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4
육교에 올랐다. 뻥 뚫린 도로가 참 시원해 보였다. 높은 곳에 올라 내가 좋아하는 바람을 맘껏 쐬는 것도, 차들이 쌩쌩 달리는 것도, 모두 좋았다.
마침 선물 받은 와인을 테이크아웃잔에 담아 마시던 중이었으니 더할 나위가 없었다.
바람을 좀 더 느끼고 싶었다. 다른 육교처럼 육교바닥에 앉아서 다리만 빼놓고 싶었는데 여긴 신축 육교인지 그럴 틈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한쪽다리를 난간에 걸쳤다. 난간이 꽤 높았다. 걸터앉으려면 육교에 닿아있는 남은 발을 떼어야 했다.
믿기 힘들지만 나는 정말 좋아서 그랬다. 다른 쪽 다리도 난간밖으로 빼고 걸터앉아, 기둥을 잡고 노래를 들으며. 바람을 느끼며. 와인을 마시며.
살아있었다.
그 경찰이 나를 끌어내리기 전까지 괜찮게 살아있었다.
나의 꿈이던 그 제복을 보니, 경찰차 뒷좌석에 타서 이동해 보니, 파출소 모두의 관심이 집중된 소파에 앉아보니, 참 죽은 것 같았다. 나는 죽을 마음이 없었는데 순식간에 죽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다고 해도 혼자 보낼 수 없으니 보호자에게 인계를 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누구보다 형사소송법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어떻게 해주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때 내 속의 아무개가 죽은 건 확실하다. 그 모든 순간이 칼날보다 잔인했다. 전국에서 힘쓰시는 경찰분들을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며, 칼날 역시 내 마음속에서 만들어내 도로 내 마음을 찌른 것이다.
세상이 거꾸로 선 느낌. 나의 세상이 시공간을 뭉개서 바뀌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단지 술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다. 왜냐하면, 육교에서는 너무 또렷했으니까. 이런 이야기는 쓸까 말까 고민을 했다. 나를 미친 사람으로 보지는 않을지(혹은 미친것이 들키지 않을지), 그럼에도 쓰는 이유는 솔직하고 싶어서. 나는 나 조차도 속이고 싶지가 않다. 뻔히 아는데 속이고 싶지가 않다. 처음 브런치에 가입할 때 마음을 떠올려본다. 누구 보라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게 아니었다.
이번이 두 번째 육교행이다. 술 마시고는 육교를 가면 안 되겠다. 어쨌거나 위험할 뻔했으니. 그런 식으로 멍청하게 죽고 싶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