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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다 3

25년 3월 21일

by 해마


누군가를 미치도록 보고 싶었던 적이 있을까.

좀처럼 인간관계에 목매지 않는 나에겐 지난 몇 주가 특이한 경험이었다. 미치도록 영희가 보고 싶었다. 집 앞에 가서 기다려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희는 바빠서 만날 시간이 안된다고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카톡으로 질문을 했다.


‘나를 인간적으로 좋아하지?’

‘이유가 뭐야?’


타인이 대체 나를 왜 좋아하나 싶은 궁금증이었다. 영희는 다정하게도 정성 들여 나를 좋아하는 이유를 나열했다. 영희는 “이유를 적다 보니 계속 생각하게 되는데, 이거 너만의 플러팅 비법이냐”는 유머까지 빼놓지 않았다. 영희가 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과분했다. ’ 내가 정말 그런가 ‘싶었다. 그녀에게 좋은 사람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영희는 내 작은 신호도 눈치챈다. 그녀는 당장 만나자고 했다. 안 그래도 바쁜 사람한테 마음의 짐을 얹은 것 같아서 입 속이 다갈거렸다. 가장 부담 주고 싶지 않은 사람인데. 그래도 보고 싶어서, 미안한 감정을 잠시 모른 체하기로 했다.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떼쓰는 내 모습이 우습다.


미칠 거면 확실하게 미치고 싶다. 이렇게 애매하게 행동과 자각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일 보다야 자각조차 하지 못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영등포구청역 근처는 갈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과하게 사람이 많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영희를 만나기 전에 이것까지는 이야기하지 말아야지. 했던 것까지 술술 이야기하고 왔다. 보통 때였으면 집에 가는 길에 후회의 파도에 잠식당했겠지만, 영희라서 괜찮았다. 영희의 세계는 나를 위로해 준다. 그녀와 동그란 그네를 탔다. 누워서 타니 하늘을 오랜만에 볼 수 있었다. 하늘은 정말로 넓었다. 푸르고 넓으면서 나에게 뭘 하지 않는 게 꼭 영희 같았다.


매일 철수가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본다. 나에 대해 물어봐주는 그가 곰살궂다. 순간순간 기분을 말로 표현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게 됐다. 그럼에도, 나를 위해 무언갈 하고 있다는 그의 안심을 위해 별말 없이 답해준다. 쓰다 보니 내 주변엔 역시 좋은 사람들뿐이다. 내가 뭐라고. 패스트푸드에 끌리는 것 같은 느낌인 걸까? 패스트푸드는 빨리 나오고, 빨리 먹을 수 있어서 패스트푸드다. 그게 패스트푸드 입장에서 좋은 일 같진 않다. 남들보다 빨리 죽으러 가는 거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미쳐가는 것 같다. 패스트푸드의 입장까지 생각하고 있다니. 희소식일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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