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승하는 엘리베이터에서 떨어지면

정신의학과 진료일지 2

by 해마

즉사다.


오랜만에 3번 방 선생님을 만났다. 만나기 전까지 하고픈 말이 머릿속에 맴맴 맴돌았는데 막상 만나니 병원 인테리어 같은 이야기나 지껄였다. 대기실에 한 명씩 앉을 수 있는 반쯤 닫힌 공간이 정말 마음에 들어 좋다고 말씀드렸다. 그 전의 병원에서 트인 대기공간이 싫었었다.


선생님은 여전하셨다. 이맘때 나는 불안에 미쳐있었다. 좋은 제안을 받고도 좋게만 생각하지 못하는 병은 대체 언제 생긴 지 모르겠다. 4층 병원까지 사방이 투명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지금 내 상황 같은데. 여기서 떨어지면 즉사다.’ 생각했다. 사람 기분을, 기대를 이만큼 올려놓고 무산시키면 이 엘리베이터 꼭대기에서 떨어뜨리는 것과 다름없다.


선생님께 그간 못한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마구 쏟아놨다. 평균적으로 괜찮았던 일, 타투를 받으며 내가 멈출 수 없는 고통이 좋았던 일. Gpt와 상담한 일, 그리고 그날 밤 죽으려 한 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자 선생님 표정이 바뀌었다. 내게 tms, 전기자극치료, 그리고 또 뭐더라 200만 원이 넘는다는 약물 치료까지도 말씀해 주셨다.


내가 웃으며 “이제 약을 늘리는 건 의미가 없나 봐요?” 하니, 약이 회사 일에 지장을 줄까 봐 부담이 된다고 해서 옵션을 주는 거라고 하신다.


나는 저 모든 치료가 아깝다. 고작 내가 살기 위해 저런 치료들을 해야 하는 것이 많이 아깝다. 200만 원은 정말 아깝지. 그런 생각이 든다.


교통사고라도 나서 일주일만 입원하고 싶었던 내게, 입원치료 선택지를 주지 않으시는 게 아쉬웠다. 내심 기다렸는데.


나의 죄책감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선생님도 이 일을 하다 보니 죄책감이 있다고 하셨다. 진료를 받던 사람들이 죽는 경우가 있었다고. 당연히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의 능력과는 무관한 것이 죽음이다. 선생님의 눈시울이 붉어졌던 것 같은 건 내 착각일까.


선생님은 그 이야기들을 하시며, 환자들이 의외의 시기에 죽는 경우도 많다고 하셨다. 그럴 것 같다. 나도 오늘 낙차를 상상하며 죽고 싶었으니.


선생님은 나 자신에게 기회를 한 번 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하신다. 죽은 사람들이 왜 본인들에게 그리고 의사인 자신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지 않았을까 생각하신다고. 그 물음이 너무 진심으로 느껴져 운을 뗐다가, 박민규 소설의 주인공처럼 “아니, 아니에요” 했다.


선생님은 괜찮으니 말하라고 하셨다.

나는 해맑게 웃으며

“제가 죽게 되면 꼭 죽기 전에 문자로라도 이유를 알려드릴게요”했다.


선생님은 질색하시며 죽으면 안 되죠!라고 하셨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가만 들으시다가 이제 약간 될 대로 되라의 식인 것 같은데, 자신의 삶을 조금만 소중히 여기면 안 되겠냐고 하신다. 본인도 잘못을 한 적 많지만 현재의 삶을 함께하는 이를테면 가족들을 생각하면. 아이를 생각하면. 현재의 삶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드신다고.


선생님은 꼭 아이가 아니어도 괜찮으니 그런 존재들을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바로 조카들이 떠올랐다. 내가 사랑해 머지않는 존재들. 그리고 연이어 조카들이 나의 존재를 빨리 잊는 게 그들에게 상처 주지 않는 방법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주에 조카가 너무 보고 싶어서 보러 가려했는데 재고해 봐야겠다. 선생님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내가, 나도 싫다. 전엔 이런 나의 해석이 멍청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멍청한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모가 동생들 앞에서 기 펴라고 주신 십만 원을 한사코 거절하며 받지 않은 채로 카톡을 뒀었다.


다행히 딱 진료비만큼이 통장에 있었는데, 이번 병원에서는 약을 약국에서 타는 건 줄 몰랐다. 약국 앞에서 이모가 주신 십만 원을 받을까 말까 한참 고민하다 받기를 눌렀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 나를 괜찮게 하는 약을 사기 위해 나에게 실망감을 느낄 행동을 했다. 삶이 참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일요일 연재
이전 13화일주일이 기억이 안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