 권리를 무시당하고 있는 수백만의 피에 내 피를 또한 더해야 한다면 그렇게 될지어다!”

법이 우리에게 불의를 지시한다면, 우리는 그 법을 지켜야 할까요? 우리가 국가와 법 제도에 저항할 수 있는 권리는 언제 생기게 될까요? 저항의 수단으로서 폭력적인 수단은 용납될 수 있을까요?

지금도 세계의 수많은 국가들에서 종교의 자유가 제한되고 있으며, 사회의 특정한 집단과 계급이 불합리한 이유로 차별을 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동포인 북한의 주민들이 그런 억압과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1859년 가을, 미국 버지니아주 '하퍼스 페리(Harper’s Ferry)'에서 발생한 무장 봉기는 짧은 시간 내에 진압되었으나, 이 사건은 노예제를 둘러싼 미국 사회의 심각한 분열을 집약적으로 드러낸 계기로 기록된다. 그 중심에는 강경한 노예폐지론자 존 브라운이 있었다. 그는 연방 무기고를 점거하여 노예들에게 무기를 분배하고, 이를 통해 해방을 향한 집단적 봉기를 촉발함으로써 노예제 질서를 근본적으로 전복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기획은 즉흥적 행동이 아니었다. 1854년 제정된 '캔자스-네브래스카 법(Kansas-Nebraska Act)'은 노예제 존폐 여부를 지역 주민의 선택에 맡겼고, 그 결과 노예제 찬반 세력 간 폭력적 충돌이 심화되었다. 이른바 ‘피 흘리는 캔자스(Bleeding Kansas)’로 불린 상황에서 브라운은 유혈 대립을 직접 경험하며, 불의한 세력에 대한 폭력적 저항이 불가피하다는 신념에 이르게 되었다.

하퍼스 페리 사건 이후 브라운은 체포되어 반역과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의 재판은 미국 사회 내부를 넘어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법정에서 그는 자신의 행위를 숨김없이 인정하였으나, 그것이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정의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음을 항변하였다. 그는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자신이 그 명령을 따르고자 했을 뿐이라고 진술하였다. 또한 그는 “내가 정의를 위하여 내 목숨을 포기해야 한다면, 그리고 이 노예제 국가에서 수백만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짓밟히고 있다면, 내 피가 그들의 피에 더해질지라도 그렇게 될지어다”라고 선언하였다. 이러한 발언은 법정을 넘어 사회 전체로 파급되었으며, 유럽의 지식인들에게도 깊은 반향을 주었다.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는 공개 서한을 통해 브라운의 처형을 반대하며, 그의 죽음은 인류사의 불의를 고발하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브라운은 수감 중 세계 각지의 노예 폐지론자들과 서신을 주고받았고, 그의 재판은 국내 사법 절차의 범위를 넘어 보편적 정의의 문제를 둘러싼 국제적 논쟁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법원은 브라운의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이 내린 사형 선고의 논리는 명확하였다. 그는 무장 세력과 함께 연방 무기고를 점거하였고, 그 과정에서 다수의 희생이 발생했으며, 무엇보다도 그의 행위는 연방에 대한 조직적 반역에 해당하였다. 법원은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불법성’을 철저히 분리하여 판단하였다. 브라운이 노예제 철폐라는 신념을 내세웠다 하더라도, 그가 취한 폭력적 방법은 실정법의 질서를 전면적으로 파괴하는 행위였으므로 형벌은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이는 법질서의 안정성과 국가 권위의 존속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 판단이었다.

실정법적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판결은 타당성을 갖는다. 켈젠이 주장한 바와 같이, 법의 타당성은 제정 절차의 정합성에 의해 확보되며 도덕적 정당성과는 무관하다. 이 관점에서 브라운의 행위는 명백히 규범을 위반하였으므로, 법원의 판결은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한 필연적 귀결이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불의한 제도가 법이라는 형식 아래 존속될 위험을 드러낸다. 자연법적 관점에서는 상이한 평가가 도출된다. 드워킨의 법이론에 따르면, 법은 규칙의 총합을 넘어 공동체가 공유하는 원리와 권리를 구현하는 제도이다. 노예제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부정하는 제도였으므로, 이를 철폐하려는 브라운의 저항은 실정법 위반임과 동시에 법의 본질적 원리를 수호한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브라운의 항변은 법이 도덕적 정당성을 상실할 경우 그 법이 여전히 구속력을 가질 수 있는지라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수단의 정당성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로크의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권력이 불의하게 행사될 경우 저항권의 행사가 정당하다고 볼 수 있으나, 칸트의 윤리학은 인간을 결코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라는 보편 규범을 요구한다. 브라운의 저항은 억압받는 다수의 해방을 목적으로 하였으나, 동시에 구체적 개인을 그 수단으로써 희생시켰다는 점에서 도덕적 결함을 지닌다. 정의로운 목적이 폭력적 수단을 통해 실현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채 남는다.

존 브라운의 교수형은 두가지 상반된 평가를 남겼다. 당시 법정에서 그는 국가 질서를 위협한 범죄자로서 응분의 처벌을 받았으나, 역사적 맥락에서는 노예제라는 제도적 불의에 저항한 정의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이 사건은 법의 본질과 정당성에 관한 근본적 성찰을 요청한다. 실정법적 관점에서 그의 행위는 법질서를 파괴한 범죄였지만, 자연법적 관점에서 그것은 법의 원리를 수호하려는 정의의 실천이었다. 그럼에도 폭력적 저항은 인간을 수단화할 위험을 내포하며, 따라서 정당한 목적과 도덕적 한계 사이에서 긴장을 일으킨다. 브라운의 재판은 불의한 법도 법으로 존속될 수 있는지, 정의 실현을 위한 실정법 위반이 어떠한 조건에서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게 하며, 오늘날에도 법과 정의, 질서와 저항의 관계를 둘러싼 심층적 논의의 핵심 사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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