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과 진료일지 2
선생님은 이제 약물치료가 의미 없다고 생각하시는 게 분명하다.
우울의 인과를 찾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원인을 모르니 너무 힘들다고. 선생님은 이제 우울의 원인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셨다. 원인은 복합적일뿐더러 원인을 제거한다고 해서 없어질 우울이 아니라고 했다. 이제 생물학적 우울이라고 봐야 한다고. 나와 우울이 착 붙어있다고 하셨다. 이젠 그런 말이 딱히 절망적이지도 않다.
나는 출근하기도, 씻기도, 일상적인 무언가를 하는 모든 것이 엄청난 의지를 짜내야 하는데 낫기 위해서 ‘낫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던가 산책을 한다던가 하는 모든 일이 힘들다고 말씀드렸다.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조차 나에겐 너무 능동성을 요하는 일이라 힘들다고.
선생님은 내 마음을 십 분 이해한다고 하샸다. 의사입장에서도 자꾸 무언가를 하라고 말하는 게 부담이라고 하셨다. 우울이 어떤 건지 잘 알고 있는데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어 좀 그렇다고. 내게 그런 마음이 들 땐 의사인 자신에게 어떻게 좀 해달라고 한다든지 해도 된다고 했다.
근데 나는 이게 선생님이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생님을 신뢰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병원에 꼬박꼬박 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낫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거라고 하신다. 그러니 다른 능동적인 것 할 필요 없이 병원에 왔을 때 최대한 많은 걸 했으면 좋겠다고. Rtms를 권하는 이유에 그런 것도 포함된다고 하신다.
오늘은 선생님이 권하신 지 일 년 만에 선생님 손에 이끌려 rtms(반복적 경두개 자기 자극술)를 했다. 자기장으로 뇌에 자극을 줘서 어쩌고... 인 치료인데 진짜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일 년간 수도 없이 거절했었다. 이번엔 상황이 좀 달랐다 일주일간 약을 안 먹은 것을 선생님이 아시기도 했고 나 역시 약을 먹기가 싫어서 선생님이 체험판이라고 하시기에 따라 일어났다.
치료실은 이전 병원과는 다르게 좀 더 닫힌 느낌이었다. 이전 병원에서는 통유리에 시스루 커튼만 쳐놓아서 상당히 거부감이 강했는데 여긴 방이라서 좀 안정되었다. 나는 개쫄보답게 아픈가요? 를 열 번 정도 물어보고, 선생님을 따라 들어간 방에서 의자에 엉거주춤 앉으면서도 아파요? 시작했어요? 를 되물었다. 선생님은 원래 몇십분하는건데 3분 정도 짧은 시간만 하는 거니까 효과를 위해 코일을 손으로 눌러주시겠다고 했다. 나는 거짓말탐지기와 같은 형태를 예상했었다. 전선이 연결된 스티커(?) 들을 머리 여기저기 붙여서 하는 그런ㅋ 근데 그런 건 아니었고 손바닥 두 개 크기의 플라스틱 기기를 머리에 대었다. 그게 아마 코일인가 보다.
선생님이 한 번 시작해 볼게요 를 하시고 잔뜩 얼어있는데 왼쪽 머리에 누가 가벼운 딱밤을 탁탁탁탁탁 때리는 것 같았다. 다섯 번씩 일정한 간격으로 딱밤을 때리는데 내가 선생님께 이게 진짜 효과가 있냐. 딱밤이랑 다를 게 없다. 고 하니 선생닙은 어이없어하시며 이건 자기장으로 하는 거고 딱밤은 그냥 손으로 하는 건데 당연히 다르다고 하신다. 딱밤과 딱따구리 그 사이의 느낌이다.
선생님이 3분만 하신다기에 반색하며 시간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냐고 여쭤보았더니 그건 아니란다. 오랜 시간 한다고 효과가 막 좋은 것도 아닌데, 비용이 있다 보니 사람 심리가 길게 하는 걸 비용적으로 아깝지 않다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오랜 시간 하게 한다고. 그리고 의료기기에 관련해서 얕은 지식이 있는 나에게 비급여 라고 하시기에 눈이 번쩍 떠졌다. 비급여요?! 쉣 그래서 비싸구나..
이 치료는 운동 같은 거라서 자주 하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입원해서 하루에 3번씩 하는 사람들도 있고, 방문한다면 주에 3번씩 하는 게 좋은데 그렇게 병원을 방문하기 힘드니 요즘은 의사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주에 한 번이라도 하는 걸 권장한다고 한다. 오늘은 홀린듯했으나 다음번엔 안 해야지 하면서 나오는데, 비급여라 선생님이 금액을 조절해 주신다고 한 게 생각났다. 진료비를 수납하려고 보니 오, 2만 5천 원이다. 이 정도면 약도 먹기 싫은 김에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 년 전보다 좀 더 힘든가 보다 ㅋ
치료를 받는 내내 쫑알쫑알 선생님께 궁금한 걸 여쭸는데, 왜 왼쪽에만 하는지? 같은 것들이었다. 이 치료는 좌뇌에 자극을 주어서 활성화시키거나 우뇌에 자극을 줘서 활성도를 떨어뜨리는데, 우뇌의 활성도를 떨어뜨리는 것보다 좌뇌에 자극을 주는 것이 효과가 좋기 때문에 좌뇌를 위주로 한다고 한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다 보니 왼쪽에 기분 나쁜 두통이 오는 것 같기도 하다. 이번 주는 스트레스 상황이 꽤 많을 예정이기 때문에 진짜 효과가 있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또 시작된 임상실험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