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회 조류의 변화나 새로운 기술에 빠르게 적응하는 편이 못된다. 얼리 어댑터이기는커녕 버티다 버티다 어쩔 수 없이 따라간다고 해야 맞는 말일 것이다.
쿠팡의 배달에 적응하는 과정도 그랬다. 온갖 곳에서 ‘쿠팡 쿠팡’ 한 것이 벌써 몇 년인가. 내가 쿠팡을 이용한 것은 불과 1년 남짓 됐고 와우 멤버십에 가입한 것은 그보다도 더 짧다. 쿠팡을 이용하지 않고도 물건을 구입할 수 있을 만큼 한가한 생활을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항상 분 초를 다투며 지내는 것은 아니니 그렇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나의 생활이 바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처리해야 할 일이 늘 몇 가지씩 대기하고 있어서 어느 것을 먼저 해야 할지 순서를 잡아가며 생활한다.
이런 상황에 쿠팡이 들어오니 그렇게 편리한 것이 없었다. 쿠팡이 유통을 장악하게 된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대단치 않은 소비생활이지만 늦바람은 무서웠다. 가위도 쿠팡, 양말도 쿠팡, 비누도 쿠팡, 없는 것이 없는 쿠팡 사이트는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나의 자동판매기가 됐다. 쿠팡의 노동 환경에 대한 뉴스를 볼 때는 나도 일조하는 것 같아 마음이 매우 불편했지만 생활의 편리가 그것을 덮었다. 퇴근하는 길에 집 앞 쿠팡 봉지를 들고 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럽게 됐다.
그러던 내가 얼마 전에 이른바 ‘탈팡’을 했다. 쿠팡이 아직 탈팡의 복잡한 장치를 풀기 전이었으니 나 같은 기술 부적응자에게는 매우 어려운 과정이었다. 소액이지만 쿠페이에 충전돼 있던 돈까지 모두 환불받았다. 그 편리한 자동판매기를 끊었으니 불편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대신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퇴근 후 늦은 시간에 집 근처의 소매점에 산책 겸 나가곤 한다. 대부분의 소매점들이 생각보다 늦게까지 문을 열고 있었다. 때로는 다른 온라인 소매상을 이용하기도 한다. 얼마간 지내보니 ‘탈팡’의 여파가 다른 일에 지장을 주고 일상을 흔들 만큼 심각한 것 같지는 않다.
‘탈팡’을 한 번에 결정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쿠팡의 대응에 무책임하다는 생각과 함께 불쾌감 정도를 느꼈다. 그런데 쿠팡의 대응은 점점 궤도를 벗어났다. 실제 주인이 미국에 있으면서 귀국하지 않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 쿠팡의 대응은 점입가경이었다. 쿠팡 문제가 한미통상 문제로까지 거론되는 것은 매우 기이한 일이었다. 기업의 명백한 실책에 대해 미국의 정치인들이 차별 운운하며 다른 나라에 엄포를 놓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그들에게 한국의 소비자는 보호할 가치가 없는 존재인 모양이었다.
갑작스럽게 바뀐 외국인 대표가 국회에서 보인 행태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의 태도는 아니었다. 심각한 청문의 자리를 우스꽝스러운 상황으로 끌고 가는 것은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선택하기 어려운 전략이다. 쿠팡에게는 한국의 소비자들이 '탈퇴하지 못할 인질'로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에는 쿠팡보다 훨씬 더 큰 기업이 많다. 그들 역시 때로는 사회적 문제로 청문의 자리에 서기도 했다. 그들도 곤란한 상황을 회피하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쿠팡과 같이 막무가내로 규제기관과 소비자를 무시한 기업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와, 정말 기가 막히고 대단하다. 어떻게 저런 기업이 있을까?’ 상상을 초월하는 쿠팡의 대응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정부와 정치권은 점점 더 구체적으로 감독 관리기능을 가동하겠다고 하지만 쿠팡의 기세도 쉽게 꺾일 것 같지 않다.
도대체 쿠팡이 저렇게 강경할 수 있는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미국 기업이어서? 미국이 나서서 보호해 줄 수 있으니까?
실마리는 사태의 초기에 미국에서 나왔다. 투자은행인 JP 모건이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이용자의 이탈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쿠팡이 만들어낸 잠금효과(Lock-in)가 소비자들을 강하게 붙잡고 있다는 뜻이다. 이 전망은 분석이 아니라 희망사항일 것이란 평가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현실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초기에 나타났던 소비자들의 반응은 시간이 가면서 잠잠해졌다. 정부와 정치권의 격렬한 대응이 오히려 생경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가장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소비자들은 정작 싸움을 지켜보는 제삼자처럼 차분하다. 쿠팡이 확보하고 있는 잠금효과가 정말 그만큼 강력한 것일까?
이쯤에서 쿠팡에 대한 나의 느낌은 ‘대단하다’에서 ‘무섭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소비자에게 대체 불가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잠금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은 강력한 지배적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적 관심사가 된 사태에 저 정도로 막무가내인 기업이 앞으로도 그 권력을 유지한다면 하지 못할 행동이 있을까?
더구나 쿠팡의 전략은 한국 유통·물류 시장에서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 이의 결과는 정보유출과 같은 일회성 사고와는 차원이 다르다. 일상적으로 소비자들이 놓이게 될 구조적 조건이 되는 것이다. ‘잠금’은 강화되고 선택지는 줄어든다. 독점적 지위는 가격뿐 아니라 조건과 규칙을 정하는 힘을 의미한다. 기업에게 이보다 더 매력적인 권력은 없다.
그렇다면 소비자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금효과를 믿고 쿠팡이 행동하고 있다면 그것은 소비자가 쿠팡의 잠금장치에 얌전히 들어앉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반대로 소비자가 잠금장치를 풀어 버린다면 그 순간 쿠팡의 믿음과 배짱은 사라지는 것이다. 쿠팡을 견제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주체는 정부도 정치권도 아닌 소비자이다.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업을 사회적 규칙 안에 있도록 길들일 수 있는 세력은 오직 소비자이다. 소비자가 외면한 기업은 어디에도 호소할 수 없다. 한미 통상 분쟁을 일으킬 수도 없다. 미국의 정치인들이 쿠팡을 위해서 한국의 소비자들을 야단칠 수는 없다.
소비자로서 느끼기에 아직은 대안이 없는 것 같지 않다. 쿠팡의 강력한 지배력에 많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아직 경쟁자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진행된 것과 같은 추세로 쿠팡이 투자를 늘리고 지배력을 확대한다면 머지않아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다음에는 정말 선택이 없어진다. 잠금 정도가 아니라 한국의 유통은 대안 없는 쿠팡의 세상이 된다. 이러한 상황은 쿠팡이 아니라 어느 기업이 주도한다고 해도 소비자에게는 불행한 일이다. 쿠팡이라면 더욱 심각한 상황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요즈음 쿠팡의 행태를 보면서 들었다.
쿠팡이 한국의 유통을 좌우하는 미래가 나는 매우 불안하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모욕적인 장면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최근 쿠팡이 내놓은 소비자 보상 방안을 보며 다시 생각이 강해졌다. 5만 원이라는 액수보다도 방식이 문제였다. ‘구매 이용권’이라는 이메일이 왔다. 탈팡한 소비자는 다시 가입해야 하고, 보상은 현금이 아니라 쿠팡 생태계 안에서만 쓰는 구매이용권이었다.
‘사과를 이렇게 하는 기업도 있구나.’
그나마 주목도가 떨어지는 쿠팡 트래블(2만 원)이나 알럭스(2만 원) 같은 신사업에 이용권의 대부분이 배정됐다. 나는 이것이 사과라기보다 재잠금에 가깝다고 느꼈다. “책임을 통감하는 마음으로” 신사업 마케팅을 하며 다시 묶어두는 방식인 것이다. 이런 설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쿠팡의 힘이 어디까지 왔는지 잘 보여 준다. 쿠팡은 정말 두려운 기업이다.
탈팡의 필요성에 다시금 확신을 갖게 됐다. 혹시나 하고 아직까지 한 줄 걸치고 있던 쿠팡의 앱마저 휴대폰에서 깨끗하게 삭제해 버렸다. 허전했지만 그뿐이었다. 쿠팡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소비자밖에 없다. 지금 소비자가 움직이지 않으면 나중에는 쿠팡이 원하는 대로 소비자가 움직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