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칸방 신혼집을 설계한 시어머니의 꼼수

by 전우주

저는 시어머니가 저희 신혼집으로 처음부터 오로지 단칸방을 구해 줄 계획밖에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시어머니는 제가 신혼집으로 단칸방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선택지를 치밀하게 설계하여 내밀었으니까요. 그리고 굳이 그 계획을 평가한다면, 시어머니 편에서는 시어머니를 참 영리하고 똑똑한 사람이하고 했겠지요. 하지만 제 편에서 말하자면, 시어머니는 참으로 사악한 사람이었지요. 그때 시어머니는 예순한 살이었습니다.


저희는 결혼 후 주말부부로 지내야 할 형편이어서 신혼집을 어디에 구하느냐부터 고민이 되었습니다. 저는 남편이 있는 서울에 구하고 싶었지요. 그런데, 시어머니는 한사코 제가 있는 지방에다 집을 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여기서부터 시어머니의 꼼수가 작동을 한 것 같아요. 그때도 서울은 지방보다 집 값이 훨씬 비쌌으니까요.


그리고 어느 날, 시어머니는 제가 근무하는 학교로 전화를 했습니다. 당신이 집을 몇 군데 봐 두었으니, 저더러 직접 보고 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일요일에 시어머니를 만나서 저희 신혼집으로 봐 두었다는 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제 남편은 내려오지 않아서 저는 시어머니와 둘이서 집을 보러 다녔지요.



첫 번째 구경한 집은 13평짜리 주공아파트였어요. 5층 규모의 동에 집안 내부는 방이 두 개, 그리고 부엌과 거실이 붙어 있고, 욕실이 있었지요. 1970년대에 핵가족 기준에 맞추어 지은 작은 아파트로 대한주택공사에서 비교적 싼값에 공급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지방에 있는 13평짜리 주공아파트는 매매가 500~600만 원, 전세가 400~450만 원이었습니다. 저희가 당분간 주말부부로 지낼 것을 감안하면 독립성과 보안에서 강점이 있는 집이었지요.


두 번째는 방 두 개와 별도 공간에 부엌이 있었고, 화장실은 바깥에 따로 있는 집이었습니다. 주인집과 한집처럼 붙어 있어 독립성에서 취약한 단점이 있었어요. 저는 두 번째 집을 보고 나서, 시어머니에게 아파트가 좋겠다고 말했지요. 시어머니는 세 번째 집도 마저 보고 정하라고 하면서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세 번째 집은 단칸방이었어요. 상업고등학교에 다니는 남동생과 누나가 자취를 했는데, 남동생이 다른 도시에 있는 은행에 취업하여 이사하게 되자 급하게 나온 방이었지요. 좁은 방에는 여성용 팬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서 방안 상태를 가늠할 수가 없었습니다. 봉제 과정을 마친 속옷에 남아 있는 실밥을 뜯어내는 일을 하는데, 노동에 비해 너무 싼 노임라고 생각되어 놀랐어요. 아마 한 개당 1원을 받는다고 했던 것 같아요. 그 방에서 살고 있던 학생의 누나 말이, 하릴없이 노느니 반찬값이라도 벌기 위해서 가내부업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흔히 시골에서 도시로 나가 공부하는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서 누나나 여동생 또는 할머니가 따라가서 함께 살면서 그런 가내부업을 하기도 했지요.


제가 본 세 번째 집은 세 군데 집 중에서 가장 열악한 곳으로 주인집 마루 끝에 있는 작은 방이었습니다. 바깥에 있는 부엌은 담벼락을 따라 슬레이트로 지붕을 덮어 넓힌 공간이었어요. 그리고, 당시에 연탄가스 사고로부터 온돌방을 해방시켰다는 찬사를 받은 파란색 플라스틱 물통이 달린 새마을 연탄보일러가 있었지요. 또 화장실은 대문 옆에 따로 있었습니다.


저와 함께 제 신혼집 후보군 세 곳을 다 돌아본 시어머니는 저에게 제일 마음에 드는 집을 물었어요. 저는 당연히 아파트가 좋다고 말했지요. 그러자, 시어머니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아파트가 좋겠지? 나도 마음에 든다. 그런데 내가 가진 돈이 없어서 200만 원밖에 줄 수가 없어. 나머지는 네가 채워서 전세로 들어가서 살든지, 사 가지고 살든지 알아서 해라. 그리고 방 두 개짜리 집은 전세가 220만 원인데, 대신 그 집에서 살게 되면 3월부터 대학에 들어가는 막둥이를 네가 데리고 있어야 한다. 세 번째 집은 내가 전세금 180만 원을 다 해줄 수 있어. 결혼식 날짜에 맞추려면 얼마 안 남았으니까 잘 생각하고 빨리 결정해라."



시어머니는 제 신혼집을 이미 정해 두고 시작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시어머니에게 마치 사기당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아무에게도 할 수 없었지요. 그 수상하고 구차스러운 말을 누구에게 전한다는 것이 왠지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혼자서 세 번째 집으로 정한 다음, 시어머니에게 알렸습니다.


"왜 아파트가 좋다더니? 야야, 그런데 말은 바로 하고 넘어가자. 나는 13평짜리 아파트도 해줄 수 있었고, 방 두 개짜리 전셋집도 해 주려고 했다. 분명히 말하는데 네가 180만 원짜리 단칸방으로 정한 거다."


그때 저는 스물네 살밖에 안 먹었고, 세상 물정 모르는 순둥이였지요. 그렇다고 해서, 제 신혼집을 이렇게 정하게 하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왜 안 들었겠어요.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묻어버리고 참는 게 미덕인 세월이었지요. 시어머니는 그 후로도 당신은 13평 아파트나 방 두 개짜리 전셋집을 구해 주고 싶었다는 말을 여러 번 했어요. 시어머니가 거기에 붙였던 치졸하기 짝이 없는 옵션은 쏙 빼고 말입니다.


결국, 제 신혼집은 아늑함이나 달콤함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는 전세 보증금 180만 원짜리 단칸방이었지요. 방이 너무 좁아서 혼수로 마련한 10자 장롱 중 2자짜리 가운데 장롱과 책상을 들여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사정이 딱해 보였는지 가구점에서 장롱과 책상을 가져가는 바람에 자동 반품되었지요. 게다가 방에 딸린 별도 공간이 없어서 안 그래도 좁은 방에 장롱과 화장대, 장식장, 세탁기, 냉장고, 전기밥솥 등 온갖 살림 도구들을 다 들여놓아야 했습니다. 부엌이라고 공간을 구획하는 벽도 문도 없는 난장 같은 데에다 석유곤로와 작은 에나멜 찬장을 사다 놓고 소꿉놀이보다 부족한 신혼살림을 시작했지요. 제 생애 가장 가난한 시절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너무 불편해서 6개월 만에 이사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시어머니는 99살의 치매 2등급 환자입니다. [전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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