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카와 해마

브런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작가의 꿈

by 해마

브런치 작가를 덜컥 신청한 날. 그날 나는 죽으려고 했다. ‘솔직하지 못함’이라는 괴로움이 내 머리를 심해 바닥으로 처박고 있었다. 생각 없이 써갈긴 글로 ‘작가’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이 붙었을 때도 별 감흥은 없었다. 내게 브런치의 의미는 솔직함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꿀럭거리며 내 기도를 막아갈 때, 그걸 와르르 토해 숨 쉴 수 있게 해 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런 징그러운 이야기로 시작을 여는 이유는, ‘꿈’이라는 주제로 쓰인 찬란한 글들 사이에서 내 글이 차갑게 가라앉을 때 조금이나마 덜 아프기 위해서다.


나는 원래 꿈꾸는 사람이었다. 소싯적에 유행하던 R=VD와 같은 판타지스러운 마음의 힘, 자기 확신의 힘 등을 믿는 사람이었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고 그래서 항상 달렸다. 달리는 것이 즐거워서 힘든 것도 몰랐다. 스포츠카의 수명은 보통 5년. 잘 쳐주면 7년이라고 한다. 나에게 스포츠카 경주와 같던 7년의 수험생활은 어떤 소리도, 예견도 없이 끝났다.


스포츠카가 엔진 소리를 내지 않으며 달린다는 것은 죽은 것과 다름없다. 언제부터인가 내 엔진은 소리를 잃었다. 소리부터 잃은 엔진은 점점 성능도 떨어졌다. 바퀴를 왜 굴려야 하는지, 왜 동그란 코스를 끝없이 돌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맞닥뜨렸다. 더 이상 시동마저 켜지지 않는 스포츠카임을 인정하고 나니 바람 빠진 바퀴와 성한 곳이 없는 몸체가 보였다. 이 상황을 나 자신에게 이해시켜야 하는데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래서 익명의 글을 쓰게 되었다. 처음에는 일기였고, 다음에는 기록이었으며 지금은 나의 삶 대신 놓아둘 수 있는 무언가를 쓰고 있다.


"아저씨 사랑해요"라던 ‘도깨비’의 한 장면도 무서웠다. 다 큰 성인이 죽음을 이렇게 무서워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죽음을 두려워했었다. 20살 때는 존경하는 교수님께 무작정 찾아가 “죽음이 무서워요.”라며 고민을 털어놨던 적도 있다. “글 쓰는 사람은 인생 작품을 쓰고 나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던 교수님 말씀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문예창작과도 아닌데 왜 이런 말씀을 내게 하실까 하며 답변에 실망했었다. 교수님은 내가 결국 글을 써야만 한다는 것을 아셨을까? 나는 삶 대신 놓아둘 무언가를 쓰느라 삶을 놓지 않고 있다.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무서워진 지금, 단 한순간이라도 솔직할 수 있는 ‘브런치’라는 공간이 생겨서 살아있다.


긴 수험생활을 통해 얻게 된 잔해는 문장을 뜯어 분석하는 것. 이 글을 쓰자고 맘먹은 때부터 "브런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작가의 꿈"으로 해석할 것인지, "브런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작가의 꿈"으로 해석할 것인지부터 고민된다. 법조문은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 해석의 한 끗 차이가 아주 많은 것을 뒤집기 때문이다. 나는 “브런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작가의 ”으로 해석하기로 했다. ‘작가’라는 대단한 꿈은 없으므로.


‘무엇을 이루고 싶다’는 것과는 아주 거리가 먼 시작이었지만, 지금은 브런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 나의 인생 대신 남겨두어도 여한이 없을 글을 남겨두는 것. 타인의 평가로부터 대단함을 얻는 그런 글 말고, ‘이 정도라면 내 삶 대신 놓아두고 가도 좋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글. 내가 사라진 자리를 그리워할 이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솔직해질 수 있는 그런 순간을 남겨두고 싶다. 그들 또한 내 글을 읽으며 맘 편히 솔직할 수 있길 빈다. 내가 ‘브런치’ 역할을 하는 거다.


이 거대한 글바다에 들어와 보니 그 꿈을 언제쯤 이루게 될지 참 막막하다.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면 ‘나 참 어리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해마는 바다를 유영하는 것이 아니라 해류에 쓸려 떠다닌다고 한다. 나 역시 삶을 유영하고 있지는 않으므로 해마가 필명으로 딱이었다. 나보다 더 오래 삶을 유영한 분들이 부럽고, 또 부럽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지느러미를 흔들어 어떠한 영법이든 구사할 줄 아는 물고기가 되었다는 것. 글 한 편 한 편에서 그들만의 영법이 묻어난다. 나는 한순간이라도 내 의지대로 유영할 수 있을까? 끝끝내 그러지 못한다면, 글자로 사다리를 만들어서라도 밝은 해수면으로 올라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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