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교실에는 다섯 명의 아이들이 옵니다
- 기초학력 협력교실 -
저는 20년 남짓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습니다. 제가 교사였을 때는, 지금보다 학급당 학생 수가 많았지요. 그때는 학습 참여도가 높고 우수한 아이거나, 반대로 학습에 참여하지 않고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가 아니면 하루종일 이름 한 번 불리지 못하고 집에 가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동료들은 입버릇처럼 학생수가 줄어든다면 질 높은 수업으로 완전 학습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푸념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교육 여건과 환경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저는 41년 동안 학교와 교육연수원, 교육청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리고 퇴직 다음날부터 다시 교사가 되어서 교실로 갔지요. 제가 일하는 교실은 매우 특별한 교실이었습니다. 한글을 해득하지 못했거나 기초셈을 못하는 아이들이 자기 교실에서 공부하는 대신 오는 곳이었습니다. 그 아이들의 기초학력을 향상하기 위하여 저를 기간제 교사로 채용하고 별도로 설치한 특별교실이었지요. 학교에서는 제 교실을 '배움 교실'이라고 하고, 저를 '기초학력 협력교사'라고 불렀습니다.
제 교실에 오는 아이들은 모두 느린 학습자와 기초학력 부진아였지요. 그 아이들은 원래의 교실에서 또래들과 함께하는 수업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아이들 개별 수준에 맞는 별도의 수업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모두 다섯 명이 제 교실에 오기 때문에 다섯 개의 수업 계획이 필요했지요. 다행히 아이들이 한꺼번에 오는 일은 없었지요. 아이들마다 정해진 시간표에 맞추어 한 명씩 제 교실에 왔습니다. 다섯 명이 모두 한 반이라고 해도 적은데, 수업은 1대 1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제 교실에서는 완전 학습이 이루어졌을까요? 교육학에서 말하는 완전 학습은 수업을 받은 학생의 약 95%가 주어진 학습 과제의 약 90% 이상을 완전히 습득하게 하는 학습 방법입니다. 아쉽지만 제 교실에서는 결코 완전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제 교실에 오는 다섯 명 중 가장 어린아이는 2학년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는 1학년 때 한글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채 2학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유아기 발음이 남아 있어서 발음 교정도 함께 받고 있었지요.
3학년 아이는 난독증인 데다, 외국인처럼 발음하고 있어서 발음 교정도 병행했습니다. 실제 그 아이는 다문화 가정에서 우리말 발음을 제대로 배우기가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또 매주 1시간씩 언어치료사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4학년은 두 명이었습니다. 둘 다 비만도가 상당히 높았고, 한 아이는 어머니가 동남아시아 출신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국어 학습에서 받침이 있는 글자와 자주 쓰지 않는 어휘를 사용하여 말하고, 읽는 것을 어려워했지요. 또 그 아이들이 일상적인 대화에서 쓰는 어휘의 수나 수준도 또래에 비하여 낮았습니다. 그리고 둘 중 한 아이는 구구단을 못 외워서 수학 연산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5학년 아이는 소리 내어 읽기와 수학이 부진했습니다. 특히 수학은 4학년과 3학년 과정을 오가며 공부했지요.
제가 하는 1대 1 수업은 학생 수가 많은 학급에서 하는 수업에 비해 교사로서 분명히 수월한 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개별 학생의 학력 부진 지점과 원인을 정확하게 찾아서 수준에 맞게 개별 학습을 준비하는 과정이 녹록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학습 과제를 끝까지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지요. 또한 학력 부진으로 인한 아이의 상처와 낮은 자존감을 살펴서 심리 정서적 치유와 회복을 위한 일에도 힘써야 했지요. 제가 가장 힘들었던 일은 아이들이 학습 과정에서 자주 실수하고 포기하는 것을 끊임없이 격려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아이들은 부진한 학습 수준 자체보다 의욕이 없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밀고 당기며 수업을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쏟아야 할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도 있었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다섯 아이들이 느리게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아이들에게서 제가 받는 교사로서의 기쁨과 보람은 일반 교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전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