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산불 당시 3월 21일에 산청에 처음으로 내려갔는데, 4개월이 지난 7월 22일 다시금 산청에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산불이 아닌 참담한 피해를 가지고 온 수해로 인해서이지요.
재난의 일상화라는 말이 어느때보다 더욱 와닿았습니다. 건조한 봄에는 산불로 인한 피해, 여름에는 호우로 인한 피해... 점차로 넓은 지역에 걸쳐 광역화되어가는 재난에, 얼마 전 전국에 걸친 폭염 특보 소식을 보면서 점차 전국 어느 곳도 재난으로부터 시공간적 예외가 없어지는구나 싶습니다.
동시에 구체적으로 재난 현장에서 보게 되는 '피해의 우연성'과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이재민들로부터 자주 듣게 되지만 - 한 뼘 차이로 산사태를 비껴나가는 집과 형태도 없이 사라진 터 사이의 가깝지만 생과 사가 오가는 엄청난 간극만큼이나 - 응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겹쳐지기도 합니다.
이번 역시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있고, 자연 재난이다보니 지난 산불과는 달리 지원의 양에 있어 현장에서는 정말 커다란 부족함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재난 직후 정신건강과 심리사회적 지원(MHPSS)의 측면에 있어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안전과 기본적인 욕구의 충족입니다. 더불어 중요한 것은 현장의 필요이기에 언제나처럼 현장의 필요를 들으며 이에 대한 대응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장에서 당장 가장 필요한 것은 더운 여름 부족한 일상생활용품과 복구를 위한 물품들(티셔츠, 편한 바지, 속옷, 수건 등)이었습니다. 이렇게 필요한 물품을 전달하며 현장에서 전체를 조정하는 관과 이재민 몇분들과는 관계를 형성해 갈 수 있었죠. 그 과정에서 듣게 된 몇몇 이재민 분들의 증언을 통해 역시나 이야기를 들어주며 함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지지가 된다는 심리적응급처치(PFA)의 키워드 하나를 떠올리게 됩니다.
이번 지원 활동에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와닿으며 뿌듯했던 실천은 바로 '돕는 이들에 대한 돕는 활동(스태프케어)'이었습니다. 이는 저 역시 지원하는 인력이기도 하고, 어느새 올해만 해도 제주항공기 참사, 영남 산불, 해외 분쟁 지역인 팔레스타인 그리고 이번 수해까지 쉼 없이 현장을 다니는 와중에 예외 없이 - 제가 소진 예방 및 대응 관련 심리사회지원 활동을 하는데 당연할 수 있지만 참 아이러니 하게도 말이죠. 소진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글을 통해 더 나누도록 할게요 - 찾아온 소진의 신호들을 지나가고 있다보니 더욱 그러한 듯 합니다.
스태프케어라는 것이, 현 단계에서 무언가 거창한 것이 아닌 지원하는 인력이 있음을 인지하며 현장에서의 필요에 따라 지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충분한 정보, 휴식 & 로테이션이라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겠지만, 우선은 이들의 존재에 대한 인지와 인정이 기본적으로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산청으로 내려가는 길에 이번 수해 이후 구호 활동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지역의 자원봉사센터와 소통하며 수색 인력, 식사 지원 인력과 같이 이 더운 날씨에 지원하는 이들에 대한 지원에 공백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부응하며 지원을 하였고, 진정으로 감사함을 표현해주시는 모습에 저희 역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재난 직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일 복구에 있어 가장 커다란 어려움은 날씨라고 여겨집니다. 최근에 닥친 수해, 여전히 맹위를 떨치며 이 변덕의 극단을 오기는 날씨의 사이클이 점차로 잠잠해지기를 바래보며, 피해를 입은 이재민 분들과 지역사회, 현장에서 활동하는 모든 분들에게 연결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