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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Moon Jun 14. 2024

우리 선생님은 딴생각 ing

'내 원체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오'

감탄과 호기심 많은 성향 탓일까. 나는 항상 크고 작은 희망을 지니고 산다. 그것들은 닥쳐있는 상황과 시기에 어긋나기도 했고 교사로서의 생각이 아닐 때도 있었다. 때때로 변해왔으며 분명 좋은 생각들이었지만 당시의 나로서는 이룰 수 없었거나 유용하게 써본 적도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언젠가는 ‘사회과 부도’를 펼쳐 우리나라 전도를 보며 이랬다.

북한이 아니라면, 눈을 감고 짚은 곳이 어디든 우리 거기로 여행 가자!” 

용감한 외침에 가족들이 하나씩 짚은 곳들은 찾는 이도 거의 없는 낯선 지명들이었다. 느닷없이 간택되었지만 우리 가족 네 명 모두가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으로 꼽는다.

훗날 그 장소들은 유명 영화 촬영지가 되거나 대기업 회장의 별장이 지어지거나 SNS와 스노클링의 성지가 되었다. 숨은 여행지를 찾고 즐기고 기록하는 일은 아주 근사한 일이다. 

이 설렘은 해외여행에서도 이어져 비행기뿐 아니라 현지 대중교통, 숙박 모두를 계획하여 떠난다. 그런데 장거리 이동 전 간단한 식사가 필요한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김밥이나 컵볶이 등 포장음식으로 해결하면 그만일 텐데 난감했다. 그런 상황에 아이들에게 말했었다.

“혹시, 너희들이 대학에 가지 않고 어떤 사업을 하고 싶으면 해외에서 김밥과 컵볶이를 팔아봐. 분명 성공할 거야. 일본의 초밥은 가는 곳마다 있는데 우리나라 김밥은 왜 없을까? 한국인 관광객은 많은데 아이러니야.”

그렇게 말한 것이 십몇 년이 더 지났다. 지금 미국에서 냉동 김밥이 품절사태를 일으키고 떡볶이가 휩쓸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쉽게 떠오른 기억이다.

우산도 쓰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는 젖은 런더너에게도 의문을 가졌다. '스카프와 코트 깃만으로 겨울 궂은비가 이겨지나?' 그들에게 겨울 먹거리로 붕어빵과 어묵을 소개하고 싶었다. 신사와 숙녀들의 추위를 이겨내기에 제격이라 생각하며 그것들 대신 우리는 피시 앤 칩스를 먹었다.

영국에서 돌아와 한두 해밖에 지나지 않았을 무렵. 한 개 팔천 원에 육박하는데도 붕어빵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유럽 뉴스를 접했다.



우리는 패키지로 여행을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가이드가 따로 없는 게 익숙했다. 숙소나 교통수단, 동선 등의 정보를 스스로 정리해야 했는데 이럴 때도 나는 딴생각이 들었다.

준비하는 동안의 탐색이 즐겁기는 했지만 여행지의 동선 정리나 대중교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으로 치면 여행자를 위한 다양한 앱들이 그때의 바람을 채워주고 있다. 내가 생각한 것들이 시간이 지나 대중화되거나 큰 인기를 끌 때마다 ‘여우의 신 포도’ 격으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사업적으로 나쁘지 않은 안목이지만 실행될 수는 없는 공상으로 머물 뿐이었다.

‘이거다!’ 싶은 아이디어들이 시간이 지나 대박 아이템이 되거나 대유행을 이끄는 일이 여러 번 반복되니 신기했다. 그러면서도 가보지 못한 길에 한쪽 발을 뻗는 마음으로 또 그려보았다. 정황상 실행이 어려운 사업 아이템이나 세부 기획 아이디어만을 팔 수 있는 시스템은 없을까?



직업이나 일에 대한 이런저런 짧은 생각들은 진로진학 분야를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닐 하게 되었다. 특히 대학입시 컨설팅 작업에 빠져들었다. 정규 교육과정은 아니었는데 혼자 익히다가 재미를 붙였다. 

내 아이들뿐만 아니라 지인 자녀들로 확대하여 진로를 모색하고 설계했는데 이때 생활기록부나 성적과 관련된다는 제약이 따랐다. 결국 희망 분야 정보나 기존 합격 자료들을 분석한 책자를 만들어주는 정도였지만 즐거운 과정이었다.

내 컨설팅 내용과 과정에 더 신뢰를 높이기 위해 박사학위 취득 등의 추가적인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와 관련된 또 하나의 꿈은 강연이다. 막연히 강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해왔다. 타 지역의 여러 전시나 강연을 보러 가면서 상상해 보기도 한다.

정작 나의 옛 친구들은, 학창 시절 낯가림도 있고 숫기가 없던 내가 많은 학생들 앞에 서는 직업을 가졌다는 사실에 놀라워한다. 그래도 나는 아직 강연하는 나를 꿈꾸고 있다.

대상과 상황, 분위기에 따라 소재와 역량은 달라질 수 있다는 핑계를 장착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있다. 제법 진지한 꿈이라 강연 소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밤새는 줄 모르도록 몰입하고 피곤을 못 느끼며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중 적당한 소재는 뭘까? 오랜 시간 동안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걱정은 책을 쓰는 동안 잠시 나를 믿고 접어두기로 했다. 잘 쓰지 못할지라도 처음이라서 양에 차지 못할지라도 그동안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품고 있다면, 그렇다면 가능하기를! 희망을 가져본다.

삶의 변화를 통해 이야기의 재능도 무게도 성숙해질 수 있다고 믿으며.



이렇게 쓰다 보니 초등학생들의 집단 독백을 모아 놓은 듯하다. 중 이루어 놓은 것도 없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 꿈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무엇인가를 배우고 찾아보고 실천했었으므로.

누군가 함부로 말했던,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지만 모두가 꿈을 갖고 상상해 보자는 마음은 여전하다. 의외로 정신적인 환기의 효과를 준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가 말하지 않았는가.

“내일 지구의 멸망이 오더라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

현실, 미래의 실현 가능성을 떠나서 내가 지금 의미 있는 생각과 바람직한 실천을 할 수 있다면 경계 없이 상상하고 넓게 꿈을 꾸어보자. 이미 어른이라 해도, 어떠한 직업인의 자리를 갖고 있다 해도  어떠랴. 또 다른 꿈을 가꾸어 날아가 보자!

지금의 어려움에서 눈길을 잠시 돌려보는 의미든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갈망이든 나는 이러한 생각들을 꿈!이라 부른다.

그리고 원체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는 이 마음은 앞으로도 쉽게 끊어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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