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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음 Jun 16. 2023

음식물처리기

가전이야 아니야? 

 ‘음식물 처리기’는 음식물 쓰레기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기계이다. 내가 사는 인천시에서는 각 가정에서 음식물 처리기(지원 품목의 정확한 명칭은 ‘음식물 감량기’이다)를 구매하면 설치 보조금 30만원을 지원해주는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가 내뿜는 탄소량을 줄이기 위한 환경 관련 사업일 것이다. 지인 여럿이 이미 이 사업에 동참, 지원금을 받아 음식물 처리기를 구매한 바 있다. 음식물을 처리해주는 기계를 강추하는 지인 몇몇을 만난 후 이미 귀가 얇아질 대로 얇아진 나였다. 그렇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은지라 인터넷 후기를 제법 오래 검색해 본 후에야 비로소 우리 집에도 들여놓기로 결정을 내렸다. 급한 성격 탓에 당장 지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지원금에 대해 문의한 결과는 암담했다. 이미 보조금이 바닥난 상황이라서 30만원을 위해서는 사업이 재개되는 연초까지 몇 달을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인내심이 바닥날 즈음 다행히 2023년도 음식물 감량기 지원 사업이 시작되었고 득달같이 주문을 했다. 오래도록 기다린 그 기계가 드디어 집에 도착한 날, 세련된 외관이 꽤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큰 비닐을 뜯어 미생물을 부을 때까지도 미심쩍은 마음이 매우 컸다. 진한 밤색을 띠는 흙 같은 것이 미생물이란 말이지? 이게 진짜 음식물을 감쪽같이 분해할 수 있을까? 물론 지인 여럿의 추천을 못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미심쩍은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일단 밥 조금을 넣어본 후 나중에 음식물을 넣으라는 사용설명서를 읽었다. 고분고분하게도 밥 한 숟가락 정도의 양을 투입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몇 분을 기다렸다. 조심스레 확인해보니 성공! 그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싱크대 거름망에 모아두었던 음식물을 조금 탈탈 털어 넣고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나서 궁금함을 못 이겨 뚜껑을 열고 들여다보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윙~ 뭔가 안에서 회전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는데 그 덕분인지 매우 짧은 시간 내에 음식물은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오호! 신기하다. ‘이 기계가 과연 70만원의 값어치를 할까’ 못 미더웠던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지던 순간이었다.      

  



음식물 처리기, 린클을 강추한 지인 C의 첫 사용기는 황당하고 놀랍기까지 했다. 하필 린클이 집에 온 날 저녁으로 굴비를, 그것도 5식구가 굴비 20마리 정도를 먹게 되었다고 한다. C의 장모님은 매우 잽싸게 기계 안에 생선 대가리와 가시를 잔뜩 들이부었다고 했다. 생선 가시를 넣지 말라는 사용설명서의 친절한 문구를 확인한 것이 더 나중 일이고 말이다. “장모님! 생선은 넣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C는 차마 장모님께 화도 못 내고 린클의 고장을 염려하며 근처를 뱅뱅 맴돌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기특하게도 많은 생선 잔해를 분해하는 데 성공했으며 덕분에 C의 크나큰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린클을 3달 정도 사용한 나 역시 린클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다. 매우 잘 산 가전제품 베스트 3에 랭크되었음은 물론이다. 음식물을 넣고 반신반의하며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일 따위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또한 질질 새는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누가 버릴지 남편과 실랑이를 할 필요도 없어 가정에 평화가 찾아온 듯 하다.       




 최근 C와의 모임에서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자연스레 린클 이야기로 화제가 이어졌다. C는 이미 여러 번 우려먹었던 굴비 이야기를 또다시 입에 올리며 살짝 흥분한 듯 보였는데 이런 말로 대화를 마무리 짓는 모습이었다. “오늘 모임에서 했던 것 중 린클 이야기가 제일 재밌었어.” 뭐? 여기서 좀 고개를 갸우뚱했으나 옆에서 거드는 C 아내의 말을 듣고 난 후에야 명확하게 이해가 되었다. 그것을 사용하기 전 번번이 매우 정성껏 음식물을 물로 헹군다는 C. 하루에 3~4번은 그것을 보며 매우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는 C. 아! C의 모습 위로 아빠 미소로 반려동물을 자랑하던 또 다른 지인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가전을 구매한 나와는 달리 생명체를 집에 들인 C로구나. 나에게는 음식물 처리를 돕는 고마운 기계임에 반해 C에게는  음식물 처리에 만능인, 사랑스러운 미생물이로구나. 동일한 대상에 대한 우리의 시각차가 매우 새롭고 흥미롭게 느껴졌다.  



   덧붙임> 절대 광고글이 아니다. 영향력없는 내가 광고해도 판매량이 크게 변하지 않겠지만 혹시나 노파심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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