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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다 1

25년 3월 9일

by 해마

실수를 반복하는 나로 인해 짜증이 나던 날. 걷고 생각하고 쓰고를 반복하다가 교보문고에 들어갔다.

큰 지점이었기에 사람도 많고 책도 많았는데 한 시간을 구경해도 끌리는 책이 없었다.


성장은 왜 계단식이 아닌지. 일정 구간을 겹치는 막대그래프처럼 성장해야만 하는지. 이걸 감히 성장이라고 할 수 있는지. 같은 실수를 굳이 반복하고 거기에서 오는 자괴감은 나를 우울 속으로 밀어 넣었다. 책이 해답서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날은 답을 찾고 싶었다. 너무 답답했나.


매대에 펼쳐진 책들 말고 꽂힌 책들 사이로 한 책을 골라 꺼냈다. 프롤로그에 이 책은 해답을 줄 수도 없고 위로를 할 수도 없다고 써져 있었는데, 나 같은 청개구리는 그런 글귀에 쉽게 혹한다. 수필은 좀체 읽지 않는 나지만 그 문장을 읽자마자 계산대로 향했다.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은데, 그중 가장 이해하기 힘든 걸 꼽자면 나 자신이다. '이유를 모르는 마음도 있는 거지. 흘려보내야 하는 마음도 있는 거지.'라며 나를 달래다가도 오늘 내 생각을 정리하고야 말겠다는 일념 하나로 북카페에 자리를 잡고 한 자리에서 책을 다 읽었다. 수도 없이 밑줄을 그었고, 어떤 페이지에선 다음장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문장을 두 번, 세 번도 읽었다. 우울한 사람은 우울을 이야기하는 일이 잘 없다. 그건 나도, 우울한 타인이 어떤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지 알 길이 없다는 뜻이다.


이 책이 있어서, 하필 내 눈에 띄어줘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작가님이 나와 비슷해서 그게 심심찮은 위로가 됐다. 나는 꽤나 회복탄력성이 좋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그저 고통을 체납하고 있었던 거다. 몇 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빠져나오기 힘든 우울이 찾아와 힘들었다. 근데 그게 고통의 체납이었다니. 미룰 게 없어서 고통마저 미루는 삶이란 다시 생각해도 너무 한심하다. 미루는 동안 우울은 몇십 배 불어나 나를 덮친다.


처음엔 영문을 몰라 힘들었고 그 뒤엔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으며, 지금은 몸집이 불어난 우울이 나를 덮칠 채비를 마친 게 느껴져서 두려울 뿐이다. 다시 정상궤도로 올라야 하는데 방법을 모른다. 구심점을 벗어난 나는 끝없이 멀어질 일만 남았겠지.


브런치에 가입하기 전 써오던 블로그에 독서일지를 쓰려고 했으나, 지인들이 많이 보는 관계로 관두기로 했다. 애써 숨길 용기도 드러낼 용기도 없는 나는 이 브런치 계정을 충동적으로 만들었다. 앞으로 가장 솔직한 글은 이곳에 쓰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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