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순서가 틀렸다
가장 걱정스러운 정책 방향이 결국 현실화되려는 모양이다. 정부와 여당은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해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허용하겠다고 한다. 쿠팡이 압도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영역에 경쟁자를 투입해 경쟁 시장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경쟁 촉진은 독점시장에 대한 가장 교과서적이고 친시장적인 처방이다. 더 많은 사업자가 뛰어들고, 더 많이 투자하고,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쪽이 소비자를 확보한다. 정부가 개입해 가격이나 영업을 직접 통제하는 방식보다 논란도 적다. 이론적으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정답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논리는 지나치게 단선적이다. 경쟁과 효율성의 관계만을 전제할 뿐, 시장의 구조와 산업의 특수성, 그리고 사회가 감당해야 할 비용은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현실의 시장은 교과서 속 진공관이 아니다. 정책의 역할은 이론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적, 사회적 조건과 조화시키는 데 있다.
알려진 내용으로 보면 이번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단기적으로 새벽배송의 경쟁을 활성화할 가능성이 높다. 신규 참여자가 등장하면 소비자의 편익은 당분간 늘어날 것이다. 가격은 내려가고 서비스는 더 빨라질 것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결과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 정책은 소상공인과 자영업, 그리고 새벽배송 노동의 비용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개정에 앞서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한다고 하지만 정책의 무게 중심은 이미 새벽배송의 확대에 놓여 있다. 대형 유통의 영업시간을 제한해 온 이유는 지역 상권과 자영업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사회적 논란을 감수하면서도 그 규칙을 유지해 온 배경에는 분명한 정책적 판단이 있었다. 새벽배송이 전면 확대되면 이 보호 장치는 사실상 무력화된다. 소상공인의 부담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지원책 몇 가지로 시장의 구조적 악화에 대응하기는 어렵다.
노동 문제도 마찬가지다. 새벽배송은 누군가의 야간노동 위에서 작동한다. 수면 부족과 건강 악화, 안전사고 위험은 이미 반복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경쟁이 붙으면 서비스는 더 빨라지고 물량은 더 늘어난다. 그 속도를 떠받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비용을 낮추기 위한 경쟁은 노동 강도를 높이고 위험을 외주화 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기 쉽다. 이런 상황을 두고 경쟁 활성화의 목적이 달성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근본적인 문제는 산업 구조이다. 유통·물류는 오래전부터 네트워크 산업으로 분류되어 왔다. 신기술이 더해지면서 규모의 경제와 밀도의 경제, 네트워크 효과, 데이터 축적 효과는 더욱 강해졌다. 이런 산업에서는 많이 처리하는 사업자가 압도적으로 유리해진다. 자연스럽게 시장은 소수 사업자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는 한 번 형성된 플랫폼에 묶이는 잠금효과(Lock-in)에 빠지게 된다. 최근 5-6년 사이 진행된 쿠팡의 성장사가 네트워크 산업의 집중 과정을 무엇보다 잘 말해 준다.
따라서 경쟁자를 몇 명 더 투입한다고 해서 시장이 고르게 분산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단기적인 출혈 경쟁을 거친 뒤 다시 소수 사업자 중심으로 재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그 과정에서 소상공인과 노동자가 먼저 소모되고 이후 남는 것은 더 강한 지배력이다. 상황이 악화됐을 때 종종 등장하는 상생 구호나 사회적 협약으로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과도한 희망이다.
그나마 효과를 기대했던 소비자의 편익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독점적 구조가 굳어지면 소비자의 편익 역시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가격과 규칙의 결정권은 다시 지배 사업자에게 돌아간다. 쿠팡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구조는 어떤 기업이 주도하든, 어떤 경제에서든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유통법 개정안의 내용은, 확산되는 배달노동과 새벽배송에서 우리 사회가 어떤 경쟁 규칙을 만드느냐에 대한 원칙과 방향 설정의 의미를 갖는다. 더불어 기존에 갈등하면서도 꾸준히 논의해 왔던, 소상공인의 생존 영역을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를 다시금 점검하는 사안이다. 그러나 정부의 개정 취지가 이러한 구조적 의미와 파장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진흙탕 속에서 살인적인 경쟁을 벌이는 경쟁시장도 있고, 경쟁자와 다양한 참여자들 사이에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면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도 있다. 경쟁을 촉진해서 시장경제의 장점을 얻을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품위 있는 경쟁시장을 위해 규칙과 범위를 만드는 것이 정부이고, 그 수단이 정책이고 입법이다. 개정안의 방향에 따라서 우리는 바람직한 경로를 찾기 위해 아주 먼 길을 돌아가야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고 정책을 추진할 수는 없지만 예상 가능한 위험은 최소화해야 한다. 실패를 하더라도 덜 치명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지금의 개정안은 그 반대에 가깝다. 단기적 소비자 편익을 위해 장기적 비용을 키우는 구조이다.
더구나 우리는 이른바 쿠팡 사태를 계기로, 늦었지만 비로소 새벽배송의 부정적 외부효과에 대해 사회적 비용을 어떻게 분담할지, 대처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야간노동에 대한 총량규제, 연속근무 제한, 휴식권 강화와 같이 정작 중요한 논의는 길을 잃었다.
이를 실행하는 것이 꼭 시간이 오래 걸릴 일도 아니다. 이러한 내용은 해외의 많은 선진시장에서 이미 기본 원칙에 속하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시장의 정비이다. 그런데 정부는 규칙을 논의하는 와중에 시장부터 더 키우겠다고 나서고 있다.
경쟁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규칙 없는 경쟁은 시장을 황폐화하고 결국 더 강한 독점을 낳을 뿐이다. 설령 새벽배송을 활짝 열어젖힌다고 해도 반드시 먼저 해야 할 것들이 있다. 순서를 거꾸로 세운 정책은 대개 실패한다. 같은 오류를 되풀이할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