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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우주 Oct 02. 2023

짝짝이 양말 신고 학교 간 날

올여름에 날씨가 더워지자, 저는 덧신 양말 열 켤레짜리 한 묶음을 온라인 마켓에서 주문했습니다. 며칠 후, 양말이 도착했는데, 열 가지 색깔의 양말이 들어 있어서 당황했습니다. 제가 상품 정보를 자세히 읽어보지 않고 주문했기 때문이지요. 저는 양말을 같은 색깔로 사서 신는 일이 많았습니다. 양말 한 짝이 해지거나 잃어버려도 쉽게 짝을 맞추어 신을 수 있어서지요. 그래서 배달된 양말을 한 가지 색깔로 바꾸려고 알아보니까, 무료배송 상품이라 왕복 배송료를 내야 한다고 해서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날마다 다른 색깔로 갈아 신는 재미도 괜찮았습니다.


저는 양말과 속옷은 빨래를 합니다. 하지만 어쩌다가 다른 빨랫감에 섞여서 양말이 세탁기에 들어가는 일도 있었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양말을 세탁기에서 꺼내면 한 짝이 없는 일이 가끔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주 있는 일인지 몇 년 전에 한 TV 방송에서 '세탁기에 양말 귀신이 산다'라는 주제로 양말이 세탁기 안에서 사라지는 원인을 알아보는 방송을 하기도 했지요.



아무튼 저에게 한 짝만 남은 덧신 양말이 두 짝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짝짝이 양말을 버리려다가 나중에라도 한 짝을 찾게 되면 신으려고 잘 챙겨 두었지요. 하지만 양말 한 짝은 끝내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짝짝이 양말을 신고 출근했습니다. 짝짝이 양말을 못 신을 일도 아니고, 또 신발 안에 있는 짝짝이 양말이 보일리 없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학교에 가서 실내용 슬리퍼로 갈아 신고 교실로 들어갔을 때 일이 생겼습니다. 앞자리에 앉은 아이가 제가 신고 있던 짝짝이 양말을 발견한 것입니다.


"와, 선생님이 짝짝이 양말 신었다!"


그 아이의 한마디에 교실이 온통 난리가 났습니다. 제 짝짝이 양말을 확인하려고 일어서서 보는 아이, 앞으로 뛰어나오는 아이, 쪼그려 앉아서 제 양말을 만져보는 아이, 박장대소하며 발을 구르는 아이, 우스워 죽겠다며 데굴데굴 바닥에 뒹구는 아이들로 법석을 떨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여덟 살 아이들은 별것도 아닌 제 짝짝이 양말에 흥분하여 한참 후에야 진정되었지요. 그리고 어떤 아이가 제게 부끄럽지 않으냐고 물었습니다. 또 어떤 아이는 짝짝이 양말인 것을 모르고 신고 왔느냐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왜? 난 부끄럽지 않아. 그리고 짝짝이 양말인 거 알고 신고 왔어. 내가 생각해 보니까, 지금까지 누가 나에게 양말은 꼭 짝을 맞추어 신어야 한다고 가르쳐 준 적이 없었어. 또 양말을 짝짝이로 신으면 안 된다고 말해준 사람도 없었고 규칙도 없었지. 사람들이 모두 아무 생각없이 그렇게 짝을 맞추어서 신었던 것 같아. 나는 짝이 맞지 않다고 버리는 것보다는 새 양말이니까 신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신고 왔지. 그리고, 내가 짝짝이 양말을 신고 다니는 유행을 시작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니?"


"예, 이상해요!"


아이들이 일제히 대답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제가 신은 짝짝이 양말에 보인 보수적인 반응이 의외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아이들 중에는 재미있다거나 패션 감각이 있다고 대답하는 아이도 한둘 있었지요.



제가 아이들에게 한 짝만 남게 된 양말이 있을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많은 아이들이 짝짝이 양말을 신지 않고 버리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몇몇 아이들은 짝짝이 양말을 신어 보겠다고도 했지요. 그리고, 짝짝이 양말을 상품으로 팔기도 한다고 알려준 아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짝짝이로 신으려고 만든 양말이라서 제가 신은 짝짝이 양말과는 다르다고 야무지게 선을 그었습니다.


그날 오후에 저는 학교 도서관에서 사서 선생님과 짝짝이 양말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서 선생님도 제가 신고 있던 짝짝이 양말을 보며, 저에게 참 엉뚱하고 재미있으며 용기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도서관에 '짝짝이 양말'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고 찾아 주었습니다.


며칠 후, 제가 짝짝이 양말을 신고 갔던 그 반의 창의적 체험 활동 수업에 또 짝짝이 양말을 신고 들어갔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오늘도 짝짝이 양말을 신고 왔다고 일부러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반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제 짝짝이 양말을 멋지다고 해서 이 양말이 다 해질 때까지 신고 다닐 거라고 말했지요. 사실은 제가 거짓말을 좀 보탰습니다. 아이들이 좀더 유연하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사서 선생님이 찾아준 동화책을 아이들에게 읽어 주었습니다. 




짝짝이 양말 

저자 욥 판 헥, 출판 담푸스, 발행 2014.12.10.


사람들은 왜 짝을 맞춰서 양말을 신을까? 아빠는 검은색이랑 회색을 좋아하고 안나는 빨간색이랑 노란색을 좋아하지. 그런데 왜 모두 짝을 맞춰 양말을 신는 거지? 그건 너무 지겹잖아. 심심하고 재미없어. 나는 짝짝이 양말을 신을래. 빨간색 양말이랑 초록색 양말을 맞춰 신고 싶어. 파란색이랑 노란색도 좋고. 땡땡이 무늬랑 줄무늬 양말도 같이 신을 거야.


어느 날 샘은 궁금해졌습니다. ‘사람들은 왜 꼭 짝을 맞춰 양말을 신을까?’ 그리고 말하지요.


“나는 짝짝이 양말을 신을래!”


샘이 짝짝이 양말을 신자 사람들도 덩달아 바뀌기 시작했어요. 샘의 반 친구들도 짝짝이 양말을 신었거든요. 엄마, 아빠도 짝짝이 양말을 신었어요.


치즈 가게 아저씨랑 정육점 아저씨도, 축구 선수들과 임금님까지 전부 짝짝이 양말을 신었어요. 샘의 작은 궁금증이 커다란 변화를 가지고 온 거예요! 어, 그런데 이제 모두가 짝짝이 양말을 신게 되었네요? 남들과 똑같은 건 너무 재미없고 지루한 샘은 이제 어떻게 할까요?



[전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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