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틀 없는 이름, 나의 영웅

아버지가 보고 싶다

by 이사벨라


타이틀 없는 이름, 나의 영웅


아버지는 내게 “히로”이시다. 유명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삶을 통째로 옮겨 놓은 분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55년 전에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먼저 오셨고, 53년 전에 우리 가족을 이민자로 만들어 주셨다. 그 숫자들 사이에는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컸을 이국의 밤들, 말로 다 하지 못한 책임, 그리고 가족을 지키겠다는 단단한 결심이 묻어 있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그 결심의 무게를 더 깊이 헤아리게 된다.


그런데 이민 초기의 아버지는 훗날의 아버지와 많이 달랐다. 술과 담배를 많이 하셨고, 그 때문에 가족들은 참 슬펐다. 어린 마음에도 집안 공기가 무거워지는 날들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이유를 다 이해하지 못해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 시절의 슬픔은 단순한 “나쁜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낯선 땅에서 버티는 방식이 어긋나 버린, 한 인간의 고단 함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때, 아버지는 교회에서 장로로 세움을 받으셨다. 그리고 그날 이후, 술과 담배를 하룻밤 사이에 끊으셨다. 나는 지금도 그 이야기를 떠올리면 마음이 뜨거워진다. 사람의 의지만으로는 어렵다고들 하는 일을, 아버지는 믿음의 자리에서 결단하셨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기적”이라 부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 변화는 단지 생활의 교정이 아니라, 집안의 공기를 바꾸고, 관계의 방향을 바꾸고, 우리에게 다시 숨을 쉬게 해 준 회복의 시작이었다.


아버지는 70세에 췌장암으로 돌아가셨고, 벌써 25년이 되었다. 어머니는 재작년에 돌아가셔서, 마음이 아직도 어제같이 아프다. 이상하게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먼저 나고, 아버지를 생각하면 감사가 먼저 차오른다. 물론 아버지의 인생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변하셨고, 다시 세워지셨고, 무엇보다 가족을 사랑하셨다. 나는 이제야 조금 알겠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다루실 때, 한 번의 실수로 끝내지 않으시고, 시간을 두고 새롭게 하신다는 것을. 아버지의 삶이 그 증거처럼 내게 남아 있다.


대학원 입학원서에 ‘존경하는 사람 3명’을 쓰라는 질문이 있었을 때, 나는 아버지 이름 석 자를 타이틀 없이 적었다. 다른 두 분은 “ㅇㅇ박사, ㅇㅇ박사”라고 썼지만, 아버지에게는 어떤 호칭도 없었다. 학교에서는 “이익노” 씨가 누군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이름은 우리 가족을 이곳까지 데려온 이름이고, 무너질 뻔한 순간에도 다시 일어서게 한 이름이며, 믿음 안에서 삶을 새로 시작한 한 사람의 이름이다. 요즘 나는 아버지를 많이 생각한다. 평생 고생만 하셨던 분. 자식들을 끔찍이 사랑하셨던 분. 그래서 고백한다. 아버지는 내 마음의 영웅이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붙드셔서 가족의 길이 되게 하셨던, 그 조용한 은혜의 이야기 속에서.










작가의 이전글우리 집 탐정사무소: 셜록과 왓슨, 그리고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