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날의 저녁

by 이사벨라


며칠 전, 우리는 딸이 집으로 돌아가기 전날 작별 저녁을 함께했다. 캘리포니아 산호세로 돌아가기 전,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 시간이었다. 특별히 준비된 자리라기보다, 떠나기 전 자연스럽게 마련된 식사였지만, 그날의 공기는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조용히 흐르는 시간 속에,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들이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오랜 시간 병과 싸워온 딸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말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그날의 모습은 분명 이전과 달랐다. 치료의 흔적으로 거의 밀어냈던 머리는 이제 조금 자라 단정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그 변화는 말없이도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함께 미장원에 다녀왔던 날의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웃었고, 그 소소한 대화 속에서 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안도를 느꼈다.


식탁에는 남편,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딸이 함께 앉아 있었다. 각자의 삶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던 가족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웃고 떠드는 모습은 그 자체로 깊은 위로였다. 특별한 이야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대단한 음식이 준비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서로의 일상을 나누고, 가벼운 농담을 건네며 웃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평범함 속에서 나는 오히려 더 큰 충만함을 느꼈다.



식사가 끝난 뒤, 우리는 함께 과일을 나누어 먹었다. 붉은 사과와 작은 귤들이 한 그릇에 담겨 있었고, 그 소박한 색감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누군가는 사과를 깎고, 누군가는 귤을 건네며 자연스럽게 손이 오갔다. 특별할 것 없는 그 장면 속에서, 나는 우리가 여전히 서로를 돌보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말없이 이어지는 손길들이, 그 어떤 말보다 깊은 위로가 되었다.


우리는 흔히 ‘회복’을 어떤 완성된 상태로 생각한다. 병이 완전히 낫고, 모든 것이 이전처럼 돌아오는 것. 그러나 그날 나는 회복이 단지 결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함께 앉아 웃고, 음식을 나누고, 과일을 건네는 순간들 속에서, 회복은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직 모든 것이 온전하지 않아도,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회복의 한 모습처럼 느껴졌다.


신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말은 관계 속에서 더 분명히 드러난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위로를 경험하고, 서로를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날의 식탁은 바로 그런 자리였다. 완전하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앉아 서로를 향해 존재하는 그 순간, 나는 그 안에서 조용하지만 깊은 은혜를 느꼈다.


이제는 더 이상 완벽한 날만을 기다리지 않으려 한다. 모든 것이 해결된 뒤에야 기뻐할 수 있는 삶이 아니라, 아직 진행 중인 이 시간 속에서도 이미 주어지고 있는 선물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싶다. 함께 웃는 저녁, 짧은 대화, 같은 공간에 머무는 시간—그 모든 것이 이미 우리를 회복으로 이끄는 길 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날의 저녁을 오래 기억하려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보였던 그 시간 속에서, 이미 가장 중요한 일이 조용히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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