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완성검사

정신의학과 진료일지

by 해마

지난주에 선생님은 문장완성검사를 숙제로 내주셨다. 그건 마치 내가 얼마나 병신인지 확인하는 절차 같았다. 왜냐하면, 바로 떠오르는 문장을 써야 하는데 그게 굉장히 병신 같았다.


문장완성검사를 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내 주변엔 정말 좋은 사람들뿐이다. 주변인들에 관한 질문에는 모두 긍정적인 답변이었다. 이렇게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굳이 불행을 자처하는 내가 병신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돌연변이? 혹은 미치광이? 나를 완벽히 설명할 수 있는 명사가 어디 있으랴. 문장들을 쭉 쓰고 다시 읽고 있자니 금쪽이가 된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무튼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이게 나라니. 나는 나를 잘 모르고 있었나 보다.


선생님은 문장완성검사를 보시곤 (나는 오히려 문제 될 것 없다고 생각한)한 문장을 물으셨다. 그게 좀 의아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나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위선자요.“ 하고 답했다.


선생님은 누구나 그런 면이 있다고 했다. 되려 자신은 착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문제라고 하셨다. 웃기게도, 내 친구가 자신이 위선자 같다고 한다면 나도 선생님이 해주신 답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말해줬을 거다. 그 말인즉슨, 나도 안다는 거다.


나는 병원에 오는 다른 환자들처럼 착해서 혹은, 그런 것들을 몰라서 힘든 게 아니다. 아는데도 마음과 행동이 그렇게 안되니까 힘든 거다. 나는 누구보다 인간의 불완전성을 잘 알고 있다. 그게 내가 사람한테 기대가 별로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의 위선과 모순은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똑바로 직시하고 있으니 미칠 노릇이다. 차라리 내가 ”대가리 꽃밭“이라고 부르는 부류(이들을 싫어하진 않는다. 오히려 사랑스러운 편에 가깝다.)로 태어났다면 살기 편할 것 같다. 그들은 고민 속에서도 ‘나는 착하다’고 믿으며 그들만의 동화 속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와 같은 결말을 맞을 수 있으니까.


선생님은 저번부터 나의 현실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시는데 듣고 싶진 않다. 예컨대, ~확률이 몇 퍼센트나 될 것 같아요? 혹은 ~마지노선을 정해야 한다. 와 같은 이야기들인데 듣다 보면 컨설팅을 받으러 온 건지 헷갈릴 정도다.


“제가 현실적인 이유때문에 우울한 것 같으신가요?” 여쭸더니 그건 아닌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럼 왜 자꾸 그런 이야길 하시나요…는 입안에서 맴돌다 끝났다.


병원이 여러모로 나랑 안 맞는 것 같아서(잔소리 같은 이야기 듣기 싫어서 맞음) 충동적으로 다음날 다른 병원을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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