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늬 Moon Jun 07. 2024

선생님이 됐는데 또 꿈이 있어요?

차마 사표는 쓰지 못하고

나잇값을 못하는 건지, 그 나이에 못해서 지금 몰아서 하는 건지 최근에 어떤 지원서를 제출한 적이 있다. 소속란에 ○○학교라고 썼다. 굳이 세어보지 않았다가 문득 나고 자라면서 현재까지 거의 40년 동안 소속이 '학교'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소위 중견 교사에 해당하는 나이지만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뛰고 밤새는 일이 생기더라도 피곤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나는 배움이 즐겁다.

지원서를 제출하고 준비하는 나를 보며 오랜 친구가 이렇게 말하였다.

“너는 하고 싶은 일이 끊임없이 생기는구나. 가만히 있나 싶으면 또 뭔가를 저지르고 도전하고 있어.”

나는 그 말이 아주 큰 칭찬으로 들렸다. 20년 이상 봐온 교직 친구가 나를 가리켜 ‘도전하는 사람’으로 명명해 준 것이다. 그렇다. 나는 나 자신이면서 나를 미처 정의하지 못하고 그냥, 살아왔다. 그런데 나는 도전하고 싶은 일은 일단 시도하고 보는 돈키호테 타입의 사람이었다.

그 친구의 분석은 너무나 마음에 들고 고무적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무튼 엉뚱 용감한 중년을 보내던 내가 최근 또 하나의 일을 저지르고 난 직후에 들었던 말이다. 그 일이란 바로 교육 전문직 시험 응시. 그 친구뿐만 아니라 주변의 여러 사람들은 내 결정에 대해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모두들 되물었다.

“갑자기? 왜?”

“원래 승진에 생각이 있었던 거야?”

나는 ‘갑자기’와 ‘승진’이라는 낱말을 듣고 생각이 많아졌다. 사람들의 생각처럼 이제라도 승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어떤 이는 이렇게도 말하였다.

“그 나이에 미쳤어?”

그러게 말이다. 나는 왜 이 나이가 될 때까지 가지 않았던 길, 시도해보지 않았던 일을 저질렀을까.  


         

올해는 유난히 ‘교사’라는 직업이 시사의 화두로 자주 떠올랐다. ‘회복적 생활교육’에 주목하기도 하고 학생을 대상으로 회복적 생활교육을 실천하기도 하는 교사이면서도 우리는 어떠한가? 정작 자기 자신의 생활은 회복적으로 돌보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 마음도 아프다.

교사가 공식적으로 써내는 많은 글의 형태는 그동안 공문과 계획서, 보고서, 일지 등이었다. 이제 좀 더 다양한 형태의 표현이 필요하다. 교사와 사람 그 중간 어딘가의 이야기를 하기도, 듣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복적 생활교육의 방향이 교사 스스로에게도 향해야 할 때이다.

교사가 교사에게 전하는 격려와 위로,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교사로 근무하면서 느끼는 여러 생각들을 나누고 싶다. 물론 학교와 교육을 떠나지 않고 가능하다. 주제별 교육과 연계하여 곱씹어 보아도 좋을 소소한 기억과 생각을 공식적인 문서 형태가 아니라 담담한 이야기로 풀어놓고 싶었다.           

교직 사회는 다른 직장에 비해 승진체계가 단순하고 명료하다. 일반적으로 교사가 승진을 한다는 것은 ‘교감’을 거쳐 ‘교장’이 되는 단계를 의미한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승진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의 교직 생활을 돌아보면 내가 승진을 하는 것은 어쩌면 불합리한 일이라고까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왜냐하면 여러 교직원들을 총괄하고 아우르고 함께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것은 탄탄한 실력만이 아니라 인간적인 덕목과 소통의 방식과 능력을 포함하므로 내가 가야 할 길이 너무나 멀고 멀다는 생각이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각종 주제와 사업에 대해 진지하게 계획하고 철저하게 분석도 해보아야 한다. 많은 계획서와 보고서를 써보는 실무를 추진하고 성과를 얻어내는 경험도 중요하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내가 부장으로서 업무의 최전선에서 위의 일들에 직접 참여한 기간이 너무 턱없이 짧았다. 어떠한 교육적 문제에 대해 자료를 수집하고 관찰하거나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생산해 본 적은 많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내가 떠올린 아이디어는 반영해 줄 곳과 매칭되지 못하거나 전달 체계가 마땅치 않아 곤란하고 안타까웠다. 다양한 주제의 사례 보고서 제도와 정책 아이디어 공모 등이 있었지만 주제나 연구 기간 등에서 내가 했던 고민이나 상황과는 괴리가 있어 이에 대한 성공 경험도 거의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나의 인사기록카드는 너무나 얄팍하다. 그럼에도 나는 꿈이 있다!          

혹 누군가 나처럼 인사기록카드가 비어있거나 공식적인 체제와 제도 안에서 우수한 연구 결과를 내지 못했다 할지라도 우리의 걸음걸음은 의미가 있다. 어쩌면 성과라는 것은 ‘기회’라는 타이밍과 맞지 않다면 마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므로. 도전 의욕이 높고 노력할 준비가 되어 있더라도 기회라는 요소를 동시에 맞이하지 못한 누군가가 있을 뿐이다. 소소한 자신만의 꿈을 가지고 교직 생활을 해오는 어떤 이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를 어딘가에는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첫걸음이기를 바란다. 이를 시작으로 다양한 분야의 주제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연구하고 글로 남기고 싶었다. 그런데 그 일을 공식적으로 할 수 있으려면 현재의 제도상 ‘교육 전문직’ 시험을 통과하여 교육연구사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했었! 다.

그러니까 갑자기, 라 비추어진 나의 이 엉뚱한 도전은 사실 나의 꿈을 위한 것이었다. 장래 희망에 대한 주제로 수업을 하던 중 우리 반 학생이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은 이미 선생님이 됐는데 왜 또 꿈이 있어요?”

그랬다. 나이가 얼마든,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든 꿈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이 되었는데 또 꿈이 생겼다. 그때 도전의 변으로 내놓았던 글의 일부를 여기에 옮겨본다. 다시 그 일에 도전할 생각이 없어졌으므로 미련 따위는 없이.                         



Ancora Imparo(앙코라 임파로) : 미켈란젤로의 교훈


  르네상스의 창의융합예술인 미켈란젤로는 89세 임종까지 현역이었는데 그 비결로 꼽은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Ancora Imparo(앙코라 임파로)는 참 뜻깊은 말입니다. 이전과 다른 변화를 이끌어 내는 위대하고도 매력적인 ‘배운다’는 행위에 저는 아이처럼 신나고 가슴이 뜁니다. 저의 긴 서사에는 배움의 길에서 얻은 보상도, 지혜도 있었으므로 담담하게 제 이야기를 펼치고자 합니다.


---중략---


다음 해, 학교를 옮기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습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저에게 집중하여 몇 년을 보냈습니다. 하고 싶던 대학원 전공 공부를 시작했고 연관 활동과 각종 연수, 강연, 강좌, 공연, 전시를 위해 테마별로 여행을 기획하고 수정 보완했습니다. 감탄하고 사진을 찍고 기록하며 책자로 만들기도 하며 다양한 몸짓으로 보냈습니다. 정성 들인 내 원고가 <교육**>으로 전해졌던 일, 사제동행 독서․토론 동아리의 버스 문학기행, 집합 연수와 자료개발 대회에 임하던 제가 떠올랐습니다. 좋은 결과나 성취감 때문이 아니라 희열에 찬 공부와 실천, 시행착오를 통해 배웠기 때문입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그러하듯 열정과 배움의 시간을 살면서도 소위 승진이나 스펙을 위한 방향과 꼭 일치하지는 않은 소중한 시간들. 해보고 싶던 많은 것을 배웠고 선물처럼 가족들의 영광까지 마음껏 즐길 수 있었기에 후회 또한 없습니다. 지금의 저는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에 힘입어 가슴 뛰는 또 하나의 도전 앞에서 배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 본 글의 시점과 상황은 2023년 저자 되기 프로젝트의 글을 수정함으로써 현재와 차이가 있습니다.

이전 25화 내가 곧 브랜드 스토리 텔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