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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경아 Nov 23. 2023

내가 몇 번 더 하면 너를 이길 수 있을 거야.

  똑같은 좌절 앞에서 사람들은 다른 행동을 보입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저는 보드게임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보드게임 강사입니다. 제가 본 아이들이 가장 크게 절망할 때는  지게 되었을 때입니다. 며칠 전 만칼라 게임을 했습니다. 만칼라 게임은 2인 게임으로 구슬을 움직여 자신의 창고에 모으는 게임입니다. 첫 게임은 대부분 2:2 팀전으로 합니다. 그날  같은 상황에서 두 아이가 확연히 다른 반응을 보여  저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A가 게임에서 질 것 같습니다.  아마도 A의  생각에서 그런 것 같아요. 입이 퉁 내밀고 고개를 숙이고 잔뜩 찌푸린 얼굴로 앉아있거든요. 2:2 팀전이었어요. 같은 팀이 번갈아 가며 한 번씩 구슬을 움직여야 하는데,  자신의 차례인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습니다. 몇  번을 처음 하는 게임이어서, 누가 이길지 모르니 끝까지 해보자고 달랬습니다. 그러나 절대 하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결국 조금 기다리다가 A의 팀은  다른 친구가 A차례 것까지 진행기로 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A의 팀이 이겼습니다. 처음 해보는 게임이라 아이들은 어떻게 이기는지도 모르고, 이기고 졌습니다.

  승리의 기쁨 은 결국 혼자 했던 친구가 가져갔네요. 이제  1:1 개인전으로 게임을 진행했습니다.  A는 처음에 이길 것 같았는지 말도 크게 하고 소리도 지르고 장난도 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질 것 같으니 게임도 결국 성의 없이 하고 마지막 마무리도 하지 않았어요. 정리를 하지 않은겁니다. 내 아들 같았으면 등짝 스매싱을 날렸을 것 같지만, 안하겠다고 버티니 결국 지켜보았습니다.

   


  B는 만칼라 게임을 여러 번 한 친구 C대결을 했습니다. 2:2 팀전에서 졌습니다. 개인전에서 또 B와 C가 만나서 대결을 했습니다. B는 게임하는 내내 진지했습니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지 않고 고민해서 구슬을 움직입니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게임에서 졌습니다. 연달아 두 번이나 졌습니다. 게임에서 이긴 아이는 자기는 이 게임을 정말 잘한다고 자랑도 합니다. 졌지만  B의 표정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한마디 합니다.

  "내가 몇 번 더 하면 이길 수 있을 거야."

아주 담담하게 말을 합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고 맙니다. 다음에는 꼭 이겼으면 하고 응원하게 됩니다. 조금 전 A의 뾰로통한 표정이 생각났습니다.


  대체 어디에서 두 아이는 행동이 차이가 날까요? 누구는 게임 도중에 다음 수를 두지 못하고 포기하게 하고 어떤 아이는 몇 번 더 하면 너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말을 하게 할까요? 생각해 보면 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아주 작은 것에 대한 도전이라도 이기고 싶지요. 지는 것이 싫다면 게임은 할 수가 없습니다. 지는 것이 싫다면 어떤 것도 도전할 수가 없어요.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잘 되었다면,  모든 것이 성공할 수 있었다면 그건 성공할 수 있는 것만 도전한 것이 아닐까요? 자기 계발서를 읽어보면 많은 위인들 이야기를 들려주며 포기하지 말라고 합니다. 에디슨은 전기를 만들 때 만 번의 실패가 있었다고 하고, 라이트 형제가 한 번에 하늘을 나는 기계를 만들어 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포스트 잇도 강력한 접착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실수로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인만 그럴까요? 생각해 보면 우리는 알게 모르게 수많은 일을 실패하며 다시 도전하며 삽니다. 친구는 딸이 엄마 것 멸치 볶음이 맛없다는 말을 듣고 멸치 한 상자를 사서 볶았답니다. 어떤 날은 엿이 되고 어떤 날은 물기가 많아 실패를 거듭했다고 해요. 지금은 딸이 공인하는 멸치볶음의 장인이 되었다고 하니 이런 것도 실패를 딛고 일어선 결과라면 결과지요.


  A는 자꾸 게임하는 도중에 질 것 같으면 대충 하면서,  이번에는 져야지 하고 배수진을 칩니다. 전 게임을 했으면 이기도록 최선을 다하자고 하지요. 그 아이는 지지 않고 말합니다. 게임에서 이긴다고 공부를 잘하는 게 아니라고 하지요. 네 맞습니다. 게임에서 이긴다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생활에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게 게임에서만 하는 행동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보드게임 하는 중에만 이런 반응을 보인다면 걱정이 없습니다. 하지만, 삶에서도 질 것 같으면 뒤로 물러설 것입니다. 두려움 때문에요. 그런 노파심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게 합니다. 이런  양상을 보인 친구들은 대충 하다가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졌다고 합니다. 최선을 다했다면 이겼을 수도 있다고 말할 때도 있습니다. 친구가 이긴 건 자기가 대충 해서 이긴 거라고 친구의 승리조차 낮게 평가합니다. 하지만, 전 실제로 그랬다고 해도 게임에서 이긴 친구는 대단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승리한 사람만 기억하는 법이니까요. 상대방이 대충 했는지 최고의 실력 발휘를 했는지 모르니까요.


   이런  A의 행동은 항상 저를 힘들게 합니다. 어떻게 해야 져도 최선을 다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혹시 나의 행동 중에 저 아이가 지는 것을 싫어하도록 작용한 게 있을까? 혹시 칭찬이 부족했을까? 아니면 그냥 모른 척해야 할까?라는 생각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항상 나의 부족함을 만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르는 글귀가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보호해 줄 수 없다. 단지 사랑해 줄 수 있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라는 존 어빙의 말입니다. 어쩌면 A에게 제가 보여야 하는 행동은 있는 그대로 그 아이를 인정하고 바라봐 주는 것일까요? 잔소릴 하지 않고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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