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김제평야 한복판에 있는 벽골제에서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서 부안에 도착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지요. 우리들이 격포 해변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빨간 불덩이 같은 해가 바다로 빠져들고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정말 운이 좋게도 보기 드문 일몰 광경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 '변산'에서 주인공인 래퍼 심뻑(박정민 역)이고등학생이었을 때, 변산 앞바다의 노을을 바라보며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 밖에 없네'라고시를 썼습니다. 래퍼 심뻑이 예술적 감성을키웠을 가슴 절절한 노을이 우리들 눈앞에서 점점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그리고 금세 바다가 어두워졌습니다. 우리는 어슴푸레한 해변에 앉아서 바닷소리를 들었습니다.
[ 출처: 영화 '변산', 박정민·김고은 ]
박현숙·최진호 부부가 도착했다고 미숙이에게 전화가 온 것이 그때였습니다. 박현숙·최진호 교장과 미숙이와 저는 교육 대학 동기입니다. 대학교 입학식 날, 체육관으로 들어가려고 줄을 섰다가 현숙이의 하이힐에 진호의 발등이 찍힌 일이 인연이 되어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지요.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은 작년에 교장으로 퇴임하고, 현숙이의 고향인 부안에 와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부안에 왔다고 알리자, 친구 부부는 한걸음에 격포 해변으로 와 준 것입니다.
[ 격포 해변의 석양 ]
친구 부부는 격포 해수욕장 입구에 있는 격포어촌계회센터로 우리들을 안내했습니다. 현숙이 후배라는 횟집 사장이 나와 인사하면서, 변산반도 앞바다에서 나는 해산물로 저녁식사를 준비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식도에서 가져왔다는 갑오징어와 홍합 요리를 먹는 것으로 부안에서의 만찬을 시작했습니다. 흔히 먹는 해물파전보다는 풍미가 깊은 갑오징어 홍합전은 참 맛있었어요. 갑오징어 숙회와 산 낙지, 소라, 멍게, 개불, 전복, 광어도 회로 먹었지요. 우리는 부안의 지역 특산품인 오디로 담근 '뽕주'를 곁들여 마셨습니다. 그리고 친구 부부가 추가로 주문한 '갑오징어 홍합죽'은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다음 날 아침식사로 해달라고 부탁했지요.
부안에는 '위도'와 '식도'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섬이 있습니다. 위도(蝟島)는 우리나라 3대 조기 어장 중의 하나로 변산반도 앞바다에 있는 섬이지요. 위도는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에 있는데, 국가무형문화재 제82-3호로 지정된 풍어제 '위도띠뱃놀이'와 1993년 10월에 위도 인근 바다에서 배가 침몰하여 292명이 사망한 '서해훼리호 침몰사고'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위도라는 명칭은 섬 모양이 고슴도치(蝟)와 비슷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위도에서 동북쪽으로 있는 작은 섬이 식도지요. 식도는 고슴도치의 아가미 모양 같다고 해서 '밥섬'이라고 했는데, 일제 강점기에 식도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일제가 식민지 정책의 하나로 우리 고유어로 된 지명을 일본식 한자로 강제 변경한 것들이 아직도 제 이름을 찾지 못한 채 쓰이고 있지요.
이 섬들은 해산물이 풍부하여 옛날부터 부자 섬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기잡이철이 되면 전국에서 모여든 배와 뱃사람들로 파시(波市)가 형성돼 섬 전체가 흥청거렸다고 합니다. 위도의 가장 큰 항구인 ‘파장금(波長金)항’은 ‘파도가 높아지면 금이 쏟아진다’는 뜻에서 유래된 이름이지요. 식도는 갯바위에서 자란 자연산 홍합과 주변 바다에서 잡은 갑오징어가 유명한데, 우리나라 갑오징어의 90%가 식도에서 잡힌다고 합니다. 저는 작은 섬이 가진 명성 치고는 대단하다고 생각했지요. 위도와 식도를 중심으로 변산반도 앞바다에서는 봄에는 갑오징어, 가을에는 조기가 많이 잡힌다고 합니다. 특히 갑오징어는 야행성 어종으로 봄철 변산반도 앞바다는 갑오징어를 잡는 배들이 밤새도록 밝힌 집어등이 볼만하다고 해요.
친구 부부는 우리들과 함께 격포 해변 언덕에 있는 숙소로 와서 차에 싣고 온 술과 음식을 펼쳤습니다. 우리는 친구 부부가 집에서 담갔다는 오디 와인과 마른안주, 과일들을 놓고 부안의 만찬 2차를 시작했지요. 숙소 거실에 늦게까지 남은 사람은 저와 미숙이, 그리고 친구 부부였습니다. 미숙이는 그동안 동기모임에서 친구 부부와 가끔 만났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두 사람을 만난 것이 졸업 30주년 행사 때였으니까 10년이 훌쩍 넘었지요. 친구 부부는 그동안 전주에서 살다가 정년 퇴임 후, 현숙이 어머니와 함께 부안에 와서 살고 있다고 하면서 지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현숙이는 부안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가 줄포항 노점에서 젓갈을 팔아 어렵게 살았습니다. 현숙이는 공부를 잘했습니다. 부안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교육 대학에 합격했는데, 전주에는 기거할 데가 마땅히 없었지요. 다행히 고등학교 선생님이 여학생 전용 독서실에서 야간에 학생을 관리하고 청소하는 일자리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독서실관리사무실로 쓰는 방은의자를 책상 위에 얹으면 겨우 누울 수 있는 자리가 생겨서 쪽잠이나마 잘 수 있었지요. 게다가 약간의 월급도 받았어요. 그리고, 당시 교육 대학은 모든 재학생에게 등록금의 약 50%가량 되는 국가장학금이 지급되었기 때문에 현숙이는 졸업할 때까지 그럭저럭 최저 생활을 꾸려가며 학교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
현숙이 어머니는 맏딸이 대학을 졸업하면 동생들 학비라도 보탤 것이라고 기대했지요. 그런데, 졸업 후 발령 대기 중에 그만 아이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현숙이 어머니는 분노하였고, 결국 두 사람은 혼인 신고만 하고 살다가 발령을 받았습니다. 학교에서도 가을운동회 업무 배정까지 마치고 신규교사를 기다리다가 배부른 현숙이가 오자 몹시 당황했지요. 현숙이는 9월에 고창에 있는 학교에 첫 발령을 받고 겨울방학 때 첫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현숙이 어머니가 줄포에서 고창으로 와서 아이를 돌봐 주는 것으로 일단 화해를 한 셈이었지요. 결국 어머니는 현숙이의 아이들을 키워주고, 현숙이는 두 동생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비를 책임졌습니다. 그중 한 동생이 익산에서 치과 의원을 운영하고 있고, 다른 동생은 세무사가 되었지요. 두 동생들은 훗날 조카들의 학비를 주는 것으로 학비 지원릴레이를 아름답게 마무리하여 현숙이의 두 아들도 잘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부부교원이 함께 교장으로 승진하는 일도 흔치 않아 현숙이 어머니는 함께 사는 동안에 딸 부부를 무척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리고, 금의환향하여 고향에서 떵떵거리고 살고 싶다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줄포항 근처에 그림 같은 집을 지어 살고 있습니다.
제 살아온 이야기가 서러워 울던 현숙이가 해피 엔딩으로 이야기를 마치고, 우리는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현숙이의 휴대폰이 계속 울려 새벽에 잠들었던 네 명이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9시가 다 되어갔지요. 어제저녁식사를 했던 식당에서 아침식사 시간을 묻는 전화를 한 것이었습니다. 그 전화가 오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 넷은 점심때쯤이나 일어났을 거예요. 바다 쪽으로 난 넓은 창을 통해 친구들이 콘도 아래 바닷가에서 숲길로 걸어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친구들이 들어오더니, 부안에서 하루 더 묵어 가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일곱 명 중에서 저와 미숙이를 뺀 다섯 명이 의견을 모았으니 이미 결정된 것이지요. 저와 미숙이도 흔쾌히 찬성했습니다. 우리는 부안에 하루 더 있게 되어 발생한 구체적인 일정 조정은 차츰 하기로 하고 식당으로 갔습니다.
아침은 어제저녁에 회를 먹었던 식당에서 갑오징어홍합죽을 먹었습니다. 처음으로 먹어본 갑오징어홍합죽은 홍합과 갑오징어, 채소들을먹기 좋게 썰어 쌀과 함께 끊인 것으로 홍합 향이 진한 맛이었어요. 반찬으로 나온 젓갈 중에 처음 먹는 것이 있어서 물어보니, 전어젓이라고 했습니다. 전어는 기름이 많은 생선이라 구워서 먹어야 맛이 좋고, 숙성이 오래 걸려서 4~5년은 되어야 젓갈로 먹을 수 있다고 했지요. 제가 어렸을 때 자주 먹었던 풀치조림도 오랜만에 먹었습니다. 풀치조림은 풀치(갈치 새끼)의 머리와 꼬리를 뗀 뒤에 꾸덕하게 말린 후, 양념에 조려 먹는 것으로 서해안 쪽에서 많이 먹는 것이라고 합니다.
늦은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았습니다. 카페 벽에 변산바람꽃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부안은 가진 것이 많은 곳입니다. '변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꽃도 있으니 말이에요.
[ 출처: doopedia.co.kr, 변산바람꽃과 복수초 ]
변산바람꽃은 복수초, 노루귀와 함께 봄의 전령사라고 불리는 야생화지요. 특히 이들 중에서 가장 먼저 피어나는 변산바람꽃은 3~4cm의 키로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잘 띄지 않을 만큼 아주 작습니다. 2월 초부터 피어나는 하얀색 꽃잎은 엷은 분홍빛이 감돌고, 노란색 암술을 둘러싸고 있는 수술의 끝부분이 보라색으로 청초한 아름다움을 지닌 꽃이지요.
저는 변산바람꽃과 박현숙·최진호 친구 부부가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변산바람꽃은 주변의 풀과 나무들에 비해 너무 작아서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지요. 하지만, 엄동설한을 이겨내고 마침내 피어나 변산에도 찬란한 봄이 올 것이라고 알려 주지요. 제 친구 부부도 가족들에게 변산바람꽃 같은 그런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현숙이는 줄포항에서 아버지도 없이 가난에 지쳐 엎드러진 집안을 반듯하게 일으켜 세웠지요. 그리고, 금의환향을 꿈꾸던 어머니와 함께 고향에 와서 살고 있습니다. 저는 친구 부부에게 힘껏 박수를 쳐주고 싶었습니다.
친구 부부는 우리들과 함께 차를 마시고, 부안에서 볼만한 곳을 몇 군데 추천해 준 다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님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359쪽 '미완의 여로 1-부안 변산'에서 '끝끝내 지켜온 소중한 아름다움들'이라는 부제의 글을 시작하면서, '강진·부안 비교론'이라는 제목의 글을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이제 와서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것이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르지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쓰면서 나는 그 일번지를 놓고 강진과 부안을 여러 번 저울질하였다. 조용하고 조촐한 가운데 우리에게 무한한 마음의 평온을 안겨다 주는 저 소중한 아름다움을 끝끝내 지켜준 그 고마움의 뜻을 담은 일번지의 영광을 강진과 부안 모두에게 부여하고 싶었다.'
우리는 곰소항에서 이어지는 반계 유형원의 유허지와 내소사에 들렀다가 고창 선운사로 내려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