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뒤쪽으로 도시개발사업지구로 지정된 구역이 이어져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1년 가까이 근무하고 있는 동안 그곳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의 소리와 온기 그리고 냄새를 품었을 집들이 낡고 허물어진 채 묵묵히 철거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 환경에서 학교와 인근 아파트에서는 그 빈집들이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할까 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지요. 학교에서는 교원들을 5개 조로 나누어 요일별로 학교 부근을 순찰하면서 등하교하는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습니다.
제가 근무조였던 어느 날, 하굣길에 나섰던 아이들 대여섯 명이 소란스럽게 골목을 뛰어다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한 아이가 손아귀에 무엇인가움켜쥐고 있었고, 나머지 아이들은 그 아이의 손에 든 것에 관심을 집중한 채 뛰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불러 세우고 가까이 갔습니다. 아이들을 흥분시킨 것은 다름 아닌 쥐였습니다. 아이는 작은 쥐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지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질 뻔했습니다. 아이들은 빈집 골목에서 기어 다니는 쥐를 잡았다고 했지요. 그리고 귀여워서 키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저로서는 경악할 일이었지만,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은 쥐를 애완용 햄스터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지요. 저는 같은 근무조였던 선생님과 함께 아이들과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이며 겨우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철거예정지역 안전지도 항목에 쥐에 대한 내용을 추가하였지요.
얼마 전 서울에서도 지하철역에 쥐가 나타나 사람들이 놀랐다는 뉴스를 본 일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다행히도시의 공공장소에서 쥐떼가 출몰하는 것이 드문 일이어서 모두 놀랄만했지요. 세계적으로 알려진 도시에서 쥐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는 도시 중 하나는 아마 미국의 뉴욕시일 것입니다.
"연봉 12만~17만달러(한화로 약 1억5000만~2억2000만원), 대졸 이상에 5년 이상의 경험, 뉴욕에 서식하는 쥐 떼와 싸우기 위한 '킬러 본능'과 '신념'이 있는 사람"
2022년 12월 뉴욕 타임스(NYT) 구인 광고란에는, 미국 뉴욕시가 쥐 박멸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며, 위와 같은 구인공고를 냈다고 합니다. 쥐가 얼마나 많고 지긋지긋하면 쥐 잡는 인력의 구인공고에 공공기관에서 이렇게 거창한 조건을 내걸었을지 짐작이 갑니다.
저도 쥐를 무척 싫어합니다. 저에게 싫어하는 동물을 꼽으라면 아마 Top3 안에 들지요. 톰과 제리, 미키 마우스, 시골 쥐와 도시 쥐 등에 나오는 쥐들은 코믹 하거나 귀여운 이미지입니다. 하지만 그 쥐들과 제가 어려서부터 본 쥐는 비슷하면서도 매우 다릅니다. 저에게 쥐라면, 곡식 자루를 뚫어 식량을 훔쳐 먹고, 선명한 이빨자국을 남기며 이것저것 갉아먹고, 한밤중에 천장을 달리며 잠을 깨워 공포에 몰아넣고, 털도 안 난 분홍색 새끼들이 컴컴한 곳간 구석에서 꼬물거리고, 쥐꼬리를 잘라 학교에 가져가 검사를 받아야 했던 혐오스러운 기억이 있을 뿐이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전국적인 국민운동을 전개하여 쥐를 잡아야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1970년 1월에 농림부는 전국적으로 쥐 잡기 운동을 펼쳤습니다. 전국의 모든 가구에 쥐약을 나누어 주고, '쥐약 놓는 날'을 정해 온 나라에서 동시에 쥐약을 놓도록 했지요. 그리고, 정부 차원에서 사전에 전국 방방곡곡에 안내문을 붙여 쥐약 놓는 날짜와 시간을 알렸습니다. 전국에서 일제히 쥐약을 놓아 쥐를 잡으면 곧 박멸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대대적인 홍보를 거쳐 시행한 정책이었지요. 또 국민 계도를 위해서 당시로서는 가장 파급력이 확실한 학교를 통해 학생들에게 지침을 전달하고, 그 결과까지 확인하는 방법으로 시행 효과를 높였습니다.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학생과 공무원은 가슴에 <쥐를 잡자>라고 쓴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기도 했지요. 이렇게 시작한 쥐 잡기 운동은 1990년대까지 이어졌습니다.
정부는 1970년에 쥐가 한 해 동안 먹어 치우는 식량을 약 240만 섬으로 추정했습니다. 당시 쌀가격으로 계산해도 240억 원 규모이고, 곡물 총생산량의 8% 정도였다니, 쥐 먹이 치고는 어마어마했지요. 더구나, 당시 우리나라는 쌀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보리나 감자, 고구마로 끼니를 잇는 가정이 많아 쌀 한 톨이 아쉬운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쌀 부족을 메꿀 수 있는 혼식과 분식을 장려하는 정책도펼쳤지요. 이혼분식 장려 정책 때문에 저는 점심시간이면 도시락에 적정량의 잡곡이 섞였는지, 밀가루 음식인 지 검사를 받았습니다. 즉 흰쌀밥을 먹지 못하게 하겠다는 정부의 결의를 강력하게 보여준 것이지요.
그리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쥐를 몇 마리 이상 잡아 오라는 숙제를 내주던 시절이었습니다. 집에서 잡은 쥐의 꼬리를 잘라 묶어서 학교에 가져가 검사를 받아야 하는 엽기적인 숙제였지요. 정부에서 쥐 잡기를 독려하기 위한 수단으로 벌인 일이었겠지만, 요즘 같으면 학교뿐만 아니라 세상이 뒤집힐 일이었지요. 그 무렵, 저는 죽은 쥐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또 집에서 기르던 개가 쥐약이 묻은 음식을 주워 먹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도 여러 번 보았지요. 그때의 광경이 트라우마로 남아 저는 끝내 개를 키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쥐약 놓는 날을 전후하여,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쥐약 묻은 음식물을 조심하라는 당부와 단속을 잊지 않았지요.
그때 전 국민 쥐 잡기 운동의 결과, 1차에서 4천만 마리, 2차에서 3천만 마리, 3차에서 4천만 마리를 잡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비록 쥐를 완전히 소탕하지는 못했으나, 쥐가 먹는 식량 손실과 전염병 피해를 대폭 줄인 것은 분명했지요.
뉴욕시는 구인광고에 맞는 '킬러 본능'과 '신념'을 가진 사람을 채용하여 쥐를 잘 잡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뉴욕시의 쥐 박멸이 계획대로 성공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뉴욕에 가면 강아지 만한 쥐가 사람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떼지어 다닌는다는 여행자들의 목격담은 이제 그만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전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