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직 41년 만에 퇴직함 -
제가 퇴직하기로 마음을 굳히자, 저에게 퇴직은 일단 아쉬움과 함께 행복한 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늘 평생 동안 학교에 다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일곱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이어진 직장 생활을 학교와 교육청 등에서 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요즘은 거의 필수 코스인 육아휴직도 제도적으로 불완전한 시기라서 휴직 기간도 없이 온전하게 근무했지요.
저는 퇴직하고 나면 홀가분하게 지내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무책임하고, 이기적이고, 불규칙적이고, 게으르고, 자유분방하고, 돌발적이고, 즉흥적이고, 가볍고, 독립적이고, 하릴없이 그러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따져보니, 제 평생 어설프게나마 독립적으로 살아본 게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기 전까지였던 것 같습니다. 아주 잠깐이었지요.
베이비 부머인 제 또래의 사람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제 남편은 가부장적인 가장을 꿈꾸었고, 시어머니는 시아버지가 세상 떠나고 저희 집으로 와서 함께 20년 넘게 살고 있습니다. 친정 부모님도 고향에 두 분만 계시니 늘 마음이 쓰입니다. 아이들도 아직 미혼이라 제가 해방을 외치고 나서기에 부담이 없지는 않지요. 하지만 퇴직이라는 큰 변화를 맞는 이때가 아니면, 새로운 삶에 도전할 용기도 에너지도 앞으로 저에게는 생길 것 같지 않았습니다. 퇴직 후 바뀐 일상에 적응하고 나면, 세월은 또 그냥 그렇게 흘러갈 테니까요.
저는 지금까지 소속 학교나 근무 기관의 일정에 맞추어 살았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이 퇴직하면 어떻게 살까 궁금했지요. 선배들의 삶을 엿보며 제 퇴직 후 생활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퇴직자로서의 삶에 대한 꿈은 거창하나, 제 성격에 잘하면 어설픈 전업주부, 아니면 게으른 은퇴자가 될 게 뻔하지요. 거기에 좀 더 노력하면 간헐적 여행자이거나 문화센터 모범 수강생 정도가 아닐까요?
하지만, 제 평생의 루틴이 길들인 저의 규칙성을 지향하고, 일에 몰입함으로써 행복한 관성은 쉽게 멈출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줄곧 들었습니다. 사실은 자유와 해방의 설렘이 두려움과 함께 밀려온 것이지요. 저는 그 두려움 때문에 당분간 규칙적인 일을 하는 게 좋겠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드러내고 새로운 일을 찾는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어디에 쓸모가 있을지 모를 교원자격증, 운전면허증,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증밖에 없는 데다, 저는 작년에 환갑도 지났습니다. 아무리 후한 점수를 준다 해도 새로운 일을 찾기에는 제가 턱없이 부족함을 깨달았지요. 결국 제가 잘할 수 있는 일, 어쩌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즉 저에게 가장 익숙한 일터인 학교에서 일을 찾기로 했지요. 먼저, 제가 집을 떠나서 살고 싶은 지역을 국내 범위에서 몇 군데 꼽았습니다. 그리고 해당 지역의 교육청 홈페이지에서 채용 정보를 보고, 몇 개 학교에 지원서를 냈습니다.
마침내 응답이 왔습니다.
비록 계약직 기간제 교사지만, 제가 1순위로 꼽았던 우리나라 최고의 여행지 제주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지요. 저는 교실을 떠난 지 16년 만에 다시 교실로 가서 아이들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제 마음속에서 맑은 종소리가 기분 좋게 울려 퍼졌습니다.
저요, 제주로 떠나요~~~
[전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