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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우주 Aug 04. 2023

큰일났어요, 애들이 방학했어요!

- 여름 방학 -

저는 오늘 여름 방학 첫날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저를 둘러싼 사정이 어수선합니다. 오전에는 집에 요양보호사가 와 있어서 제가 굳이 집에 있기도 불편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방학 첫날부터 집에서 나가기로 했습니다.


아침부터 저를 오라는 데도 없고, 선뜻 갈 데도 없어서 집 근처 도서관으로 갔습니다. 도서관은 걸어서 갈 수 있는 데다가 저희 집보다 조용하고 시원합니다. 또 노트북을 가져가 사용할 수 있게 기본 장비를 갖춘 <노트북실>이 따로 있어서 더 좋습니다.


저는 도서관에 도착하여 차분하게 방학 생활을 계획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학교에서 받은 과제를 정리했는데, 세 가지로 요약되었습니다. 


첫째, 늘봄학교 틈새교실(아침 돌봄, 방과 후 돌봄 교실로 활용) 리모델링 공사가 방학 중에 진행되니까 가끔 학교에 가서 공사 상황을 점검하고 확인하는 일. 

둘째, 2학기부터 전교생을 대상으로 방과 후에 운영하는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외부강사를 채용하고, 강사들과 함께 교육과정 등을 준비하는 일. 

셋째, 정해진 근무일에 하루 출근하고, 방학 중 연구 과제로 제출한 주제(느린 학습자의 문해력 향상 방안)에 대하여 선행 연구 논문과 실천 사례를 찾아 연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


제가 교감, 교장일 때는 일반 선생님들의 방학은 저보다 여유롭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막상 제가 교사로서 방학을 맞고 보니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올여름 방학 내내 편히 쉴 수는 없을 것 같고, 긴 여행도 못 갈 것 같습니다. 그나마 학기 중보다는 다소 편히 쉴 수 있는 것에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방학을 하면 선생님들이 좀 편안해지는 건 사실입니다. 이것을 두고 일각에서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며, 비판적인 여론을 만들기도 하지요. 그러나 방학이 결국은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저도 학교를 벗어나 교육청과 교육연수원에서 10여 년을 근무하는 동안, 학교 밖에서 학교를 보면서 학교를 제대로 알게 된 것입니다.


저는 작년에 퇴임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좀 더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지요. 제가 교육연수원과 교육청에서 근무하다가 퇴임했고,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했지만 담임을 맡아 학급을 관리하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객관성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3월부터 새로운 친구, 선생님, 교육과정, 교실 분위기에 익숙해짐과 동시에 교육 활동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가 누적되는 것입니다. 또 교실 안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아이들 간 배려하고 존중하는 힘의 균형이 깨지고 기울어지면서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불만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당연히 생기는 아이들의 긴장, 좌절감, 피로도가 스트레스로 뭉쳐 날씨가 더워지면서 최고조를 향해 치닫게 되지요. 선생님들도 이런 아이들을 격려하고 다독이면서 교실을 지켜내는 데 점점 한계를 느낍니다. 다행히 방학을 하면서 각자 집으로 뿔뿔이 흩어져 편안하게 지내다가 개학에 맞추어 학교에 오는 것이지요. 


그리고 선생님들은 방학을 하면 각각 개인 일정에 따라서 쉬고, 여행하고, 연수하고, 연구하고, 계절학교(대학원 등)에 다니고, 근무하고, 캠프나 연수 강사로 나가고, 자신의 아이들을 돌보고, 부모님과 친지들을 찾아뵙는 등등의 일을 합니다. 물론 모든 선생님들의 방학 생활이 같은 것이 아니라 개인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개학이 다가오면 선생님들은 방학 직전의 힘든 상황을 잊고 아이들을 그리워합니다. 아이들도 친구들과 선생님을 보고 싶어 하지요. 그리고 마침내 개학을 하게 되면, 마치 3월의 교실처럼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2학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들은 방학이 다가오면 반기는 마음으로 이런 우스갯소리를 합니다.

"방학이 없다면 아이들이나 우리들 중 죽거나 미치고 말 사람이 한둘이 아닐 거야."


제 생각에는 방학이 단순히 혹서기와 혹한기를 피한 휴업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어쩌면 치열하고 격렬하게 한 학기를 마친 아이들과 아이들, 아이들과 선생님 사이의 완충재 역할이고, 또 새 학기를 위한 보완의 시간인 셈이지요. 


제가 며칠 전에 라디오 방송을 듣다가 웃음이 터졌습니다. 어느 청취자가 보낸 사연 중에 '큰일 났어요. 내일부터 방학이에요.'라는 문자 사연을 아나운서가 생생하게 전해 주었거든요. 가정에서 방학 동안에 아이들을 돌보기가 쉽지 않다는 고백으로 들렸습니다.


어른들에 비하면 아이들은 매우 불완전하고 미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때로는 인내하며 돌보아야 하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참으로 소중하고 희망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제가 나이 들어서 아이들을 만나 보니, 아이들이 더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앞으로 이 아이들이 성장해서 만들어가는 사회에 의탁하여 지낼 수밖에 없을 텐데, 아이들이 좋은 어른, 훌륭한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잘 돌보아 주어야겠다고 생각도 들었습니다. 


바람이 선선해진다고 느낄 무렵, 여름 방학이 끝납니다. 아이들은 다시 신바람을 안고 학교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학교는 아이들을 환영하며 맞이할 것입니다. 또 아이들은 여름 방학보다 긴 겨울 방학을 기다리며 2학기를 다니는 동안 쑥쑥 자라겠지요.


[전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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