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의 꿈은 과학자다.
수능 과학을 암기로 극복한 나에게,
과학자의 꿈을 가진 아이가 오다니.
다른 집 아이들은 꿈도 자주 바뀐다는데
이 녀석은 유치원 때부터 7년째 꿈이 그대로다.
특별히 무엇을 더 하지는 않지만,
항상 꿈을 물어보면 과학자라고 답하는 아이에게
과학암기왕이었던 나는
각종 체험과 견학을 서치 해서 대령하는 것으로
엄마의 한계를 보이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그것이 조금은 도움이 됐었는지,
아이의 꿈은 우주과학자와 생명과학자 그 사이 어딘가를 모험하고 있다.
얼마 전 아이와 천문대에 갔다.
아이가 행사에 참여해서 당첨(?)되어온
야간관측권을 쓰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날씨가 맑아 별 볼 일이 기대도 됐다.
관측 전에 돔 형태의 천체투영실에서 누워,
우리가 볼 별을 살펴보고 설명도 들었다.
미세먼지도 구름도 없는 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는데
선생님께서 물으신다.
"여기, 안개처럼 보이는 이것은 뭘까요?"
아무도 답을 못하자,
선생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자, 그럼 이쪽 나선 모양의 이것은 뭘까요?
네, 이것은 안드로메다 은하예요. 방금 봤던 안개 같은 것은 우리은하입니다. 우리은하는 막대나선 은하인데요, 모양이 잘 안보이죠? 왜 잘 안보일까요?"
그러게.. 왜 안보일까..
"그 이유는 우리가 우리은하 안에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은하 안에서는 우리은하 전체를 볼 수 없답니다. 그럼 밖으로 나가서 한번 전체를 볼까요?"
선생님께서 마우스로 조작하시자,
우린 광활한 우주 어딘가로 이동했다.
그리고 똑똑히 펼쳐진 우리은하의 모습이 보였다.
아름답게 펼쳐진 은하수였다.
안에서는 전체를 볼 수 없다.
밖에서 멀리 떨어져야만 전체를 볼 수 있다.
이 우주의 지식이,
나에게는 철학적 명제처럼 느껴졌다.
안과 밖.
나는 그 경계에 서 있다.
혼자만 밖으로 가서 전체를 보고 온 것 같다.
그 전체는 우리은하처럼 아름답기는커녕
추하기만 했다.
그래서 다시 들어갈 수 없고,
들어가지 않자니
나의 모든 과거를 포기하는 것 같아 망설이는 것이다.
그렇게 경계에 서 있다.
안으로도,
밖으로도 가지 못하고
경계에 서 있는 나는
보이지 않던 세상의 문제들을
맞닥뜨렸지만 해결할 수가 없다.
우리은하처럼,
밖에서 볼 때, 전체를 볼 때 아름답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뿐이다.
나의 밖으로 나가 멀리 떨어져 나를 본다.
나를 검열하고 평가한다.
전체로서의 내가 아름답도록 열심히 나를 가꾼다.
세상의 문제를 보고도 해결하지 못한 엄마는 아이에게 그런 세상을 물려주는 것이 죄스러워,
할 수 있는 것들을 한다.
힘든 동료들의 말을 들어주고 기댈 곳이 되어주기,
나와 비슷한 일을 겪는, 겪을 동료들을 위해 복직 이후의 삶을 글로 남기기,
의견을 말할 기회가 있을 때 소신 발언하기 등.
교사로서, 엄마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더 늘려갈 생각이다.
작은 은하수 정도의 아름다움을
우리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길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