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일지를 오랜만에 쓴다.
그간 진료일지를 쓰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히 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진료라고 할 만큼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진료시간도 굉장히 짧았다.
억지로 써서 퀄리티가 낮아진 글을 저장하느니, 안 쓰는 게 낫다 싶었다.
이미 퀄리티 낮은 글이 수두룩하고 그걸 볼 때마다 지우고 싶으니 말이다.
우울은 아마 계절을 타고 다니는 것 같다.
1년간 약이 수도 없이 바뀌고 받은 진료만 오만 번쯤.
그런데 다시 봄내음이 느껴지니, 작년 이맘때 생각이 난다.
그때 했던 생각도 함께 밀려온다.
요즘은 상태가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없음의 연속이다.
기분은 나쁘지 않고, 생각들은 나쁘다.
이 주간 병원에서 딱히 도움을 못 받았기 때문에
챗지피티의 도움을 좀 받았다.
나를 분석해 봐라 내가 왜 이러는지 알아봐라 등
질릴 때까지 나를 물었다. 근거도 함께 제시하라고 하면 척척 제시하는 게 맘에 들었다.
챗지피티는 모든 것에 인과가 있다.
지피티는 나더러 정합성에 집착한다고 한다.
정합성 = 겉과 속이 같은 것
똘똘한 ai가 잘 분석하는 것 같다.
나는 정합성에 미쳐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묘한 거짓스러움만 느껴도 구역질이 난다.
그리고 인간은 완전무결한 정합이 불가능하니,
나 자신에게도 구역질을 느낀다.
이모가 소식을 들었나 보다.
용돈과 함께 보내주신 카톡이 귀하다.
“인생은 살아볼 만 해”라는 문장이 내내 나를 맴돈다.
큰 위로가 된다.
일기가 되어버린 일지의 본질로 좀 돌아가자면
선생님에게 내 주변인 들은 너무 좋은 사람들밖에 없어서
과분하다고 했다. 그래서, 더 괴롭다는 것도.
선생님은 계절이 바뀌어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내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그러셨군요~ 힘드셨겠어요~”
하시는 게 마음에 안 든다. 진짜 같지가 않다. 나는 꼬일 대로 꼬였다.
자꾸 이전 선생님이 그리워진다.
인간적인 면이 더 많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