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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현 Nov 03. 2024

가사노동의 재발견-설거지

“나는 설거지가 그렇게 싫지는 않던데.”

“매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것도 하루에 몇 번씩, 싫지 않을 수가 있나.”

가까운 친구들의 모임에서 산만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집안일로 잠깐 말길이 들어섰을 때였다. 대체로 “요리는 해도 설거지는 재미없다.”는 의견에 공감하고 있을 때 내가 반응을 하자 자리에 있던 한 여자 후배가 한 말이다. 설거지 자체에 대한 얘기가 이와 함께 돌연 가사노동의 분담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로 전환돼 버렸다. 


모임에는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대체로 분위기는 ‘가사노동을 분담해야 한다.’는 정당성 주변에서 조성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습관인 가사노동의 편중된 성별 분업체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경우에는 대화가 종종 표현 자체보다는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추측하며 전개되기 마련이다. 나의 말은 의도와 상관없이 ‘왜 그것을 그렇게 싫어하느냐.'는 힐난 비슷하게 됐고 그 문제를 주로 제기해 온 여성의 입장을 후배는 대변한 구도가 됐다.

아무래도 상관은 없었다. 그 정도로 드잡이가 돼서 싸울 사이들은 아니었다. 웬만한 의견 차이에는 충분히 익숙할 만큼 오랜 대화의 역사를 가진 관계이기도 했다. 나 역시 편중돼 있는 현재의 가사노동은 더 많이 개선돼야 하고 하루빨리 공동 책임의 영역으로 재정립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설거지에 대해, 더구나 오랫동안 그다지 적극적으로 가사노동을 분담해 오지도 않은 처지에서, 이제 와서 ‘보람이 어쩌고, 의미가 어쩌고’ 얘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실은 약간 계면쩍기도 하다. ‘뭘 얼마나 했다고, 이제 와서...’

그래도 어떻게 하랴. 요즘 많은 양은 아니어도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설거지를 하면서 새삼스럽게 소소한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것에 대해 몇 마디 더 이어 보는 것이 야단맞을 일은 아닌 것 같아서 염치 불고하고 하려던 얘기를 다시 꺼내 본다. 


설거지는 혼자 하는 노동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공기와 기가 막힌 협업이 이루어지는 가사노동이 설거지이다. 노동에는 사람의 손이 들어가지만 완벽한 마무리는 공기가 담당을 한다. 

설거지는 많은 사람들이 극도로 기피하는 가사노동 중의 하나이다. 손가락과 손목 관절에 무리가 가고, 혹은 물에 오래 손을 담가 습진이 생길 수 있고, 등등 여러 가지 싫은 이유들이 제기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설거지를 꺼리는 진짜 속마음은 그 노동이 위치한 시간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식사라는 즐거운 목적이 달성된 직후 포만감을 느끼며 담소를 나누거나 해야 할 때 딱 설거지의 자리가 있는 것이다. 쉬고 여유를 갖고 싶을 때에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치명적인 문제이다. 이로 인해 설거지는 숙명적으로 즐길 수 없는 노동이 된 것이다. 

물론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설거지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연계가 끊어진 노동은, 더구나 단지 정리를 위한 노동은 미루거나 쌓일수록 더욱더 하기가 싫어진다. 적기를 놓친 노동은 이디에 끼워 넣어도 잘 맞지 않고, 마치 타고난 천덕꾸러기처럼 어울리는 자리를 찾기는 영원히 틀린 것이다. 의미 없이 단지 뒤치다꺼리만을 하게 되는 상황을 두고 ‘설거지를 한다.’고 하는 것은 이런 연유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도 설거지가 처음부터 즐겁다거나 달려들고 싶은 열정이 솟아오르는, 그런 종류의 노동은 아니다. 식구가 단출해 많은 양의 설거지감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손들고 나서서 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식구들과 떨어져 있을 때는 꼭 해야만 하는 일이니 나서고 말고 할 것도 없다. 함께 있을 때에도 뒷걸음을 칠 만큼 싫어하지는 않는다. 소매를 걷고 시작하는 것이 어렵다면 어려운 결단에 속하지, 그 이후는 슬슬 무난하게 넘어간다. 때로는 사소한 보람까지 느끼며 설거지를 마무리하게 된다. 

나는 기름기가 있는 그릇과 그렇지 않은 그릇을 일단 나눈다. 기름이 묻지 않은 그릇은 대체로 비누를 쓰지 않고 물설거지로 끝낸다. 수세미의 소재가 촘촘하고 품질이 좋아서 그렇게 해도 손가락으로 밀어 보면 뽀득뽀득 소리가 나게 잘 닦인다. 손가락 끝을 잡았다 놓았다 하는 그릇 표면의 밀당에 노동의 보람이 미세하게 스쳐 지나가곤 한다. 물론 몇 차례 물설거지를 한 그릇은 적당하게 한 번씩 비누질을 해서 닦아야 한다. 물비린내가 나기도 하고 반복적으로 물만 묻히면 물때가 끼어 그릇의 표면이 미끈거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기름이 묻은 그릇은 물로 어느 정도 씻어낸 후 비누 거품을 낸 수세미로 문질러 기름기를 녹여낸다. 비누 수세미가 지나가며 기름기를 걷어낸 자리는 그렇지 않은 곳과 경계가 분명하다. 그래서 기름 묻은 자리를 쥐고 있는 왼손과 비누범벅으로 그릇을 닦고 있는 오른손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왼손은 무겁게 미끈거리고 오른손은 미끄럽지만 경쾌하다. 비누질 후 물을 뿌려 비누기를 닦아내면 그릇은 상쾌하게 본모습을 되찾는다. 기름 묻은 설거지감들이 거품에서 빠져나올 즈음 나는 또 한 번 살갗에 스치는 미풍처럼 옅은 노동의 성과를 느끼게 된다. 기름과 양념 범벅으로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던 식기들이 혼돈에서 벗어나 말쑥하게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흥건하게 젖은 그릇들은 물기를 털어내고 그릇 건조대에 적당한 간격과 모양으로 늘어놓는다. 식기들을 뒤집어 놓아야 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수칙이다. 물이 고여 있지 않아야 건조가 잘 된다. 뒤집는 것도 바닥에 붙여 놓는 것보다는 경사지게 비스듬히 뉘어 걸치는 것이 좋다. 그릇 바닥마다 만들어 놓은 테두리 받침이 물을 가두기 때문이다. 나는 최대한 물이 고이지 않게 흘려보내고 그릇과 그릇 사이에 빈 공간을 확보한다. 

간혹 설거지의 양이 많을 때는 그릇 건조대 안이 꽉 찬다. 더 나아가 닦인 식기들이 서로 다른 각도로 서로를 지지하며 건조대를 넘어 제법 수북이 쌓이기도 한다. 벽돌 쌓기보다 더 고난도로 넘어지지 않게 사이사이를 받쳐가며 기술을 부려야 할 때도 있다. 그것은 간혹 불안한 축조물이 되기도 하지만 그릇들은 아주 작은 공간만이라도 확보해 지지해 놓으면 흔들림 없이 그 자리에 붙어 있다. 건조대에 정교하게 쌓인 식기더미는 얼핏 부엌의 한 편에 연출된 하나의 작품이 된다. 항상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 변화무쌍한 연작이 된다. 


이제 나의 노동은 끝났고 공기와 자리를 바꿀 때가 됐다. 나의 설거지 양은 대체로 많지 않아 상관이 없지만 간혹 그릇이 많을 때에도 걱정할 것은 없다. 공기는 엄청난 동원력을 보유하고 있다. 아마 부엌의 절반만큼 그릇이 쌓여 있다고 해도 공기의 일에는 차질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공기에게 바통을 넘겨준 나는 휴식의 자리로 돌아온다. 부엌에서 이후 벌어질 일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공기에게는 충분한 시간을 주는 편이다. 보통 저녁에 설거지를 하고 아침에 일어나 협업의 결과를 확인하게 된다. 서둘러야 하는 아침에는 낮 시간을 모두 보내고 저녁이 돼서야 공기의 완성작을 보게 된다. 

공기는 빈틈을 허용하지 않고 한 치의 실수도 하는 법이 없다. 모든 식기의 표면을 완벽하게 말리고 아주 좁은 틈 속의 습기도 완전하게 제거한다. 바짝 마른 그릇의 표면은 아무 마찰도 없이 깨끗하고 부드럽게 미끄러진다. 숨기듯이 속으로 쌓아 놓은 그릇도 예외가 아니다. 평면이나 곡면이나 할 것 없이, 유리는 유리대로 스테인리스는 스테인리스대로 이물질이 전혀 없는 본래의 모습 그대로 드러나 있다. 

오차가 없는 공기는 그래서 아주 까다롭기도 하다. 조금이라도 고여 있는 물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외면한다. 그릇을 쌓다 보면 간혹 바닥 받침에 갇힌 물을 충분히 털어내지 못할 때가 있다. 나는 몰랐지만 나중에 공기가 행동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이런 그릇은 다시 털고 얼마를 더 두어야 한다. 그러면 공기는 토 하나 달지 않고 차질 없이 일을 마무리한다. 


마침내 설거지가 완료됐다. 건조대에 쌓여 있는 말끔한 완성품들은 노동 후의 포만감을 살포시 안겨준다. 마음이 넉넉하고 풍성해진다. 정리가 마무리됐다는 후련함과 사용할 수 있는 도구를 모두 되찾았다는 성취감을 만끽하게 된다. 지금도 공기가 완성해 놓은 건조대의 작품을 보고 있다. 공기처럼 손발이 착착 맞는 벗이 어디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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