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과 입구에서

정신의학과 진료일지

by 해마

브런치 북 제목을 보고 어떤 힘든 이유로 이 사람이 정신의학과를 갔을까 궁금해서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유감이다. 아쉽게도 내가 정신의학과를 방문하게 된 특별한 이벤트는 없다. 그렇게 힘들 때도 절대 가지 않던 병원을 예약했다.


충동적으로 당일 예약을 잡긴 했는데, 무엇을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예약시간까지 남은 2시간 내내 골머리를 앓았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평소 말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말을 하다가 막혀본 경험이 별로 없으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말로 잘 정리하는 편이다. 그런데 항상 나의 우울에 대해서 고백하고자 할 때는 입이 다물어진다. -분명, 나는 입이 무거운 편도 아니다-.


21년도에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는데,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 너무 두려웠다. 그때는 혹시나 정신과 진료내역이 나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일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꾸역꾸역 참았었고 너무너무 힘들었다. 원래 아는 힘듦이 더 무서운 법이다.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이렇게 힘든데도 정신과에 대한 편견이 조금은 있었나 보다. 이상한 사람들이 있지는 않을지 긴장했다.) 문을 밀고 들어섰는데,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있었다. 평범한 아주머니들, 교복 입은 학생 그리고 젊은 여성분. 가끔 찾아오는 감기나 장염 등으로 가는 병원과 별다를 건 없었다. 단지, 내 차례 때 이야기가 밖에까지 들릴까 봐 진료실 안의 말소리가 들리나 귀를 쫑긋 세웠다. 웅성거리는 소리는 있었지만 딱히 내용이 들리진 않아 안심했다.


내 차례가 되고 진료실에 들어갔을 때, 선생님과 마주 보는 의자가 아니라서 이것도 배려일까.라고 생각했다. 마주 보지 않고 옆을 볼 수 있게끔 살짝 떨어진 곳에 소파가 있었다. 책상 위엔 티슈도 준비되어 있었다.


처음 받는 진료는 2시간 동안의 걱정이 무색하게 선생님이 잘 이끌어주셨다.

인자한 인상의, 연세가 지극하신 선생님은 몇 가지 질문만으로 나의 가족관계, 대인관계, 내 힘듦의 이유들(명확하진 않지만) 등 뭐 여러 가지 알아내신 것 같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떤 포인트에서 눈물이 마구 났다. 얼마 만에 눈물이 난 거지? 란 생각을 하며 휴지를 뽑아 들었다. 병원이 매우 작아서 ‘아 나갈 때 민망해서 어떻게 나가지 ‘하는 생각도 잠깐 했던 것 같다.


별 거 아닌 이야기도, 별 거인 이야기도 솔직하자 싶어, 선생님께 모두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모순투성이인 나의 말에 질문을 여러 번 하셨다.


공부를 열심히 안 했다. 는 나의 말엔 ”간절하지 않아요? “라고 하셨고,

술을 마시면 실수하는 게 싫다는 나의 말엔 ”그럼 술을 조절할 순 없을까요? “라고 하셨다.

그리고 술을 마시면 전두엽의 ~어쩌고 때문에 원래 그렇다. 는 위로도 덧붙이셨다.


나는 조금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잖아요.”


선생님은 나를 잠깐 보시더니.


“그렇죠.”

라고 대답하셨다.


찬찬히 생각해 보니 진료를 받는 내내 "원래 저는"이라는 말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원래 저는 자존감이 높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요.” “원래 저는 결정 내리는 걸 잘하는데요” 참내, "원래"의 정의는 누가 내리는 거람. 지금 모습의 나도 나인데. 부정하고 싶었던 걸까.


신기하게 정신과 약은 약국에서 타지 않고 병원에서 약을 줬다. 그리고, 무슨 약인지 적혀있지 않아서 알약에 적힌 작은 알파벳과 숫자들을 열심히 검색해서 찾아냈다.

‘보통 이 정도 가지고 우울증이라고 하나? 선생님이 가볍다고 생각해서 소화제나 비타민 같은 걸 준 거 아냐?‘라고 생각했던 게 무색하게 결론은 신경안정제 및 항우울제였다.


자, 이제 집에서 안 들키고 약 먹기. 그게 최대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