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인문교육
더 오래 살지 않은 40대 나의 기억에서도 계절은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움직였다. 어떠한 꽃이 피는 계절, 나뭇가지에서 새잎이 돋는 계절은 변화하고 반복했다. 달력의 날짜에서 어느 시기와 간격을 맞추어 규칙적이면서도 아름답게 말이다. 나는 그 아름다움과 함께 탄성을 쏟아 내거나 사진을 찍기도 하였으며 때때로 글을 쓰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었다.
‘학교’에 맞추어 기억을 떠올리면 이렇다. 2월의 학기 말 방학 때는 바람 끝에 매서운 기운이 가시지 않을 듯하다가도 3월에는 달랐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이 익숙해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산수유는 우리를 환영했다. 한 송이송이마다 노오랗게 불꽃놀이를 하기 시작하여 이내 골짜기를 이루고 마을을 뒤덮는다. 그 시기 재잘대는 아이들의 밝은 얼굴만큼 그렇게 3월 새 학기는 노오란 꽃처럼 시작된다. 점심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양치를 하며 창밖을 보면 또한 샛노란 개나리가 한들거렸다.
5월 어린이날 즈음이 되면 이제 하얀색 꽃들이 행복을 주기 시작한다. 오래된 학교의 울타리로 쓰이던 탱자나무는 날카로운 가시덤불 속에서도 샐샐 꽃망울을 터트리는 모습이 놀랍기만 했다. 스승의 날 무렵에는 학교 밖 저 멀리에서부터 바람과 함께 행복이 찾아들었다. 아카시아의 향긋한 꽃 내음이 교실 안까지 날아들어 마음마저 풍요롭게 하곤 했다.
학기가 한창인 때에는 분홍, 보라, 푸른색 할 것 없이 여러 색깔을 가진 꽃들이 함께 어우러진다. 마치 아이들이 제각각 개성을 나타내고 마음껏 동심을 발산하며 다양성을 뿜어내는 시기와 맞물려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이 땀 흘리며 운동장을 한참씩 뛰어놀고 나면 보랏빛 등나무 꽃과 잎들이 그늘을 만들어 쉬게 하였다. 학교 밖 먼 산에는 연분홍 자귀나무의 꽃이 어른어른거렸다. 학교 텃밭 가에서는 푸른빛의 달개비 꽃도 달팽이를 품고 아이들과 함께 자라난다.
학교텃밭 식물 중 주로 여린 잎을 채소로 먹는 부추가 있다. 포기 가운데에서 단단한 줄기가 솟아오르면서 그 끝에 알싸한 향을 가진 꽃을 피우고 나면 여름방학은 끝이 나고 2학기가 시작된다. 예전에는 2학기 내내 연습하여 무대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던 ‘학예회’가 있었는데 그 연습이 한창인 계절에는 상사화가 학교 뜰 앞뒤에서 피어나곤 한다.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캐럴을 목청껏 부르거나 카드와 연하장을 만드는 시기가 되면 학교 계단이나 중앙현관에서는 이국적인 인사를 하는 식물이 있었다. 빨갛고 화려한 잎의 포인세티아가 우리를 반기곤 했다.
우리는 이렇게 노오란 산수유나 향기로운 매화에서부터 새 학년을 맞이하여 겨울의 포인세티아를 만나는 학년말까지 다양한 식물, 꽃과 함께 변화하고 성장하며 1년을 보내곤 했다. 이렇게 정리하며 보니 자연은 참으로 감사한 반복을 우리에게 주고 있었다. 내가 만약 또래 친구들보다 조금이나마 더 다양한 식물 이름이나 꽃의 모양, 피는 시기 등을 안다면, 이것은 탁월한 기억력이나 관찰력 때문이 아니다. 단언컨대 그것은 ‘반복적인 독서의 효과’라고 나는 생각한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어릴 적 책에 빠져 지낸 시기는 초등학교 2~4학년 시기였다. 부모님의 일로 인해 낯선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나 또한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그때 시작된 것이 바로 독서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책을 읽었을 테지만 내가 기억하는 ‘즐거운 독서’는 그때 시작된 것이 틀림없다. 전학 후 친구들과 아직 서먹할 때 스스로 정한 적응의 시기에 책과 친해졌던 것이다. 새로운 친구에게 말을 걸기도 대답을 하기도 왠지 어색하고 부끄러운 때마다 책을 읽곤 했다. 교사가 된 후에 전학을 온 학생들을 보면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순전히 경험에 의한 내 주관적 해석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그때 책이 너무나 좋았다. 그러면 두근두근 떨리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 무렵에 우리 집에는 식물도감 세트가 생겼었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식물의 이름은 그 식물도감에서 보았던 것들이다. 다른 책들보다 식물도감을 유독 좋아하고 심취했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저 좋아서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생활에서 그 꽃이나 식물을 발견하면 너무나 기쁘고 반가워서 탄성을 지르곤 한다. 반복적으로 읽었던 책 덕분에 나는 평생 감탄사가 많은 삶을 살고 있다.
요즘도 산책 삼아 걷거나 차를 타고 들판이나 산을 지나다 식물들을 보면 반갑게 이름을 말하게 된다. 옆에 있는 누군가의 관심이나 칭찬을 받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 이름들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도 아닌데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냥 내뱉어지곤 한다. 나는 이것이 바로 ‘독서교육’의 방향이나 힘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즐겁게 읽게 된다면 더 이상 아무도 강조하거나 권유하지 않더라도 독서교육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독서를 통하여 앎의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면 스스로 책을 가까이하며 읽는 습관이 다져지게 될 것이다. 이런 메커니즘으로 반복하고 확대하며 찾아 읽게 되면 그것이 곧 독서의 생활화다. 이 단계가 되면 생활에서 내면화할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는 자발적 독서의 힘을 발휘하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해오던 독서를 통해 문제해결이나 지식으로 재생산되는 것이다. 참으로 신기하고도 근사한 이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