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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영 May 17. 2024

홈스윗홈

2023. 06. 17.

주말은 나른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면 어느 순간 기분이 좋지 않은 나를 발견하게 된다. 피곤해서 쉬려고 하는데, 머릿속은 생각들로 가득 차고, 실천으로 옮기지 않는 나에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결국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야 이 문제들이 해결될 것인데, 이 사실을 요즘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지난겨울 즈음에는 매일이 이러하였다. 직장에서 녹초가 될 때까지 일하고 퇴근하면 거실에 쓰러져서 머릿속만 바삐 움직였다. 피곤한 몸이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고, 가만히 누워서 숨만 쉬거나 뜸을 떴다. 그러다가 몸이 회복되면 움직이면 될 텐데, 관성 따라 가만히 있었다. 이런 나의 피로와 공허를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 위로받고 싶었다. 그들이 회복시켜줄 수 있다는 듯이.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나는 분명 집순이가 아니다. 반면, 강제로 집에 있어야 하는 때가 많았다. 어렸을 땐 친구 집에서 놀 때 여러 번 불려 갔고, 밖에 있다가 집에 들어가면 왜 집에 안 있냐고 혼도 많이 났다. 성인 이후에는 집에 오기만 하면 별말 안 했지만, 오게 만들기까지의 과정이 매우 짜증 났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에 말도 안 되는 통금 시간을 만들더니, 그 시간을 점점 앞당겼다. 후천적, 타의에 의한 집순이가 된 것이다.

다만 가정을 평화적인 분위기로 만들기 위해 내가 포기하고 그냥 집에 있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집에서 할 일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하려고 하면 할 수는 있겠지만 너무 노잼이라 금세 실증이 나서 그만둔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기도 했다. 이런 나의 욕구와 타인(주로 아빠)의 욕구가 대립을 일으킬 때 내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서 내 안의 것들이 조금씩 고장 나기 시작했다.

고장 난 나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빠와의 갈등은 극에 달했고, 부모님은 나를 뒤늦게 사춘기를 맞이한, 철없는, 잘못 키운, 돌이킬 수 없게 된 자식으로 취급했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던 우리 집의 문제ㅡ외출 여부뿐만이 아니라 생활 전반에서 아빠 혼자 모든 것을 장악하려는 태도ㅡ를 이 시기에 모두 파악했고, 여과 없이 뱉어 부모님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부모님이 설계한 나의 진로에 대해 의심하고, 아무 거리낌 없이 엎을 준비를 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더 이상 '나'로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었다.

옆에서ㅡ자기가 보기엔 둘 다 똑같은ㅡ부녀를 지켜보던 엄마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던지 나를 혼자 살게 했다. 마침 가족들이 새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나 혼자 남아 1인 가구를 꾸려 나가기 시작한 이후로 나의 심신도 조금씩 안정되어갔다. 가끔씩 가족 식사 자리가 마련되었지만 데면데면하거나 또 어떨 때는 다투기도 하면서 적정거리가 유지되었다. 가족은 가끔씩 보는 게 관계 유지에 좋다는 말에 십분 동의했다.

혼자 사는 것은 처음에 굉장한 설렘을 주었다. 이 집에 오래 살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예산은 최대한 적게 투자했다. 다만 신경 쓴 것은 매 끼니와 청결 유지였다. 텃밭에서 수확한 작물을 집에 가져와서 요리해 먹었다. 웬만하면 시켜 먹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아침을 챙겨 먹었고, 제철 과일을 사 먹었다. 일주일에 한번 대청소를 했고, 물걸레 로봇청소기를 샀으며, 장마철 빨래를 위해 건조기를 구입했다.

코로나19 2년 차까지도 살만했다. 누구나 다 집에 있다는 사실이 위안을 주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태생적으로 밖으로 나가야 하는 사람답게 매우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사실도 이제 와서야 알아챈 것이지, 그때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후천적 집순이이기를 지속했고 이유 모를 짜증, 우울, 무기력감에 짓눌렸다. 밖으로 나가서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ㅡ이를 태면 배우기, 만나기, 여행 가기 등ㅡ생각했지만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집에 있었다.

핑계라는 것은 '내일 출근해야 하니까 피곤하면 안 돼', '너무 멀어서 왔다 갔다 하는 데만 시간을 다 써버리고 많이 놀지도 못할 거야', '(돈을 쓸 일도 없으면서) 돈을 아껴 놔야지', '나가 봤자 별로 재미없을 듯' 등을 말한다. 핑계가 많았다. 그러면서 이런 나와 내 바운더리 안에서 함께해 주길, 다른 사람에게 바랐다. 그곳은 나의 바운더리였던 것인데, 타인은 어색할 수밖에 없고 그 규칙에 순응해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나는 그렇게 해주기를 바랐다.

크게 세 가지 문제점이 도출된다. 첫째는 다른 사람의 욕구에 순응하느라 나의 욕구를 외면한 것, 둘째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내가 원하는 것으로 채우는 경험이 부족했던 것, 셋째는 타인에게서 구원을 바랐던 점이다. 되돌아보니 이제는 알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한다는 사실에 가려서 잠만 집에서 잤다는 사실을, 대학교 때는 집에서 잠조차 거의 잔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나는 내 시간을 밖에서 보낼 때 행복하다는 사실을.

물론 귀소본능도 강하다. 편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집에서 자는 잠을 소중하게 여기고, 집밥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휴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실제로 집에서 쉬었을 때 회복이 빠르다. 다만, 밖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했을 때 집에서의 시간도 무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부지런히 나가고 부지런히 배우고 부지런히 만나고 있다. 내 시간을 이렇게 쓸 때 나는 행복하다.

-홈스윗홈. 그 안에 부모님은 없어서 죄송해요. 근데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어요, 우린.

-이제 어쩌면 맞춰갈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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