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격 소식은 생각보다 조용히 찾아왔다. 오래 준비해 온 신학대학원 박사과정이었기에 마음 한편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지만, 그 감정은 크게 흔들리기보다 천천히 가라앉았다. 기대가 사라진 자리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이 남았고, 나는 그 침묵 속에서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 시간은 실패의 시간이면서도, 나를 다시 빚어가는 또 다른 시작처럼 느껴졌다.
그즈음, 딸이 집에 왔다. 유방암과 싸우며 긴 시간을 견뎌낸 딸이 일 년 만에 일주일을 함께 보내기 위해 찾아왔다. 비행장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딸의 모습을 보는 순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사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왔다. 여전히 연약해 보이면서도, 그 안에는 포기하지 않고 버텨낸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몸이 많이 회복된 듯 보이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큰 위로를 받고 있었다.
며칠 전 우리는 함께 미장원에 다녀왔다. 나는 흰머리를 덮기 위해 염색을 했고, 딸은 항암치료로 모두 밀어냈던 머리가 다시 자라나 그것을 단정히 다듬었다. 거울 속 딸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의 증거인지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외모의 변화가 아니라, 삶이 다시 이어지고 있다는 조용한 선언처럼 보였다. 그날의 미장원은 우리에게 작은 회복의 공간이 되었다.
(미장원에서 머리 컷을 하고 있는 딸. 2026.4.3.)
어제는 가까이 사는 아들과 며느리까지 함께 모여 저녁을 먹었다. 남편과 딸, 아들과 며느리가 한 자리에 앉아 웃고 이야기하는 모습은 오랜만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식 한 끼였지만, 그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이 함께 웃고 떠드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그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불합격의 아픔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 아픔은 더 이상 나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삶의 다른 선명한 순간들이 그 자리를 채워가고 있다. 나는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이렇게 하루를 살아내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나누며, 조용히 다시 서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지금 배우고 있는 가장 깊은 신학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