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하면서
며칠 전에 ‘라쿠카라차’라는 이름을 가진 보드게임을 했다. 초등학교 돌봄 교실 1학년들이 대상이었다. 라쿠카라차는(바퀴벌레라는 스페인어) 보드게임 이름이 말하듯이 바퀴벌레 모양을 한 기계로 게임을 한다. 이 바퀴벌레는 5cm 정도의 크기로 건전지가 들어 있고 스위치를 켜면 움직인다.
게임하는 사람은 요리사가 된다. 식기도구를 이용하여 주방에 있는 바퀴벌레를 유인해 함정에 잘 빠지도록 해야 한다. 바퀴벌레는 미로인 게임판 사이를 돌아다니다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게임 참가자들은 순서대로 게임을 진행한다. 차례가 된 참가자는 주사위를 굴려 나온 식기도구의 방향을 바꿔 자신의 함정으로 바퀴벌레가 잘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바퀴벌레가 함정으로 들어가면 바퀴벌레 토큰을 받고 3개가 모여지면 승리한다.
자신의 함정을 정하고 게임을 시작한다. 아이들은 기대에 찬 얼굴로 바퀴벌레가 들어가도록 미로를 바꾼다. 바퀴벌레는 그런 아이들의 바람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들어갈 것 같다가 그대로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들어올 것 같은데 잘 들어오지 않은, 결국 말을 잘 듣지 않은 바퀴벌레가 자신의 함정으로 들어오면 아이는 환호성을 지른다. 세상을 다 가진 듯하다.
모두 게임을 재밌게 하고 있는데 온이의 표정이 좋지 않다.
“한 번도 집으로 들어오지 않아요.”
온이는 바퀴벌레가 한 번도 자신의 함정으로 들어오지 않는다고 풀 죽은 목소리고 말을 했다. 난 온이의 모둠 앞에서 게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바퀴벌레는 절대 온이네 함정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함정으로 가는 길이 막혀 있는데 어떻게 갈 수 있겠는가?
“온아. 네 집으로 가는 길이 막혀 있잖아요. 열어야지요”
이런 내 말에 온이가 대뜸 말한다.
“어차피 안 들어와요!”
온이는 게임에서 질 것 같으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래도 열어둬야 한다고 했다. 결국 바퀴벌레가 잘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었다. 바퀴벌레가 온이네 함정 쪽으로 간다. 기대에 부푼 온이의 기분을 약 올리듯이 들어갈 듯하다가 그냥 빙 돌아 지나쳐 간다. 다른 친구 집에 들어가고 마는 바퀴벌레.
“그것 봐요, 어차피 안 들어오잖아요!”
온이의 목소리를 더 풀이 죽었고, 이번에는 실망에 불만을 더했다.
미로 사이를 돌아다니는 것은 건전지를 넣어서 움직이는 바퀴벌레 모양을 한 작은 기계일 뿐이다. 이 바퀴벌레가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특별히 그 사람 함정에만 잘 들어갈 리가 없다. 지켜보면 똑같이 다른 함정도 여러 번 그냥 지나친다. 굴러가는 데로 가는 공이라면 살짝 기울어서 그렇다고나 하겠다. 하지만 이 바퀴벌레는 건전지가 들어 있어, 갈 길을 찾아 움직인다. 어느 쪽으로 가는 것은 바퀴벌레 마음인 것이다. 빠르기도 하다. 금방 자신의 함정 쪽으로 오는 것 같아 문을 열어주려고 하면 저기만큼 가 있다. 그러니 미리 함정으로 가는 길이 열려만 있다면 언젠가는 들어갈 수도 있다.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닫혀 있다면 절대 들어갈 리가 없으니 1퍼센트의 가능성에 투자를 해야 할 일이다.
온이는 게임하면서, 어차피, 안 들어온다는 말을 자주 했다. 결국, 모둠에 있는 친구들이 다 집에 가서 게임을 그만둬야 할 때까지 한 번도 바퀴벌레 칩을 갖지 못했다. 내가 다른 모둠으로 옮겨서 하라고 했더니 절대 안 한단다.
"어차피 안 들올 거예요."
온이는 여전히 이렇게 말을 한다. 라쿠카라차 보드게임에서 바퀴벌레는 참 냉정했다. 여러 번 온이네 함정 앞을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다른 친구 함정도 여러 번 지나쳤다. 온이는 이런 상황에 실망하고 다시는 게임을 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다른 아이들은 그냥 묵묵히 자신의 차례 때 함정으로 가는 길을 끊임없이 열었다. 그래야 바퀴벌레가 들어갈 수 있었다. 하기 싫다는 온기를 설득해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다시 게임을 했다.
어차피 안 들올 거라고 말하는 온이의 말을 들으면 바퀴벌레가 눈이 달려 일부러 온이 함정으로만 안 들어가는 줄 알겠다. 난 온이의 생각을 바꿔 주고 싶었다. 어차피 안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빨리, 빨리 열어줘. 바퀴벌레가 그리 간다.” 이젠 내 마음이 더 바쁘다. 온이는 다시 그런다.
“어차피 안 들어와요!”
그때 다른 아이 함정도 그냥 지나쳤다. 그 아이가 말을 했다.
“그냥 이쪽으로 갈 때도 많아요.”
이렇게 말하며 그 친구는 주사위를 굴렸다. 온이네 함정으로 가는 길을 나와 함께 열심히 열었건만, 바퀴벌레는 오다가 방향을 돌려 다른 친구의 집으로 들어갔다. 바퀴벌레가 내 명령대로 움직인다면 온이한테 가라고 하고 싶었다. 마지막 게임. 수업시간은 끝나가는 데 바퀴벌레는 결국 온이 함정을 지나치고 다른 친구네로 들어갔다.
“그것 봐요 안 들어오잖아요.!!!”
온이의 말은 원망과 실망. 그리고 약간의 분노도 섞인 것 같았다.
그 순간이었다. 내 입에서 말이 툭 튀어나왔다.
“어떡해, 바퀴벌레가 온이 소원을 들어줬네!”
온이의 두 눈이 똥그래져서 무슨 말인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눈도 움직이지 않고.
“네가 자꾸 안 들어올 거야, 안 들어올 거야라고 하니까, 바퀴벌레는 온이가 함정으로 들어오는 게 싫은가 보다고 생각해서 네 소원대로 네 함정으로 안 들어오는 거야. “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온이 표정은 진지하다.
“그래서, 네 소원이라고 안 들어갔을 수도 있어.”
그랬더니 옆에 있던 아이가 말한다.
“맞아, 나도 아까 계속 들어와라, 들어와라, 했더니 집으로 들어왔어.”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어 아이의 말에 웃음이 났지만 나도 맞장구를 쳐줬다.
“그렇지? 바퀴벌레가 송이의 소원을 들어줬네. “
온이의 표정은 그런가? 하는 표정이다.
“온아.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해, 이건 그냥 게임이고 바퀴벌레가 들어가지 않으면 게임에서 그냥 지는 것뿐이야. 졌다고 큰일 날일도 아니고 그냥 속상할 뿐이지. 그러니,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해. 들어와라. 들어와라라고. 알았지? “
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이 맞는 것 같아서 끄덕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표정은 매우 진지했다.
.
“나는 맨날 져!”
‘내가 그렇지 뭐! “
“어차피 지고 있는데”
게임을 하다 보면 자주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을 본다. 8번 승리하고 이제 두 번 패배했는데 ‘나는 맨날 져’라고 말씀하신 어르신도 있었다. 어른들은 살아온 인생이니 그런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어린이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사는 건 슬픈 일이다.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 없지만 내가 하는 일은 항상 실패한다고 생각하고 살까 봐 걱정이다. 된다 된다 하면 된다고 한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알겠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어떤 일을 하면 큰 실패에도 하나의 과정으로 본다. 안 될 것 같은데 하고 시작한 일은 작은 실패에도 거봐 그럴 줄 알았다가 된다. 살아보니 포기하지 않고 가는 사람이 이겼다.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사람이 이겼다.
하루 더 라쿠카라차 게임을 진행했다. 그날 온이는 여전히 함정으로 바퀴벌레를 자주 유인하지는 못했지만 어차리 안 들올 것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옆에서 지켜보니 몃 번 들어오기도 했다. 이 게임을 지켜보면 바퀴벌레가 참 어이없게 들어가기도 하고 몇 번을 빙빙 돌고, 벽에 가록 막혀 두두두 그 자리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기도 한다. 들어갈 것처럼 직진으로 내 함정을 향해 오다가도 끝에서 방향을 틀어 빙 돌아가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들어오는 문을 닫아걸어두면 절대 들어오지 못하지만 이렇게 열어놓으면 언젠가는 어이없게 들어올 수도 없다. 뭐가? 바퀴벌레가. 아니면 운이나 복일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