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에세이의 차이

정답은 나의 밖에 있는가, 안에 있는가

by 해마

어쨌건 나의 세계를 넓혀주는 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며, 나의 세계를 깊게 만들어 주는 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B는 나의 세계를 아주 많이 넓혀준다.


B와 교환독서를 시작했다. 각자 책을 한 권씩 지정해서 책에 떠오르는 대로 메모도 하고 밑줄도 그은 다음 책을 교환해서 읽고, 메모하고 밑줄을 긋는 방식이다. B가 지정해서 읽은 책을 받아 읽는 중인데 왜 여기에 밑줄이 그어져 있는지 모를 문장이 가득하다.


B는 문학보다 에세이를 좋아한다. 문학이 하는 말은 직설적이지 않아서 와닿지 않는다고 한다. 그냥 이야기일 뿐이라고 느껴진다고 한다. B는 최근 '운동을 하는 것은 예쁜 몸을 위해서가 아니라 늙어서까지 건강히 기능하기 위함이다.'라는 문장을 에세이에서 읽고 공감했다. 자신이 운동을 열심히 가는데 몸이 빠르게 변하지 않아 마음이 힘들었는데, 그 문장을 읽으니 '음 맞아 맞아.'생각하게 되었다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너와 나의 '수용'이 참 다른 것 같아."

했다. ( 사실 이 글의 제목은 '수용에 대한 생각'이다.)


수용 (受容)

1. 명사 어떠한 것을 받아들임.

2. 명사 감상(鑑賞)의 기초를 이루는 작용으로, 예술 작품 따위를 감성으로 받아들여 즐김.


B의 수용은, 타인의 생각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B는 항상 정답을 찾으려 하고, 그 정답은 자신 밖에 있다고 생각한단다. 그래서, 타인의 생각이 더 나은 것 같으면 그게 정답으로 느껴진다고.


나의 수용은, 타인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나는 정답이 중요하지 않다(사실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너의 like와 나의 like는 다를 수밖에 없고, 그래서 무엇이 더 낫다는 개념보다는 '너는 그렇구나. 나는 이래.'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수용'에 대한 관점 차이는 책의 선호도와도 이어진다. B는 에세이를 읽으면 매번 '그렇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하며 감탄한다. 에세이를 읽으면 마음이 너무 좋단다. 나는 사실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 역시 굳이 따지자면 에세이에 가까운 글들을 써 내려가면서도 에세이를 읽으면 건조하게 '(너는) 그렇구나..' 하게 된다.


내가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를 조금 반론해 보자면! 문학은 내가 느낀 바가 그 책을 정의한다. 5살 때 읽은 피터팬과 15살 때 읽은 피터팬. 그리고 25살에 읽게 된 피터팬이 항상 달랐다는 것이. 매 번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인물이(그러니까, 나에게 있어서 주인공이) 달라진다는 게 매력적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에세이보다 문학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사실은 매번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B는 국어대사전의 1번 의미를 그 단어의 의미로 믿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나보다는 B가 보편적으로 더 맞다는 말이겠지.


이 브런치북을 쓸 때 가장 곤혹스러운 점은 나의 생각은 끝나지 않는데, 글은 끝을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곤혹을 내비치면서 독자들께 약간의 너그러움을 구하며(치사한 건 알고 있다) 글을 애매하게 끝내 본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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