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발겨야 해. 내가 꿈을 좇던 시간을 '쉬었다'라고 규정해 버리는 그 사람을.
'쉬었음 청년'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15~34세 청년 비경제활동인구 중 "쉬었음"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을 뜻한다. 나의 8년은 이력에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겐 쉼으로 보이는구나. 누구보다 치열했던 그 시기는.
누구를 위해 또 무엇을 위해 나는 이력을 만들었어야 했던가. 나를. 그리고 나를 포함한 청년들을 규정하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이 많다.
나는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시간 동안 "쉬지 않았"다. 열심히 하루하루 살았으며 주어진 것들을 했다. 너무 오래 달린 결과 이제 몸과 마음이 지쳐 꿈으로부터 도피했는데 아이러니하게 통계청에 따르면 이제 나는 '쉬었음 청년'을 졸업했다.
그 시간을 쉬었다고 표현하는 뉴스와 매체들을 보면 눈물이 날 것 같다. 나는 그 시기만 생각하면 이렇게 힘든데 다시 겪고 싶지 않은데, 한 단어로 정리되는 시간이 아깝다. 언어는 사람의 생각을 반영한다. 매체의 언어는 사람의 생각을 주무를 수도 있다. 조금만 더 규정하지 않고 보면 안 될까.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인생으로 보아주면 안 될까.
'취업시장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대.' 혹은 '사람이 안 뽑힌대.'라고 말하던 사회적 현상들이 '쉬었음 청년'으로 대동단결 되는 것을 보며 나의 죄책감은 어디에서부터 기인한 것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나는 지금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만, 멈춰있다. 경제활동이 모든 성장을 대변하지 않았으면 한다. 경제활동보다 더 중요하고 큰 성장이 세상에는 많다. 나는 어떤 가치를 좇으며 살아야 하는가. 매체의 언어들은 나더러 '경제'를 중요한 가치로 두고 살라고 한다. 뒤집기 어려운 것들을 어떻게 좇으며 살아야 할까. 그럴수록 불행해질 뿐이다.
세상에 대해 지금보다 더 모를 때. 이를테면, 고등학생 때 나는 좀 더 명확했다. 가치관이 좀 더 단단했다. 세상의 물살을 맞지 않아 그랬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수없이 치는 파도를 견디며 깎이기도, 흔들리기도 한다. 세상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인생은 잔인하다.
가끔은 미래를 꿈꾸던, 빛나는 눈빛을 가졌던 고등학생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