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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Moon Jun 21. 2024

에필로그

속아 넘어가길 잘한 것 같기도

책을 내줄 계획이다, 작가를 넘어 강사로 활동할 기회를 주겠다는 내용이 문서였다면 오히려 마음이 동하지 않았을까. 무대 위 확신에 찬 세 사람의 말에 내 마음은 이미 서점 매대에서 사인을 하고 있었다.

꽝꽝 꽝 기관장 명의의 도장도 박고 일사천리로 지벌서도 냈다. 일은 벌어진 것이다.



심사를 거쳐 선정명단이 나왔고 낯익은 이름이 보였다. 달랑 세 글자 내 이름은 나를 격려했다. 더 높은 전압으로 희망회로가 돌았고 잠자던 능력도 단번에 깨울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힘으로 미친 듯이 글을 써나갔다. 2023년의 일이었다.


그.

리.

고.

2023년이었으므로 나 또한 뜨겁고 슬픈 검은 점이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큰 폭풍을 일으킨 누군가는 있었다. 여전히. 내 곁에.

그로 인해 내 글은 동력을 잃어갔다. 원고의 속도는 현저히 떨어졌다. 마침 책을 내주겠다던 약속이 비매품 예정으로 변질된 것은 우연만은 아니리라.

내가 속물이었음을 인정한다. 꿈도 야무지게 김칫국부터 마신 나에게 더 이상 출판의 마법은 없었다.

마법은 풀려버렸지만 남아있는 유리구두의 주인은 찾아야 했다. 체감상 월급보다 빠른 원고 마감은 꼬박꼬박 다가왔다. 어쩔 수 없이 억지 원고가 이어졌고 그렇게 번갯불에 책 한 권을 구워냈다.

급히 찾은 손님에게 내어놓은 설익은 음식처럼 글을 거두어 또 몇 달을 새로고침했다.

그 사이 작지만 여전히 뜨거운 점들이 함께 있었다.  나또한 아팠지만 슬프지만은 않은 하나의 점이 되어 이렇게 1년 만에 다시 뒤표지를 덮는다.

이 세상 모든 점들이 스스로를 다독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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