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비밀-최진영]

스벅에서 우는 사람 모른체하기

by 해마

내가 좋아하는 최진영 작가님의 산문집을 샀다.

B와 H는 작가님의 ‘구의 증명’이 왜 유명한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작가님의 책이 읽는 족족 좋다.

읽는 사람 눈치 보지 않는 표현들을 사랑한다.


책을 읽으며 이렇게 울어본 적 있던가.

단언컨대, 처음이다.

수많은 주변인들이 울었다던

‘소년이 온다’를 읽을 때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린 나인데


이 책의 한 문장 한 문장이

눈동자에, 가슴에, 손톱에 꽂힌다.


스타벅스 구석에서 펑펑 울었다.

냅킨으로 눈물과 콧물을 하도 훔쳤더니

피부가 따갑다.

모자를 쓰고 와서 참 다행이다.


11월, 12월의 네 절기 편지가 가장 마음에 닿는다면

그건 내 마음이 시려서일까?

내가 11월에 태어나서.라고 하면 억지겠지.


입동(立冬)의 ‘입’ 자가

‘들어설 입(入)’이 아니라

‘일어설 입(立)’이라는 것에 위로를 받는다.


어떤 편지는 마치 내가 받을 걸 알았다는 듯이

나에게 날아왔다.


‘계속 쓰는 사람’이 장래희망이라고 하시는 작가님 글을 읽으며

나도 글을 쓰면 좀 더 단단해질까, 치유가 될까 하는 마음으로


소설도, 자서전도, 산문도 아닌 요상한 글을

2시간 내내 쉬지 않고 써 내렸다.


시가 아닌 형태의 문학을 쓰는 건

처음이다.


작가님 덕분에 한 걸음 더 걸어본 오늘.


추모 카톡 프로필 이슈로

새벽부터 기분이 너무 안 좋았던 오늘.


내가 나를 주체할 수 없어

방을 박차고 나와 스타벅스로 도망온 오늘.


하필 집어온 책이 “어떤 비밀”이었음이

다행이다.


하필 옆자리 앉은 아주머니들이 시끄러워서

다행이다.


하필 오랜만에 꺼낸 아이패드에

L의 사무실에 숨겨두지 못한 마지막 포스트잇이 붙어있어

다행이다.


L에게 건네지 못하고 돌아온

내가 나에게 주는 위로 같은 포스트잇.


옆자리 앉은 아주머니들의 대화를 한쪽귀로 들으며

눈으로는 책을 읽으며

귀와 눈이 함께 여러 감정을 소화하느라 힘들었다.


첫 휴가를 떠나는 날 점심시간에 산 책.

마지막장에 M이 비행기에서 남겨준 메모가 소중하다.

“시원한 바다, 몽글한 구름, 모든 게 완벽한 제주였다. 너도 그랬니?”

라며 나의 소감까지 물어봐주는. 구름보다 더 몽글한 M.


바다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책을 샀는데,

바다만치 짠 눈물만 펑펑 흘렸다.

어쨌든 짜긴 짜니까 비슷하게는 갔다고 생각해야 할까.


머리 긴 J에게

10년 전처럼, 어려운 질문을 쉽게 해도 되냐고 디엠을 보냈다.

인사도 없이, 다소 무례하고 딱딱한 내 질문에

J는 이수명 시인의 시 ’ 슬픔‘을 함께 동봉해 오셨다.



위로받고 싶은 사람이 생길 때 비로소 슬픔은 완성된다.
한 고통에 묶여 다른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수명‘슬픔’


역시.

엄청난 적시타다.

세상엔 내공이 엄청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 오늘.


어쨌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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