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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우주 Nov 26. 2023

도시락; 코로나 19 팬데믹의 유물

다음 주면 11월이 가고, 올해의 매듭 12월이 옵니다. 슬슬 한해살이를 정리할 시간이 되었지요. 저는 대청소 계획을 세웠습니다. 오랫동안 안 입은 옷과 신발, 그리고 방치된 운동기구들과 낡은 그릇들을 버리고 비워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저는 먼저 찬장을 살펴보았습니다. 찬장 한편에 있는 도시락들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과감하게 밖으로 꺼냈습니다. 이제는 제가 도시락을 쌀 일이 없을 것 같아서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여러 개의 빈 도시락들을 보니 떠오르는 얼굴이 많았습니다. 비록 이제는 쓸모가 없어져서 찬장 밖으로 나와 있지만, 한때는 귀한 사람들의 심밥을 담아 나른 도시락으로서 구실을 톡톡히 한 그릇들입니다.



2020년 9월 1일, 저는 교육공무원으로서의 마지막 임무를 부여받고, 한 지역의 교육장으로 발령받았습니다. 그때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사회적으로 매우 암울하고 경직된 분위기였지요. 정부는 코로나 19 방역 지침에서 대중식당의 테이블당 식사 인원을 제한하고, 각종 행사와 결혼식, 장례식의 참석 인원까지 정해 주었습니다. 저도 방역 마스크로 얼굴을 절반이나 가린 채 간부 직원들만 참석한 대회의실에서 청사 내 방송시설을 이용하여 조촐하게 취임식을 했습니다.


제가 새로 부임했으니 마스크를 벗고 직원들과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차도 마시며 친해질 기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지요. 교육지원청 내의 총무 부서에서는 저와 함께 점심을 먹는 인원을 엄격하게 제한하여 배정하고 식당을 정해 주었습니다. 그렇게라도 저와 직원들 간의 거리를 좁히고 친밀도를 높여 따뜻한 직장 문화와 근무 환경을 만들어보자는 뜻이 있었지요.



그런데 저와 함께 점심을 먹는 자리에 불려 나온 직원들을 살펴보니 여간 불편해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이제 막 부임한 교육장이 낯설고 어려운데 한 테이블에 몇 명만 앉아 식사하는 자리에 끼어 있으니 그럴 수밖에요. 특히 경력이 낮은 직원들은 업무보고를 할 때보다 오히려 긴장하며 식사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상당한 기간 동안 제 의도와는 다른 점심시간이 계속되어서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직원들은 점심시간에 학생들의 급식지도와 생활지도를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 교직원들은 점심시간도 근무시간에 포함되지요. 그리고 그것은 교육청 등 교육 행정 기관에 근무하는 교육공무원과 여타의 공무원보다 한 시간 일찍 퇴근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하지만, 교육지원청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교원일지라도 학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점심시간이 엄연한 휴식 시간으로 보장됩니다. 직원들은 자유롭게 점심을 먹고 쉴 수 있는 시간이지요.



어느 날 제가 직원들과 함께 식당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지 않는 날이 생겼습니다. 저는 아침에 샌드위치를 만들어 도시락을 두 개 준비했습니다. 부속실에서 일하는 주무관과 함께 간단히 먹을 생각이었지요. 교육장 부속실은 일반적인 비서실과 기능이 같고, 담당 주무관은 항상 저에게 집중하여 제 업무와 일정을 순조롭게 관리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어찌 보면 부속실 주무관은 교육지원청 안에서 저와 가장 밀접한 사이였지요. 그날 제가 처음으로 싸 간 도시락을 부속실 주무관과 둘이서 먹었습니다. 도시락은 맛도 괜찮았고, 무엇보다도 식당으로 이동하지 않는 편리함과 시간적인 여유까지 있어서 생각보다 좋았습니다. 그 후로 저는 점심식사 일정이 없는 날에는 가끔 도시락을 싸서 간부급 직원들이나 특별한 격려와 위로가 필요한 직원들과 함께 먹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코로나 19 감염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고, 방역 지침은 더욱 엄중해져서 정부에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화했습니다. 급기야 코로나 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 회의에서는 전국적으로 사적인 모임 허용 인원을 코로나 19 백신 접종 완료자에 한해서 네 명으로 제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방역 지침에 따라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식당·카페 등은 2그룹 시설로 구분되어 밤 9시까지만 영업 수 있었던 참으로 혹독한 시절이었지요.



이렇듯 코로나 19 방역 지침 때문에 대중식당을 이용하는 일이 불편해지자, 배달 음식이나 편의점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하는 직원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제 도시락에 대한 소문이 직원들 사이에 퍼져 나갔지요. 저를 만나는 직원들은 한결같이 제 도시락을 궁금해하고, 먹어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참에 제 도시락을 모든 직원들이 한 번씩은 먹을 수 있게 해 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코로나 19 감염 확산 기간에는 어차피 기관장들의 외부 활동도 자제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제가 학교나 외부 기관을 공식적으로 방문하는 일도 드물었지요.



제가 싸 온 도시락을 함께 먹은 직원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직원들은 차츰 저를 편안하게 대하는 것 같았습니다. 친화력이 덜한 직원들은 여전히 불편해했지만, 대다수 직원들은 업무추진비로 사 주는 밥보다 의미 있고 맛있다는 반응이었지요. 그리고 제가 싼 도시락에 대하여 코로나 19 시대에 생겨난 우리 교육청만의 특혜이며, 아마 전무후무한 유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제 이동을 도와주었던 교육지원청 1호차의 운전담당 주무관은 제 도시락 중에서 베이컨 볶음밥이 제일 맛있다고 했습니다. 저더러 볶음밥을 가져온 날에는 점심식사에 자기를 꼭 끼워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지요.  



제가 도시락 반찬으로 자주 요리했던 것은 달걀말이와 삼겹살 간장구이였습니다. 달걀말이는 도시락을 싸는 사람이라면 꼭 해보는 도시락 반찬의 정석이지요. 제가 도시락을 처음 쌀 때는 달걀말이가 어설펐는데, 자주 만들다 보니까 나중에는 상품으로 팔아도 되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덕분에 제가 먹어 보아도 모양과 맛이 훌륭한 달걀말이를 만들 수 있게 되었지요. 그리고 인기 있었던 삼겹살 간장구이는 삼겹살을 간장양념에 재워 두었다가 구운 것으로 특히 젊은 직원들이 좋아했습니다. 생삼겹살 구이보다 맛있다며 간장양념의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한 사람들있었지요.



제가 근무한 교육지원청은 시가지 끄트머리에 위치하여 울타리 너머에는 밭이 있었습니다. 마침 밭주인과 시설관리 주무관이 잘 아는 사이여서 울타리 옆으로 한 이랑을 얻어 옥수수와 방울토마토, 고추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그 밭은 직원들의 흡연공간 옆이라서 담배를 피우러 간 직원들이 관심을 갖고 보살펴 키웠지요. 또 나중에 그것들을 수확해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눌 때, 저도 가져다가 도시락에 담아서 직원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제가 여러 달 동안에 걸쳐 200개가 넘는 도시락을 쌀 수 있었던 것은 아침 시간이 비교적 여유로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집에서 지낼 때는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출근하느라 아침마다 정신이 없었지요. 그런데 교육장 관사에 따로 나와 살면서부터 분주했던 아침 시간이 오롯이 저만의 것이었습니다. 휴식과도 같은 아침 시간에 저와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위한 도시락을 준비할 시간은 충분했지요. 그리고 제가 직장 생활을 병행했지만, 어쨌든 주부 경력도 30년이 넘다 보니 제 요리솜씨를 스스로 믿고 용기를 냈던 것입니다.



저는 이제 도시락을 쌀 일이 없지요. 올 해거름에 집안 대청소를 하면서 쓸모 없어진 빈 도시락들을 찾아 내놓, 그 도시락에 담아간 밥을 맛있게 먹고 저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많이 그리웠습니다. [전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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