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도 싫고, 숙제는 더 싫어

- 공부를 안 하는 아이들 -

by 전우주

어느 날 한 아이가 제 교실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날은 아이와 두 시간 동안 연속하여 수업하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를 기다리다가 하는 수 없이 교실로 찾으러 갔지요. 제가 짐작했던 대로 아이는 교실에 없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수업을 마치면서 아이를 제 교실로 가라고 보냈다고 하니, 저로서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 아이는 월요일과 화요일, 목요일 오후에 국어와 수학의 기초학력 보충학습을 하는 4학년 아이입니다. 이제 막 구구단을 외울 수 있게 되어 기초 곱셈과 나눗셈을 시작했어요. 5학년 진급을 앞두고 있으니, 보통 아이들에 비하여 3~4학기 정도 차이가 나는 셈이지요. 저는 그 아이의 학력 부진이 누적될수록 제 학년의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따라가기가 더 어려워질 것 같아 마음이 급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제 마음보다 훨씬 더디게 따라오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지요.


지난주 목요일 오후에는 제가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목요일 수업을 대신하여 나눗셈 10문항을 풀어서 가져오도록 화요일 수업을 마치면서 아이에게 학습지를 만들어 주었지요. 물론 공적인 출장으로 인해 빠진 수업을 제가 보충하거나 숙제를 내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일주일의 학습 공백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잘 알기 때문에 최소한의 학습을 위해서 숙제를 내준 것이지요.


저는 화요일에 수업을 마치면서 그 아이에게 내준 숙제를 이틀 후인 목요일에 제가 출장을 떠나기 전까지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그 아이 학습 속도로 20분 정도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지만 넉넉하게 시간을 준 셈이었지요.



그런데, 그 아이는 숙제를 받아 간 화요일 이후 제 교실에 오지 않았습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어제야 왔는데 빈 손이었습니다. 제가 숙제로 준 학습지는 집에 두고 왔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이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과 학습에 게으른 것을 나무랐습니다. 사실 처음 숙제를 내줄 때, 저는 다음 날인 수요일에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목요일로 미루어 정한 것이었거든요. 오늘 제 교실에 오지 않고 집으로 가버린 것은, 아마 어제 꾸지람을 들은 상처가 남아 있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숙제를 해결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요.


지난번에는, 금요일 오후 수업에만 오는 5학년 아이가 비슷한 일로 저를 속상하게 했지요. 그 아이는 자기가 다니고 있는 지역아동센터의 행사에 꼭 참여하고 싶어서 제 수업을 빠지겠다는 거예요. 그 대신 숙제를 받아가는 조건으로 승낙해 달라고 아이가 먼저 요청했지요. 그런데, 그 아이도 그 후 2주 동안 제 교실에 오지 않았습니다.


제 교실에 오는 아이들은 학력이 부진하고 학습이 느리다는 이유만으로도 여기저기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하면 아이들에게 숙제를 내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런 아이들의 특성상 자기 주도적으로 해야 하는 과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하지만 수업을 못하게 되는 상황이나 학습의 연속성 등의 이유로 인해 숙제는 필연적으로 생겼습니다.


아이들에게 숙제가 필요하게 되면, 저는 아이와 함께 이야기하며 적정한 학습량과 제출 기한을 스스로 정하도록 했지요.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어김없이 학습량을 줄이고, 제출 기한을 늦추려고 했습니다. 제가 안 된다고 하면 얕은 수가 빤히 보이는 데도 이런저런 핑계를 댑니다. 그렇게 아이들이 자신의 편익을 위해 서툴지만 자기주장을 펼치며 노력하는 게 귀엽기도 했지요.


제가 아이들과 함께 숙제를 정하는 방식을 두고, 누군가는 비효율적이라며 비난하더군요. 아이들에게 숙제를 내주는 것은 교사로서 당연한 업무이고, 교육적 권한이라는 것이었지요. 맞는 말이지요. 하지만 저는 이 작은 일을 통해 항상 교실에서 주눅 든 채 뒷전에 있었을 아이들이, 스스로를 특별한 사람으로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하는 어떤 일의 결정 과정에서, 함께 참여하며 자기 주도성을 기르고 성취감을 갖게 하는 것이지요. 또,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잘 지키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컸습니다.


20221108_161123.jpg?type=w580


그런데, 저의 속 깊은 바람과는 달리 아이들은 숙제와 관련된 약속을 잘 지키지 않았지요. 이것은 제가 아이들에게 가급적 숙제를 주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고요. 아이들은 이미 담임 선생님이나 교과전담 선생님의 숙제를 받고 제 교실에 옵니다. 거기에 저까지 숙제를 얹어 주는 것은 가뜩이나 공부가 재미없고, 숙제는 더 싫은 아이들에게 몹시 부담되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하여 배려한 것이지요.


기초학력 부진아와 느린 학습자인 아이들만 오는 제 교실의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학습에 대한 책임감이 떨어지는 편입니다. 특히, 학습과 관련된 약속을 이행하는 비율이나 태도가 좋지 않지요. 저는 이 지점에서 참 힘들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아이들이 제 교실에서조차 상처받고 위축될까 봐 때로는 눈감아 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반면, 아이들이 학습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과 약속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하지만, 선생님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초등학생이 몇이나 되겠어요? 그것도 공부가 영 재미없고, 숙제는 더 싫은 아이들인데요.


어쨌든 아이들은 끊임없이 제가 인내하고 노력하게 만듭니다.


[전우주]

이전 03화제 교실에는 다섯 명의 아이들이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