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선운사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꽃무릇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습니다. 마치 하늘이 해를삼켰다가 뱉어낸 듯 나무 아래 땅바닥이 온통 빨간색이었습니다.
[ 출처: 고창군청 홈페이지, 선운사 꽃무릇 ]
선운사 입구에서 길 옆으로 핀 꽃무릇을 배경으로 남은 생애에서 가장 젊은 우리들이 사진을 찍고, 선운사 경내로 들어갔습니다. 선운사에서도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어서 참가자들이 한가로이 쉬고 걷고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절집다운 평화로움을 느끼게 했습니다. 우리는 선운사 경내에 있는 전통찻집 만세루에 들어가 차를 마셨습니다. 절 마당에는 진분홍색 배롱나무꽃도 참 아름웠지요. 아침나절의 햇살이 반짝이는 건너편 산과 하늘과 마당의 꽃을 보는 우리에게 선운사는 극락정토였지요.
그리고 선운사 아래로 내려와서 더덕구이와 산채비빔밥을 점심으로 먹었습니다. 친구들이 고창에서는 으레 풍천장어와 복분자주를 먹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지요. 하지만, 절에서 몇 발짝 내려오자마자 고기를 구워 술안주로 삼는 것이 왠지 멋쩍다는 제 생각에 모두 동의하여 풍천장어는 저녁에 먹기로 했습니다.
선운사에서 고창 운곡 람사르습지 자연생태공원까지는 20분 정도 걸렸습니다. 차에서 내려 걷는 동안 '평화롭다'라는 이 낱말을 매단 풍선들이 운곡 습지 주변 하늘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고창 운곡 습지는 2011년에 람사르습지로 등록되었습니다. 이곳은 고인돌 공원이 가까운 곳에 있어 2014년에는 환경부에서 국가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되었고, 2017년에는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받았습니다.
또한 주변 마을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고창군생태관광주민사회적협동조합을 결성하고 운영함으로써 2021년에는 100대 세계지속가능관광지(Green Destination Top 100)와 UNWTO(세계관광기구)으로부터 전 세계 44곳의 최우수관광마을(Best Tourism Village)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 출처: 고창군청 홈페이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고창운곡람사르습지 ]
마침 초등학생들이 운곡습지학교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활동하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우리가 학교에 다니던 때와 요즘의 학교를 비교하면, 모든 면에서 말 그대로 천양지차(天壤之差)지요. 최근 들어 역사 현장이나 자연 생태 환경을 관찰할 수 있는 곳에서 현장체험학습 중인 아이들을 흔히 볼 수 있는 것도 교육 방법이 달라진 것 중 하나입니다. 아이들의 배움의 장을 교실 밖으로 확장하여 책 속에서 답을 찾는 배움 못지않게 삶과 연결된 장소에서 체험을 통해 배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지요. 옛날부터 좋은 교육 방법으로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을 강조했습니다.
[ 출처: doopedia.co.kr. 고창읍성 ]
우리는 고창 운곡 람사르습지에서 두 시간 정도 머물다가 고창읍내로 들어갔습니다. 우리들이 끝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고등학교 동창 중에 고창여자중학교 출신이 있었지요. 어느 수업 시간이었는지 자기가 살던 지역의 특색과 자랑거리를 발표했던 것 같은데, 그 친구가 고창읍성과 성밟기놀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고창에서는 오래된 전통으로 고창여자중학교와 고창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한복을 입고 행사에 참여했다고 했습니다. 손바닥 만한 돌을 하나씩 머리에 이고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성밟기를 했다고 했지요. 전설 속의 삼 년 고개처럼 고창읍성도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를 돌면 극락승천한다는 전설이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고창읍성은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과 우리가 며칠 전에 들렀던 충남 서산의 해미읍성과 더불어 3대 읍성으로 꼽힌다고 합니다. 고창읍성은백제 때 고창을 모량부리로 불렀던 것에서 모양성이라고도 하는데, 지금까지도 그 이름이 전해져 '고창모양성제'라는 축제를 오랫동안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창읍성 성곽길이 2007년 한국도로교통협회에서 주최한 아름다운 길 100선으로 선정되기도 했다고 해서 잠깐 걸어볼까 생각했지요.
하지만 우리들이 더 걷기는 무리인 것 같아서 고창읍성이 보이는 디저트카페로 들어갔습니다. 카페 직원은 고창 지역의 특산품인 수박과 멜론으로 만든 빙수를 추천해 주었습니다. 호텔 체크인 후에 읍내에 나와서 저녁식사를 할 생각으로 예약한 한옥 호텔에 갔습니다. 그런데 예약이 안 되었다고 해서 잠깐 소동이 있었지만, 곧 해결되어 편안하게 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녁식사 때, 드디어 풍천장어구이를 술안주로 하여 복분자주를 기분 좋게 마셨습니다.
한옥 호텔은 아늑하고 쾌적하여 모두 잘 잤습니다, 다음날 우리들은 다른 날보다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특별히 농사짓는 사람들의 시간에 맞추어 출발하기 위해서였지요. 고창읍에서 가까운 고창군 고수면에는 경자의 시댁이 있습니다. 즉 우리들의 영원한 형, 일구형네 고향집이지요. 지금은 일구형 동생이 살고 있는데, 해마다 고구마와 땅콩을 많이 심는다고 했습니다. 일찍 심은 고구마를 캐는 날이라고 해서 우리가 일꾼들 밥과 새참을 준비하기로미리 약속을 했었지요.
우리가 서둘러서 온다고 했지만, 부지런한 농부의 시간을 쫓아갈 수 없었습니다. 8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했는데, 집에는 경자 손아랫동서 미경 씨만 남아서 새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새참이라면 비빔밥이나 국수, 부침개, 고구마, 감자 등을 준비할 생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주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미경 씨 나도 새참 심부름을 많이 했어요. 뭐든 시켜주세요."
"그러실 필요 없어요. 요즘은 다 사서 줘요. 오늘은 마실 걸로 커피랑 주스, 콜라를 준비했고, 빵은 주문해서 벌써 밭에 도착했을 거예요."
"그럼 점심도 사서 줘요?"
"아뇨, 점심은 제대로 해줘요.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이라 점심 한 끼는 잘 주어야 해요."
고구마밭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스무 명 정도 된다고 했습니다.미경 씨는 우리들에게 식재료들을 내주며 손질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준비한 음료수를 오토바이 뒤에 붙어 있는 바구니에 담더니 이내 붕~ 하는 소리를 남기고 떠났습니다. 우리는 미경 씨가 내놓고 간 채소와 생선 그리고 닭을 손질하고, 쌀을 씻는 일 등을 나누어했습니다. 곧 미경 씨가 돌아와서 본격적으로 점심식사를 준비했습니다.
미경 씨의 지휘로 우리들은 25인용과 10인용 전기밥솥에 쌀을 안치고, 순살고등어를 튀기고, 닭을 삶고, 배추겉절이를 무치고, 계란말이를 부치고, 버섯을 볶고, 단무지를 반찬통에 담아 후다닥 챙겼지요. 그리고 이번에는 미경 씨가 트럭에다 밥솥과 들통, 반찬통, 생수병, 빈 그릇, 수저 등을 통째로 실었습니다. 우리도 미경 씨가 운전하는 트럭을 뒤따라서 밭으로 갔습니다.
저는 고구마밭에 도착해서 세 가지 낯선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니, 놀라운 광경이었지요. 첫 번째는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외국인 노동자들인 것과, 두 번째는 열 개가 넘는 알록달록한 파라솔이 황토밭에 늘어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놀란 것은, 1만 평이 넘는 고구마밭에서 트랙터 두 대가 고구마를 캐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넓은 구릉 지대의 밭에는온통 고구마와 땅콩을 심은 것 같았습니다. 고창에서 보는 드넓은 초록의 밭이 김제평야의 논에서 느낀 넉넉함 못지않은 풍요로움을 느끼게 했지요.
제가 일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니, 먼저 고구마 줄기를 낫으로 잘라 걷어낸 이랑을 트랙터가 지나가면서 뒤집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밭 위에 있는 고구마를 줍고, 흙 속을 헤집으며 고구마를 캐다가 파라솔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들 앞에 부었습니다. 그리고 파라솔 아래에서는 노인들이 빠른 손놀림으로 고구마에 붙어 있는 흙을 털고 잔뿌리를 제거하여 매끈한 고구마로 다듬었지요. 마지막으로 흠집이 없는 고구마를 골라 크기대로 선별하여 상자에 담아 포장했습니다. 이곳 농장에서는 주로 백화점과 대형 마트에 납품하기 때문에 그나마 택배 송장을 컴퓨터에 입력하고 출력하여 붙이는 일은 하지 않아 일이 줄어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점심밥을 챙겨주고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우리가 일찍 나오느라고 아침밥을 굶은 탓도 있었지만, 들판에서 먹는 들밥은 꿀맛이었지요. 설거지를 대충 마친 우리들이 일을 돕겠다고 하자 일구형 동생은 극구 사양했습니다. 이 일이 쉽게 보일 수 있지만, 고구마 껍질이 벗겨지거나 상처가 나면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처음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불량품을 만든다는 것이 이유였지요. 정히 하고 싶으면 아주 큰 고구마를 따로 주워다가 모으라고 했습니다. 고구마가 너무 큰 것은 맛은 좋은데 상품으로써의 가치가 떨어져 따로 팔아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결국 우리는 고구마밭에서 가장 쉬운 일을 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헐값에 유통업자에게 넘긴다는 큰 고구마를 우리들이 몇 상자씩 사서, 각자의 집과 지인들에게 택배로 보내주었습니다. 우리는 고창에서 볼거리 먹거리가 많이 남았지만, 일구형네 고향집에 들른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전라남도 장성군 편백숲으로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