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해의 창문

지금부터 15년

by 이사벨라

(창문을 열고 찍은 뒷뜰의 레몬츄리, 2/1/2026)


십 오 년 후의 나를 상상해 본다. 지금의 나는 “이미 많이 왔다”고 말할 수 있으면서도, 이상하게도 “아직 더 가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삶이 어느 순간부터는 직선이 아니라, 오래 품어 온 소명이 다시 고개를 드는 곡선처럼 다가온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달력으로 세기보다, 부르심의 깊이로 재어 보게 된다. 앞으로의 열다섯 해가 중요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 시간이 단지 ‘일하는 기간’이 아니라 내 신앙과 공부, 그리고 돌봄이 하나의 방향으로 모이는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교차문화 신학 박사 과정을 마치면 나는 일흔다섯이 된다. 사람들은 그 나이에 “이제 좀 쉬어야지”라고 말하겠지만, 내 마음 한편은 오히려 그때가 ‘제대로 시작하는 때’처럼 느껴진다. 학문이 목표가 아니라, 학문이 삶을 섬기도록 훈련하는 과정이라면 더욱 그렇다. 교차문화라는 말은 낯선 타자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 태도가 아니라, 서로의 언어와 상처, 기억과 예배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갈 길을 배우는 일에 가깝다. 그 배움이 책장에 머무르지 않고, 누군가의 병상 곁에서 기도와 경청으로 번역될 때 비로소 완성에 가까워질 것이다.


나는 부근에 한인 어르신들이 많이 계신 양로원과 재활병원에서 채플린으로 십 년간 일할 모습을 그린다. 그곳의 시간은 빠르지 않을 것이다. 재활의 걸음은 조금씩이고, 슬픔의 파도는 예고 없이 밀려오며, 기억은 때로 사라지고 때로 선명해진다. 그 속에서 채플린의 일은 무엇일까. 답을 주는 사람이기보다, 질문이 무너지지 않도록 곁을 지키는 사람. 신앙의 언어가 굳어져 상처를 찌르지 않도록, 다시 부드럽게 풀어 주는 사람. “왜 이런 일이”라는 탄식이 단죄가 아니라 기도가 되도록, 함께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 어쩌면 그곳에서 나는 가장 많이 ‘말을 줄이고’, 가장 많이 ‘함께 있을’ 지도 모른다.


일흔다섯에서 여든다섯까지의 십 년은 내 인생의 마지막 직업이자, 마지막 훈련이 될 것이다. 그 시기에는 성취보다 성실이, 확장보다 깊이가 중요해질 것이다. 불안도 없지 않다. 체력의 한계, 예상치 못한 질병, 마음의 지침, 혹은 “내가 아직 필요한가”라는 질문. 하지만 동시에 기대도 있다. 오래 배운 것을 과시하지 않고 나눌 수 있는 나이, 타인의 연약함을 판단하지 않고 공감할 수 있는 나이, 그리고 나 자신도 언젠가 돌봄이 필요한 존재임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나이. 돌봄의 현장은 결국 인간의 취약함이 드러나는 곳이지만, 그 취약함이야말로 은혜가 스며드는 틈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여든다섯, 진짜 리타이어드의 문 앞에 선 내가 보인다. 그때의 은퇴는 ‘멈춤’이라기보다 ‘다른 방식의 섬김’ 일지 모른다. 더 적게 움직이되 더 깊이 사랑하고, 더 적게 말하되 더 진실하게 축복하는 삶. 열다섯 해는 결국 나를 어떤 사람으로 빚을까. 아마도 더 단순해진 신앙, 더 정직한 기도, 더 온유한 시선, 그리고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확신. 나는 그 미래를 완벽히 통제할 수 없지만, 한 가지는 선택할 수 있다. 오늘부터 그 길을 향해 마음을 정돈하고, 배움을 삶으로 옮기며, 사람 곁에 서는 연습을 시작하는 것. 열다섯 해는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열어 주시는 중요한 창문일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복 있는 사람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