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울렁임에 익숙해진 나날들이었다. 말을 줄이는 만큼, 약한 나를 약하다 말하지 못하고 강하다 거짓말하지도 않은 채 긴 휴가를 가져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꾸미지 못한 시간이었지만, 괴롭힐 필요가 없던 편안한 시간이었다. '젊음'이라는 단어, 보내지도 가지도 않았지만 나는 새파란 젊음의 방황과 패기를 조금 버리고 어울리지 않아 왔던 다른 감정에 정을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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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친구는 스물다섯이 두렵다고 했다. 듣다 보니 나도 두려워졌다. 재작년 그 친구와 나는 향 좋은 카페에서 '나이를 먹는 게 이렇게 좋은 건지 몰랐어'라며 너스레를 떨지 않았던가.
이미 그보다 앞선 스무 살의 여름, 꽤나 멋들어진 대학생으로 만나 서로의 사랑을 격려하게 된 여자였으며, 열아홉 살의 겨울, 알 수 없는 호기심에 젖은 수능 직후의 여고생으로 삶의 고비를 모두 넘겼다 여긴 성인이었고, 열다섯 살에는 집전화로 두세 시간을 꼴딱 넘겨 수다를 떠는 여중생이자 인생에 대해 진지한 탐구자들이었는데.
과거와 현재에 대한 분석력은 대단했으나 그뿐, 늘 미래에 대한 상상력은 부족하기만 했다. 머리를 맞대도, 늘 점치고 바라고 그리던 우리는 지금의 우리가 아니니까.
그래서 친구와 나는 스물넷이 지나갈 방도를 내어주는 덴 성토대회쯤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제 그저 '신세한탄'이나 거하게 해 보자고.
우리가 그날을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그간의 한가로웠던 마음을 최대한 연장하기 위함인 동시에, 그 모든 것을 제발 떠나보내고픈 배반적 이유에서인지 모른다.
스물다섯을 기다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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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시간의 마술은 나를 여러 번 감명시켰다. 울렁이던 나를 끌어안았던 스물네 살의 여유는 어떤 말미를 남기게 될까. 나는 결국 어떤 사람이 될까. 늘 그래왔듯이 정말 변한 듯한-정말 그대로의 나로 남겨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