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 스마트폰 <– 세상
일요일 밤늦은 시간, 하필 해결 방법을 찾기 어려운 때에 그 일이 벌어졌다. 더구나 나는 다음 날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이런 시간에 나와 세상을 잇는 유일한 중개 장치, 스마트 폰이 사라진 것이다.
친구의 집에 나의 자동차를 맡기고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밤늦게 자동차를 친구의 집 앞으로 옮겨 놓는 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친구는 그리 멀지 않으니 데려다주겠다며 나를 자신의 자동차에 태우고 우리 집으로 향했다. 집 앞에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집에 들어오면 하루 동안 사용한 일상용품을 호주머니에서 꺼내는 순서가 있다. 전화, 시계, 지갑, 자동차 열쇠 등속의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야 비로소 집에 도착한 게 된다. 자동차 열쇠는 친구에게 맡겨 두었으니까 건너뛰고... 휴대폰이 들어 있어야 할 주머니를 만지는 순간,
‘아뿔싸!’
심각한 사태가 벌어졌음을 깨닫게 됐다. 외투의 오른쪽 큰 주머니에 들어 있어야 할 전화가 없는 것이다. 손이 빨라지고 호주머니의 여기저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소용없는 짓이라고 나의 이성이 먼저 판단했지만 그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외투여서 그런지 호주머니가 많기도 참 많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찾고 호주머니를 뒤집어 보아도 나의 스마트폰은 온데간데없었다. 나의 몸에 붙어 있지 않았다.
‘이게 어디 갔지?’,
‘어떻게 찾아야 하지?’
‘내일 새벽에 가야 하는데!’
온통 당황스럽고 마음이 급해졌다. 쿵쾅거리는 가슴과는 달리 머릿속의 촉수는 마치 레코드판을 돌리는 전축의 소리 바늘처럼 기억을 촘촘하게 긁으며 지금까지 나의 동선을 되돌리기 시작했다. 당황했기 때문인지 바늘이 자꾸 튀면서 기억을 엉키게 만들곤 했다. 몇 번을 다시 돌린 끝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확률이 높은 장소를 찾았다. 바로 친구 집 앞에 맡겨 놓은 나의 자동차 안이었다.
친구의 집에 가는 동안 전화로 내비게이션을 보았는데 그다음 자동차에서 내린 후부터 전화에 대한 기억이 끊어져 있었다. 친구가 나를 태워준다고 했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었다. 친구의 집에 도착한 후 자동차 안에 전화를 놓고 그대로 내려서 집까지 온 것이 거의 분명했다.
일단 한숨을 놓았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혹시나 해서 바로 뛰어 나갔다. 아직 친구가 집 앞에 있을 리 없었다. 친구는 나와 여유 있게 헤어지고도 이미 집 가까이 갔을 것이다. 어처구니없을 만큼 허둥대는 내 모습이 스스로 허탈했다.
‘연락을 해야겠다.’
‘그런데...’
‘친구의 전화번호는 나의 전화기 안에 있다!’
자주 통화를 하는 친구이지만, 그와의 연결 코드는 오로지 전화에만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그의 전화번호를 외울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나의 스마트폰이 이름만 대면 편리하게 연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멀지 않은 곳에 있고 이름만 부르면 뛰어 올 수 있을 것 같았던 친구인데, 갑자기 연락할 길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
그와 내가 같이 알고 있는 많은 친구들이 떠올랐다. 송 모, 서 모, 장 모, 신 모... 끝도 없이 이름이 이어졌다. 아무리 길게 나열을 해도 그에게 연락할 묘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이 나의 휴대폰 안에 있었다. 이들 중 아무에게도 내 처지를 알릴 방법이 없었다.
모두가 두절이다. 순간 나는 홀로 세상 바깥으로 툭 떨어졌다.
깜깜한 집 앞의 풍경, 아파트 앞 동의 불 켜진 집이 마치 영화 속 화면의 우주 정거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둠으로 가득 찬 진공을 건너, 시야에 들어오는 장면이 현실일까. 나와 저 불빛 사이의 어둠은 연결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단층이 아닐까. 일요일 늦은 밤이어서 다니는 사람조차 없었다.
내가 다시 세상으로 들어가려면 직접 친구를 찾아가는 길 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다시 벽에 부딪쳤다. 그 친구의 집 주소도 전화에 적혀 있다. 전화 없이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이 전화로 모이고 거기서 다시 시작하는 것 같았다. 나의 전화는 마치 영화 메트릭스에서 등장인물의 뒤통수에 꽂은 전선처럼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나는 아직 기억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전화의 화면을 생각했다. 조금 전에 그 친구의 집으로 갈 때 보았던 전화의 내비게이션 화면을 떠올렸다. 아파트의 동호수를 연상했다. 담겨 있던 기억에서 작은 조각이라도 떨어질까 봐 머리를 흔들지도 못하고 조심조심 되짚었다. 00 아파트 000동 000호. 희미하게 남은 전화 화면의 잔상이 세상과 나를 다시 연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암호가 됐다.
스마트폰은 나의 세상에서 사용하는 편리한 부속품 중 하나일 뿐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세상을 담고, 쥐고 있는 것은 스마트폰이었다. 나는 나의 세상과 교신하기 위해 그것에 매달려 있는 형국이었다.
일요일 늦은 밤에 택시가 있을까, 습관처럼 호출을 하려 했지만 이 역시 전화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택시의 세상조차 연결통로는 전화이다. 나는 무작정 밖으로 나가 지나가는 택시를 잡으려 시도했다. 호출 예약이 일반화되면서 무작정 택시를 잡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급한 마음에 얼마를 헤맸을까, 어렵사리 택시를 잡았다. 다행히 전화 없이도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가 아직은 남아 있었다. 그렇지만 불안정하다. 메모지를 지니고 있지 않아서 기억한 주소를 잊지 않기 위해 몇 번을 되뇌었는지 모른다. 메모조차 대체로 전화를 이용했고 대부분의 메모는 전화에 기록돼 있었다.
택시는 나에게 세상으로 돌아가는 중간 정도의 거점으로 여겨졌다. 여하히 친구 집에 도착해서 전화를 찾으면 나는 다시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 말이다. 택시 기사 아저씨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소한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는 세상 속에 있는 사람이고 나는 세상 밖에서 그를 접촉하고 있는 존재일 뿐이었다. 그가 아는지 모르는지 택시 안에는 세상의 안팎이 공존하고 있었다.
걱정을 한가득 안고 친구의 집 앞에 도착했다. 이미 저녁 11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나는 경비실의 아저씨에게 간청을 해야 했다. 전화를 놓고 왔다며 그의 동 호수를 말하고 인터폰을 부탁했다. 그는 나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사정하는 것 밖에는 내가 나를 입증할 방법이 없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전화는 나의 신원증명서가 돼 있었다.
부탁을 하는 나도, 전화를 거는 그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경비원 아저씨가 거절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나의 친구가 전화받기만을 기다렸다. 전화의 울림을 상상으로 세며 횟수가 거듭될 때마다 나의 가슴은 철렁철렁 내려앉았다. 경비 아저씨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세상의 입구까지 어렵사리 간 나는 다시 먼 세상 밖으로 매몰차게 내쳐졌다.
집 주소가 틀린 것은 아닐까, 맞아도 전화를 받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마지막 기대를 그렇게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내가 직접 가서 문을 두드려도 되겠느냐고 애원하듯 물었다.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안돼 보였는지 그는 그렇게 해보라며 아파트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나는 친구의 주소라고 믿는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몇 번의 호출신호가 울리는 동안 나의 가슴은 땅으로, 지하로 한 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일요일 밤 야심한 시각에 무슨 일이 벌어져도 벌어질 상황이었다. 그러기를 몇 번, “웬일이야?”라는 친구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절망적으로 떨어지던 마음이 순식간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이걸 놓고 다니면 어떻게 하냐.”며 아무렇지도 않게 나의 차 안에서 스마트폰을 찾아 주었다. 핀잔 한 마디로 가볍게 얘기할 수 있는 사소한 장치에 나의 온 세상이 걸려 있었다.
전화를 받아 든 순간 나는 어렸을 적 만화에서 본 여의주를 얻은 기분이었다. 진공 상태에 떠 있던 나는 스마트 폰을 받는 순간 감전되듯이 나의 세상 문을 열고 단단한 대지에 안착했다.
세상은 따뜻했고 나에게도, 누구에게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심각한 상실은 사라졌고 나는 다시 사소해졌다. 내일 아침 비행기를 놓치지 않게 됐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다시 스마트폰을 단단히 쥐었다. 차가운 유리판에 나의 생존을 외주 준 채 불안한 동거를 당연하고 익숙하게 수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