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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Moon May 31. 2024

내가 곧 브랜드 스토리 텔러

너에게 나를 보낸다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뭐야?”

내 딸은 참 다양한 질문을 쏟아낸다. 말을 배워 재잘댈 때부터 지금까지. 그중에 가장 잘한 일이 뭐냐고 묻는데 이렇게 말했다. 

“가장 잘했다? 라. 가장 잘 선택한 일은 있어.”

잘 선택한 두 가지 일이란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한 것과 이 책을 쓰게 된 것이라고 대답했다.



남편을 만난 것, 이라는 말속에는 많은 뜻이 들어있다. 남편과의 결혼이 두 아이들을 있게 하였고 가족을 이루어 살게 했다. 살면서 모든 맛을 보기도 뱉기도 한 나의 비빌 언덕이며 많은 경험과 추억을 담아둔 필름이니까 내 마음과 의미를 다 넣은 대답이다.           

두 번째로 잘한 일은 이 책을 쓰게 된 것이다. 갱년기에 접어들고 있어서인지 자꾸만 인생을 돌아보고 허무해진다는 생각이 들 때였다. 혼자만 뒷걸음질로 살아온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눈을 주고 있었다. 그런데 ‘저자 되기’라니! 이건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지는 않는 일인 것 같아서 무릎을 탁! 치며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써온 일기장이 있거나 그동안 써온 보고서가 많아서도 아니었다. 그런 보험도 없이 덜컥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 나이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나이만큼 살면서 하고 싶던 말이 없었겠는가, 까지 생각을 하자 고구마 줄기처럼 그다음 알맹이가 이어져 나왔다. 직업에 대해, 가족에 대해, 내 생각에 대해…….  


     

그래도 진짜 책 쓰기를 위해 글을 시작하고 진행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처음 사전 설명회에 갔을 때 초청되어 온 작가님 말씀 중 가장 오래 남는 말은 재미있게도

“240쪽이 책으로 만들었을 때 가장 보기 좋아요.”

였다. 다른 좋은 설명도 많았는데 하필 240쪽,에 내 귀가 멈추어버렸다. 그리고 돌아와서 기획부터 해보았다.

무슨 내용을 쓸 것인가? 공식적으로 이루어 놓은 특별한 스펙 없는 것 같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예를 들면 사례 보고서, 계획서, 흔한 보도기사 등 모조리 생각해 보아도 몇 개 되지 않았다. 오랜 교직 생활을 해 왔는데 왜 그랬을까 싶었다. 그럼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에 대해 연구를 시작해서 써볼까? 그건 무모한 짓이었다. 또 포기. 그럼 뭘?

그러다 선정되기 위한 글이 아니고 그냥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부터 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고개를 끄덕일 계획이 세워지게 되었다. 내가 오로지 교사로서만 충실하게 살았다고 하기에는 개인 생각을 말하고 싶었다. 개인 생각만을 쓰자니 자꾸 내용에 아이들이나 동료 선생님들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건 학교 이야기이며 동시에 교육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아 그렇게 방향을 잡았다.

시작이 반!이라고 좋아했는데 처음의 미친 듯한 열정으로 일주일을 매달려 틈나는 대로 쓴 글이 고작 60쪽쯤 되었다. 물론 양을 늘리기 위해 편집 용지도 점점 더 여유로워지는 상황에서였다.

그런데 막상 선정이 되고 나서 쪽수 제한을 받게 되니 오히려 답답한 지경에 이르렀다. 자꾸만 쓸 말이, 주제가 늘어나고 있었다. 지금도 쓰고 있지 않은가?        

내 성장 과정에서 글짓기로 상을 받아 본 기억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다. 누구나 그 정도는 하면서 자라온 평범한 정도인데도 어느덧 200쪽을 넘긴 책을 쓰고 있다. 물론 글에 대한 공감이나 문장력에 대한 평가는 독자의 몫이지만 나는 단언컨대, 모든 선생님들이 자신의 책을 만들기를 바란다. 모든 사람들이 쓴다면 더 좋은 세상이 올 거라는 믿음도 생겼다.

글쓰기는 선생님들의 연수에서 귀가 아프도록 들었던 것처럼, 학생들에게 목이 아프도록 강조했던 것임을 나는 알게 되었다. 융합적 사고의 결정체이며 위대한 종합적 예술 행위임을 체험하게 되었다. 가정과 가족이 내 삶의 필름이라면 책을 쓰는 과정은 영사기를 돌려주는 시간이 되었다.

        


'스토리텔러'라는 꼭지는 공교롭게도 남편과의 다툼에서 시작되었다. 그도 화성에서 온 사람이었고 나도 금성이 왠지 친근하다. 그런 우리가 의견 다툼을 겪을 때 남편에게서 예상 밖의 한 마디를 듣고 아! 하는 통찰을 얻었다. 흔한 사과의 말이나 화해의 표정도 아니었다. 그것은

“말이 잘 안 통한다고 생각되면 글로 보내 봐. 내가 꼼꼼히 읽고 생각하기 좋게.”

였다. 처음에 어이가 없었지만 그건 맞는 말이었다.

도저히 말이 안 통하는 상황에서도,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 상황에서도 이 방법은 아주 좋았다. 토요일에 화가 났는데 실제로 남편에게 보내는 건 수요일일 때도 있었다. 며칠에 걸쳐서 썼다가 고쳤다가를 반복한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서 사춘기를 맞아 갈등이 생길 때도 이 습관은 유지되었다. 그렇게 가족들과 나눈 메시지, 메일 등의 습관은 보배가 되어 돌아왔다.



다투던 남편의 느닷없는 그 말이 이 책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습관으로 인해 인간관계에서 웃지 못할 실수가 생긴다. 바로 ‘보내기’나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한 것. 나는 분명 그 사람에게 어떤 글인가를 썼던 기억이 나는데 상대방은 전혀 모르는 상황일 때가 있다. 내가 고치고 고치는 작업을 하다가 그만 보낸 줄로 착각하는 경우다. 그동안 나와의 관계에서 이런 경우를 겪은 이가 이 글을 읽는다면 내가 자신을, 그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여 용서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아니,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는 살아남지 못하는 수가 있다. 선생님들도 학교 안에서, 학교 밖에서 많은 관계를 맺는 동안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묻어 둔 채 시간이 쌓여간다. 내 이야기를 담아 두기만 하면 나의 힘듦은 어디에도 ‘보내기’나 ‘전송’이 되지 않는다. 이 책을 쓰는 과정을 통해 많은 치유가 이루어지고 평안을 느껴 보았기에 감히 말할 수 있다.

지금 흔들린다면, 휘청인다면 혹은 기쁘거나 감사하다면 그 모든 마음을 글로 써보기를 소망한다. 그리하여 감당하기 힘든 슬픔도, 혼자 가지기 아까운 희열도 저 건너에 있는 나의 자아에게라도 '보내기'를 바란다.

그래야 살 수 있다.

더 잘! 살 수 있다.          


* 지난 책 출간의 시점의 문장과 맥락입니다. 일부 수정하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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