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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 Nov 19. 2021

폴란드에서 나무가 숲이 되기까지

우리 집과 옆집을 지나면 빈 공터가 있다. 몇 년 전 그 공간은 무엇인가를 짓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고 풀을 밀어 매끈하게 만들었었다. 지금 그곳은 숲이 되었다. 폴란드의 자연은 2년 만에 공터를 숲으로 만들어버린다. 집 마당에 심은 라즈베리는 1년 만에 사람 키를 훌쩍 넘어버렸다. 잔디도 마찬가지다. 한 달을 자르지 않으면 무릎까지 잔디와 잡초가 자라난다. 지난여름 이탈리아 남부를 갔다가 강한 햇빛에 올리브 나무 외에 다른 풀이 말라가는 것을 보았다. 이탈리아 도로변은 가는 곳마다 사막과 같은 황토색이지만 폴란드는 한여름에도 초록색이 넘실댄다. 도로변 돌 틈에서도 풀이 허리만큼 자라난다. 여름에도 비가 많이 오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무도 풀도 빨리 자란다.

작은 숲이 된 빈 공터

우리 아빠는 식물은 뭐든지 잘 키운다. 무릎 높이의 선인장이 2미터를 넘은 적도 있다. 이사 갈 때마다 그 선인장은 짐꾼들에게 흉기가 되곤 했다. 몇 년 전 심한 태풍이 몰아쳐 가로수들이 꺾이고 가지와 도로에 이파리가 이리저리 날아다닌 적이 있다. 나는 자연이 가차 없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정성스레 빚었다가 다시 파괴해버리는 괴팍한 예술가처럼 여겨졌다. '태풍이 왜 있는지 모르겠다' 비바람을 뚫고 회사에 가는 차 안에서 중얼거렸다. 나를 데려다주던 아빠는 '태풍이 있어야 식물이 잘 큰다'라고 했다. 아빠가 키우던 식물들이 한때 권태기처럼 자라지 않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이유를 몰랐는데 가지를 손으로 세차게 흔들고 난 후 다시 잘 자라게 되었단다. 물을 줄수록 식물 뿌리에 흙이 단단하게 엉켜 붙어 더 크게 자랄 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풍이 식물을 흔들어 줘야 흙에 공간이 생기고 다시 성장할 수 있다. 흙이 너무 단단하면 식물은 자라기 힘들다. 태풍의 이런 숨겨진 역할은 그동안 식물을 키워내는 것은 햇빛과 물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신선한 상식이었다.

폴란드도 바람이 세차다. 심할 때는 정원에  의자가 날아가기도 한다. 그런 바람이 식물을 키우고 숲을 키워낸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광야에 나가서 바람도 맞고 태풍도 맞고 비에 흠뻑 젖은 후에야    큰다. 사람에게는 새로운 분야를 배우는 ,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태풍이 되고, 도저히   없었던 일도 해보는 것이 바람이 된다. 그래서 나는 이번 주부터 수영을 배워보기로 했다. 글도 써보기로 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수시로 깨기로 결심했다. 나도    크기 위해서다. 어른도 키가 큰다. 어릴 때는 밥만 먹으면 크지만 어른은  먹고 밖에 나가 비바람과 태풍을 맞아야 큰다. 가지가    부러지더라도 바람에 흔들려보자고 마음먹었다. 성장기가 지난 어른은 오늘도 키가 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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