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구가 나은 이유
나를 위한 말은 정녕 나를 위한 말이 맞는지. 타인을 위해 꺼내놓은 나의 말들이 폭력적이진 않았는지 다시 생각해 본다.
나를 위한 말이 칼로 푹푹 찌르는 듯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화이팅", "넌 할 수 있어"와 같은 말들. 나를 아끼는 사람이 저렇게 이야기할 때 난 도무지 어떤 반응도 할 수가 없다. 의도하지 않은 걸 잘 알고 있고, 정말 내가 힘을 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는 말인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잔인하다. 아래는 내가 실제로 들은 말들이며, 나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의지의 문제야”
남들은 의지로 척척해내는데 모든 힘과 에너지와 의지를 멀쩡한 척 일상생활을 하는 데 써야 하는 내가 병신임을 인증하는 것 같았고. 넌 충분히 잘해왔고 해낼 수 있다는 말은 그 자체로도 너무 부담스럽고 무거워서 '그게 힘든 거라고요.'를 속으로만 외치며 머리를 쥐어뜯을 뿐이었고. 화이팅 은 어떤 말보다 맥이 빠진다.
타인이 보는 밝은 나와 혼자 있을 때의 나의 괴리가 나를 미쳐버리게 한다. 괴리 그 자체로도 충분히 힘들지만, 사회에서의 각 역할과 나의 페르소나를 해내야 한다는 사실이- 그것에 따르는 수많은 감정노동과 에너지소모가 - 말 그대로 머리를 쥐어뜯게 만든다. 내일이 밝았을 때 조용히 죽어있었으면 하는 생각은 이럴 때 아주 격렬해지기 마련이다. 씻기조차 싫고 귀찮고 힘들어서 안 씻고 자는 게 부지기수고 밥을 해 먹거나 차려먹는 건 안 한 지 너무 오래되었다. 집에 오면 그럴 힘이 없다. 그런 내게 운동을 가는 일이란, 사치 중에 사치다.
“그럴 땐 운동을 해 봐”
운동하는 동안 몸을 굴리면 별 생각이 안들테니 결과적으로 나에게 좋을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운동을 가는 행위는커녕 운동을 등록하는 행위를 하기 위해서도 50번 정도 '해야겠다!' '아니야 못하겠어'를 번복하는 나로서는 이걸 단순히 의지의 문제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나의 의지는 이런 곳에 쓸 만큼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나 역시 자타공인 에너자이저로서 '모든 일은 기세다'를 믿고 살아왔다. 사람들에게 파이팅을 불어넣고 긍정적인 말을 던지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는 말이다. 나의 '화이팅'이 폭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요즘이다.
이해받지 못할 것도 알았지만 막상 악의 없는 칼로 찔러 맞다 보니 안 아플 순 없다. 나는 특유의 대담함으로 주변의 걱정인형들을 안심시키는 사람이었는데, 있지도 않은 일을 굳이 나쁜 쪽으로 생각해서 미리 내 옆구리에 칼을 찔러 넣는 짓은 나조차 이해할 수도 없고 낯설다. 차라리 의학적으로 정말 뇌의 어느 부분이 맛이 가서 그런 거라고 누가 자세히, 낱낱이, 논리적으로 설명해 줬으면 좋겠다. 이해라도 할 수 있게. 나도 이해가 가지 않는데 우울증을 앓아 본 적 없는 타인이 어떻게 이걸 이해할까.
나를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을 이해한다. 그러니, 자꾸 함구하는 일이 많아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