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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음 Jun 11. 2023

몸치 탈출기

결국 몸치 인정하기

  

나라는 사람에 대해 나의 지인들에게 묻는다면? 아마도 그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 중 분명 ‘어설프다’ 라는 형용사가 있을 것이다. 물론 썩 듣기 좋은 말도, 좋아하는 말도 아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나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뻔뻔하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저 몸으로 하는 거 잘 못 해요’ 라고.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 운동화 끈을 리본모양으로 묶는 것이 유독 어려웠다. 어머니께 반복해서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능숙하게 할 수 있기까지 수없이 연습해야만 했다. 돈가스나 피자 칼질하는 것도 서툴렀던 모양이다. 중학교 1학년 때로 기억한다. 조각피자를 먹으러 가서 피자를 써는 나의 모습을 본 친구들이 경악했던 일이 있었다. 먼저 왼손으로 포크를, 오른손으로 나이프를 잡는다. 포크는 끝부분이 아래방향을 향하도록 뒤집고 검지 손가락은 포크의 가운데 부분 위에 올려준다. 왼손으로 잡은 포크를 이용해 피자를 누른 채 나이프를 세워 앞뒤로 왔다 갔다 여러 번 반복한다. 이렇게 야무진 친구 한 명이 친절함과 구박을 섞어가며 가르쳐준 뒤에야 피자를 자연스럽게 조각낼 수 있게 되었다.      


 사춘기 시절 체육시간 달리기를 할 때에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 나를 비참하게 만든 것은 꼴찌라는 달리기 결과보다 오히려 달려오는 내 모습을 보며 박장대소하는 친구들의 모습이었다. 신규시절 교사 체육대회의 대미를 장식했던 계주 달리기 일화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 있다. 꼴에 빼기는 싫어하고 의욕은 충만했던 싹싹한 신규가 바로 나였다. 결과가 뻔히 예상됐음에도 불구하고 계주 선수로 자원을 했음은 물론이다. 폼도 우스꽝스러울 뿐 아니라 더럽게 못 달리던 나로 인해 우리 팀은 상대팀에게 무참히도 패했다. ‘너 열심히 뛴 건 알겠는데, 앞으로는 절대 달리기 한다고 나서지마!’ 동학년 선생님들이 웃으며(그렇지만 단호하게) 입을 모아 말씀하셨다.


 기본자세가 매우 중요한 운동을 할 때마다 나의 어설픔은 더욱 도드라진다. 무슨 운동이든 금세 익혀 잘 해내는 사람들도 많던데 나는 정반대였다. 자세가 몸에 배는데 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하니 진도가 매우 더디고 이로 인해 번번히 자괴감에 빠진다. 최근에 배드민턴을 배울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본자세며 스텝 등을 오래도록 가르쳐 준 동료들이 결국에는 이런 말로 상황을 종료했다. 나한테는 자세가 중요한 구기운동보다 요가나 필라테스 같은 운동이 차라리 맞지 않겠느냐고. 감사하게도 그들의 조언 덕분에 현재는 주 2회 필라테스에 정착을 한 상태이다. 2년 넘게 한 지금도 여전히 안정적인 폼의 수강생은 아니지만 말이다.   


 몸을 이용해 무언가를 할 때마다 내 안의 자신감과 용기가 마구 쪼그라들어 소멸될 지경이었었다. 하지만 사그라들다가 몽땅 다 말라버렸던 것은 아니었는지 내 안의 도전 의식이 퐁 하고 터져 나왔으니 이게 웬일인가. 재작년 추석 연휴 때 시누와 함께 TV 속 어느 경연 프로그램에서 댄서 ‘센캐’ 언니들(이라 부르고 싶은 동생들)을 보게 된 것이다. ‘스우파’ 1~4화를 시청하며 그녀들의 춤 실력에 홀딱 빠져버렸다. 내 안의 잠재되어있던 흥이 스멀스멀 올라올 뿐 아니라 몸의 감각들이 어찌나 둠짓둠짓 요동치던지 간만에 느끼는 흥분에 당황스러웠다. 그녀들을 끝까지 보고 우승팀을 확인해야겠는데 집에 TV가 없는지라 티빙 연간 회원권까지 구매하는 열정을 보였다.      


 여기서 멈췄어야 했다. 그런데 불타는 열정 덕에 한없이 무모해진 나는 ‘춤을 배워보겠다’는 무리수를 두었다. 물론 춤을 잘 출 자신이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지금 가만 생각해보면 당시 나는 무언가 몰입할 만한 새로운 취미생활을 찾던 중이었다. 그래서 그 대상이 공교롭게도 ‘춤 연습’이 되었던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유투브 댄스 강좌를 구독, 당시 핫하던 댄스곡 하나를 정해 연습을 시작했다. 당연히 연습실 전신거울 따위가 집에 있을 리 만무했기에 거실 유리창을 거울삼아 나름 열심을 냈다. 그러나 매우 엉성한 몸짓, 발짓으로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다행히 머리마저 나쁜 것은 아니었기에 동작을 순서대로 외울 정도는 되었다. 그렇지만 처음의 의욕이 무색하게도 곧 연습을 멈추게 되었는데 스우파 종영 때문만은 아니었다. 진짜 이유를 추측해보건대 아무리 연습해도 그 어떤 뽀대도, 간지도 찾아볼 수 없는 내 모습에 실망하고 점차 체념하게 된 것이리라. 아이돌도 아닌 전문 댄서들을 보며 눈만 높아진 탓에 나의 춤을 도무지 참고 견뎌내기가 어려웠겠지. 혹시 초등학교 방과후 방송 댄스 수업을 보며 춤 연습을 시작했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문득 궁금하다.  


 내가 심각한 몸치라는 사실을 쿨하게 인정한다. 그리고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몸치 탈출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인다. 몸으로 하는 것이 젬병인 나 자신이 지독히 싫었던 순간도 많았지만 이제는 괜찮다. 왜냐하면 나의 고객님들은 어린아이들이라서 내가 몸치라는 사실이 그다지 티 나지 않기 때문이다. 1학년 꼬꼬마들과 함께 생활하는 올해 우리 교실에서는 ‘몸치’가 ‘화가’로, ‘운동선수’로, ‘댄서’로 둔갑하는 마법이 매일매일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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