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김영하]

막대사탕을 좋아하게 된 이유

by 해마

영풍문고에 갔다가 ‘임솔아 작가님 책은 더 없나?’하고 작가명 ’ㅇ’ 칸에 가서 구경하던 중이었다.

구경을 하다가 흘러 흘러 ‘ㄱ‘까지 갔을까.


김영하 작가님 책은 워낙 유명하니 스르륵 지나쳐 가는데, 아주 얇은 이 책이 눈에 들어오는 거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매력적인 제목에 뽑아 들어 그 자리에서 3분의 1을 읽었다. 역시 재미있었다.


유디트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고, 주인공의 의뢰인이 되었을 다른 사람들이 궁금했다.

근데 가격을 보니 만원이 훌쩍 넘는 거다.


‘아니, 이 얇은 책이 만원이 넘어?‘ 괘씸한 마음에 (심지어 나는 3분의 1을 읽었다고) 책을 놓고 왔는데 며칠 내 내용이 맴돌았다.

그 새 유디트 흉내를 내 볼 일도 있었고, 유디트가 제설차를 타고 간 게 정녕 끝인지 너무 궁금했다.


시간이 흘러넘쳐 어찌할 바 모르던 날, 알라딘에 가서 이 책을 검색했다.

러키 하게도 이 책이 무려 5000원에 팔리고 있었다. 표지는 좀 덜 세련된 느낌이었지만. 기분 좋게 사 왔다.


서울역의 등받이 없는 의자에서 구부려 앉아 한 권을 다 읽었다.

역시 책은 한 자리에서 한 권을 읽는 게 제일이다.

전에도 김영하 작가님의 책을 읽고 “죽음”에 대해 많이 고찰하고, 위로를 받았는데 이 책 역시 그랬다.

작가님도 “끝”에 대해 많이 생각하시는 분임이 분명하다.

책을 읽으며 좀체 검색이란 건 잘 안 하는 편인데, 클림트의 유디트 그림과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의 죽음은 검색을 안 해볼 수가 없었다.

(후에 보니 맨 앞장에 그림이 삽입되어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색채가 뚜렷한데,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행동과 그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

이 행동을 하면 이 행동이 어떤 의미가 되고, 저 행동을 하면 저 행동이 어떤 의미가 될지 알고 있는 듯했다.

그 점이 부러웠다. 소설 속 인물을 부러워하는 것이 웃기기도 하지만, 부러웠다.


“마네킹보다 사람이 더 우월한 존재일까. 왜 만화영화의 요괴들과 사이보그들은 사람이 되지 못해서 안달일까?”

라는 문장을 읽을 땐,

언젠가 읽었던 “짐승처럼”이 떠올랐다.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심지어 이기적인 인간이란 존재가 마네킹이나 사이보그 혹은 본능에 충실한 짐승보다 더 나은존재가 맞는가.

“마네킹 같다”는 말은 칭찬인가, 욕인가.

“짐승 같다”는 말은 칭찬인가, 욕인가.

누군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한다면 칭찬으로 듣기로 했다.

마네킹은 보이는 게 다라 솔직하고,

짐승은 본능에 충실한 솔직한 존재라는 뜻이니.


”어둠 속에서 그녀는 그 생수를 콜라인 줄 알고 마실지도 모른다. 나는 내버려 둘 것이다. 계속 토하라. 그것도 지치면 더는 토하지 않게 될 터이니. “

토할 만큼 역겨운 것도 계속 토하다 보면 지쳐 토하지 않게 될까.

그게 바로 J가 말했던 “견디는 게 익숙해지는 삶”이 되는 걸까.

그 역겨움과 한평생 같이 살아야 한대도?


나도 한 때 불멸이고 싶을 때가 있었다.

이 재미난 세상을 오래오래 끝없이 살고 싶었던 적이.

해리포터에 나오는 불사조를 부러워한 적도 있을 지경이다.


이젠, 아니다.


죽음만이라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 자유를 느끼며 생을 마감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유디트와 미미는 자유로운 죽음이었을까.

마지막에라도 자유를 느꼈다면, 부럽다.

내 삶이 진행되고 있다면 그건 갖지 못하는 것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뜻.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란.”

이 책을 관통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해 색연필을 마구 그어뒀다.


변하는 것도 없고, 역겨운 것도 그대로인 인생에서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막대사탕을 위로삼아 입에 넣기 시작했다는 것.

때론 상큼함에, 때론 달달함에 집중하며 이 책을 떠올려 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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