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3월 18일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주말에는 사람들을 만났다.
영희는 회사에서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퇴근하고 차만 타면 울었다고. 영희는 어떻게 이런 늪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비결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나는 그렇게 힘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걸까.
사람들을 만나면 필요 이상의 말을 하게 된다. 페르소나를 연기한다. 그것도 나인지 아니면 방어기제인지 모르겠다. 지난 5년 동안의 모습 중 뭐가 진짜인지 헷갈린다.
요즘은 주변 사람들을 챙기기가 힘들다. 의무감을 쥐어짜 내서 동생 생일 미역국을 끓여줬다. 생일상에 너무 부실한 반찬이 마음에 걸렸는데, 나에겐 최선이었다. 다소 빈약한 생일상에 실망한 기색이 있을까, 표정을 살피고 간간히 말을 거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거였다.
미리 예약해 뒀던 네일을 받으러 갔다. 이런저런 말을 안 시켜서 편했다. 근데, 네일숍 사장님은 나더러 불편한 게 있는지 물어봤다. 그렇게 보였나.
네일은 결과적으로 마음에 들었는데, 기분이 나아지진 않았다. 이건 정말 연구를 해 봐야 할 주제다. 쇼핑을 하고 새로 네일을 해도 기분이 달라지지 않는다니. 그럼 무슨 행위로 내 기분을 끌어올려야 한단 말인가.
가만 생각해 보면 나는 많이 변했다. 누구보다 ‘왜’에 집착하며 동기부여가 잘되는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그냥” 살 수 있다니. 無의 감정으로 지낼 수 있다니. 내가 이럴 줄은 나도 몰랐거니와 내 주변 누구라도 들으면 놀라 자빠질거다.
그래도 약발이 드는 건지 글이 읽히고 공부가 된다. 아이러니하다. 불건강할 때 공부가 잘 된다니. 내 기분이야 어떻든 일단 공부가 되니 희소식이다. 다만, 말을 하고 싶지가 않다. 동생이 자러 들어가는 시간에 집에 기어 들어온다. 반겨주는 인사를 피하고 싶다. 꼬일 대로 꼬인 것 같다.
내일도 날이 춥다는데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나. 분명 최고기온이 영하인 때도 잘만 다녔던 것 같은데 왜 이 정도 날씨로 시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